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서란 Oct 23. 2022

적당히 다정하고 적당히 가까운 ‘아름다운 거리’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서운해하지 않는 가족 되기

“나는 원가족이 친척 같고 서란이 진짜 가족 같아.”


언젠가 어리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이 차 많이 나는 오빠, 언니가 있는 막둥이 어리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기숙사 생활을 시작해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가족과 데면데면한 편이다. 어리의 어머니는 시골에서 워낙 바쁘게 지내시기도 하고, 표현을 잘 안 하시는 분이라 특별한 용건이 없으면 몇 달이 지나도록 자식들에게 연락을 안 하신다. 심지어 20년 가까이 타지에 사는 어리의 집에도 그동안 두 번 방문하셨다고 한다. 가족끼리 너무 무관심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집안 분위기 자체가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 알아서 잘 지낸다.


어리는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혼자 계신 엄마를 챙기고 있다. 지금은 자주 통화하고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본가에 가고 있지만,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연락도 거의 안 하고 명절에나 집에 갔다고 한다. 몇 달 만에 집에 가도 어리의 어머니는 처음에만 반겨주시고 무심하게 다시 하시던 일을 계속하신다. 결혼해 자녀들이 있는 오빠네와 언니네가 본가에 갈 때와 달리 혼자인 어리가 가면 어머니는 신경을 덜 쓰시는 편이다. 어리 역시 그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서운해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나에겐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세상 쿨한 모녀 사이라니.


반면, 나의 엄마는 날 온실 속 화초로 키우고 싶어 했다. 딸을 자신의 분신이라 생각하며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었다. 나는 엄마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엄마는 때마다 택배로 반찬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두세 달에 한 번씩 내가 사는 집에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왔다. 엄마에겐 자식을 챙기는 그 행위가 당연한 거였고, 사랑 표현이었다. 엄마가 해준 반찬이 가득 찬 냉장고를 볼 때면 난 든든한 마음보다 ‘저걸 언제 또 다 비우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엄마는 내게 주는 만큼 내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내가 하려는 일에 항상 걱정부터 하는 엄마에게 나는 모든 일을 다 결정하고 나서야 통보해 엄마를 서운하게 했다.


엄마는 내가 자라는 동안, 나를 낳고 싶지 않았는데 오빠가 너무 외로워해서 낳았다는 얘길 수도 없이 했다. 물론 그 말 뒤에는 항상 “그때 만약 너를 안 낳았으면 어쩔 뻔했니”가 따라붙었다. 엄마는 늙으면 딸은 꼭 있는 게 좋다고, 딸이 있으면 친구가 된다며 내게도 딸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엄마는 딸이 있어서 정말 좋은가보다 싶으면서도 나는 부담을 지울 딸이 없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독립해 혼자 사는 동안 엄마는 하루도 빠짐없이 나에게 전화했고, 연락이 한 시간만 안 돼도 불안해했다. 혼자 있고 싶었을 때조차 엄마에게만은 매일 연락해야 했다. 연락이 없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엄마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엄마는 “자식을 혼자 두고 어떻게 마음 편히 사니? 네가 자식을 안 낳아봐서 엄마 마음을 모른다”라며 하나뿐인 딸이 엄마를 귀찮아한다고 서운해했다. 매일매일 오던 엄마의 전화는 어리와 같이 살며 건너뛸 때가 많아졌지만, 내가 며칠 연락을 안 하면 엄마는 여전히 “무슨 일 있니? 어디 아프니?” 묻는다. 아무 일 없다고 하면 이제 “너는 엄마가 걱정도 안 되니?”라며 한 소리 하신다. 최근엔 부쩍 외삼촌 얘기를 자주 하셨다. 매일 연락하는 동생이 자식보다 낫다고. 20년간 나와 매일 통화한 기억은 다 잊고 최근 일 년간 연락이 뜸한 것만 마음에 남으신 듯하다. 70대 중반의 엄마는 애정이 더 고픈가 보다.


엄마의 영향이었을까. 어릴 때부터 생각했다.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된다면 그 사람은 나를 과하게 신경 쓰지 않으면 좋겠다고.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너무 깊숙이 간섭하지 않는 관계이길 바랐다. 또,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어서 나에게 불안한 감정을 옮기지 않았으면 했다. 어리는 그런 사람이다. 선을 넘지 않는다. 때론 너무 무심한 것 같아 서운할 때도 있지만, 함께 있으면 나의 원가족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편안함을 느낀다. 지금은 많이 안정되었지만, 나는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은 요동칠 때가 많다. 그래서 감정 기복이 심하거나 불안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너무 힘들다. 생각해보면 어리와 같이 살게 된 것도 함께 있으면 내 마음이 평온하게 쉴 수 있어서였던 것 같다.


어리가 나와 함께 살면서 느낀 편안함은 내가 느낀 편안함과는 반대다. 어리는 나와 함께 살며 대화를 많이 나누고 옆에서 항상 챙겨주는 사람이 있음에 따뜻함이 느껴져 좋다고 했다. 처음엔 챙김을 받는 것도 챙겨주는 것도 어색해하던 어리가 지금은 조금 다정하게 변했다. 재밌는 건, 나는 엄마의 간섭이 싫었는데 어리는 나도 모르게 하는 내 간섭을 좋아하며 즐기는 눈치다. 게다가 이제는 나의 챙김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 적당히 무심해져야 하나 고민 중이다.


어리의 어머니와 나의 엄마의 성향이 서로 반반씩 섞이면 좋을 텐데. 적당히 다정하고 적당히 가까운 사이. 남녀노소를 떠나 서로 동등하게 존중하는 사이.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서운해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이. 그러면서도 의리를 지키는 사이. 비단 모녀 사이뿐만 아니라 가족이든 친구 사이든 모든 관계에는 ‘아름다운 거리’가 필요함을 느낀다. 그 거리를 지키며 살고 싶다. 


너는 너, 나는 나, 서로에게 피해주지 않고 각자 알아서 잘 사는 것, 냉정하고 인간미 없는 관계 같아 보이지만 그러면서도 함께 있으면 의지가 되는 평온한 사이.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인간관계다.

이전 09화 혼인신고보다 간단한 성인 입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