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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서란 Oct 01. 2022

숲에서 살고 싶은 우리의 노후 준비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

소소하지만 편안한 일상 속에서 나는 삶의 안정을 찾았다. 같이 늙어가는 것을 고민하고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큰 위로가 된다. 나는 이제껏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혼자 있어야 편안하고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사니까 그것 자체가 평화롭고 행복하다. 이건 시골에 살기 전에는 몰랐던 사실이다.


이곳에서 난 일하는 시간 외에는 여러 가지 배우고 싶은 것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한다. 선택 기준은 흥미가 있거나, 재미가 있거나, 의미가 있거나, 셋 중 하나다. 이곳에서는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는다. 어리와 나는 함께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며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발만 담근 수준이지만, 그동안 거쳐간 짧은 배움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배움으로 연결되고 있다.


◇ 사부작사부작 놀면서 배우기


우리의 배움을 떠올려보면 우선 여가를 즐겁게 보내기 위해 악기 하나쯤은 잘 연주해 보자 싶어 나는 우쿨렐레를, 어리는 기타를 배웠다. 여름부터 겨울까지 몇 달간 즐겁게 배우고, 함께 배운 친구들끼리 모여 연말에 소소한 발표회를 했다. 재미는 있었지만 악기 연주 모임이 끝난 후에는 동력을 잃었다. 집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건 아무래도 이웃집에 눈치가 보이다 보니 두세 번 연습해 본 후 악기는 방 한구석에 고이 모셔두었다. 


그다음은 건강을 위해 요가를 배웠다. 요가는 적성에 맞았지만, 사정상 꾸준히 하지 못했다. 요가 교육을 3개월 정도 받다가 쉬고 또 3개월 정도 받다가 쉬기를 반복했다. 결국 어리는 좋아하는 수영으로 갈아탔고,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수영 대신 유튜브에서 요가 채널을 구독하며 생각날 때만 가끔 집에서 요가를 했다.


그러다 어리가 코로나19로 수영장을 못 다니게 되고, 나도 실내 자전거를 비롯해 여러 홈트레이닝을 전전하다가 우리는다시 집에서 매일 요가를 하고 있다. 나와는 달리 부지런하고 성실한 어리는 다시 주 3회 수영장까지 다니며 체력을 다지고 있다. 역시 어리는 근면, 성실의 아이콘이다. 나도 어리를 본받아 근력운동을 좀 해야 하는데 여전히 마음뿐이다.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조금이나마 건강하게 늙어가려면 이젠 정말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것 같다.


우리 둘 다 집중해서 열심히 했던 것 중 하나는 식물 세밀화 그리기다. 둘 다 예술적인 재능은 타고나진 못했지만, 식물을 오래 관찰하며 연필로 세밀화를 그리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지역 도서관 특화 프로그램으로 몇 개월 수업을 듣고 나서 이후에도 계속하고 싶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아쉽게도 모임이 무산되어 이어가지 못했다. 어리와 집에서 나란히 앉아 그려보기로 했으나 역시나 쉬는 중이다.


그 외에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걸 좋아하는 나는 수제 도장 만들기, 캘리그래피, 그림책 만들기, 카페 매니저 과정, 바리스타 과정 등 평소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교육을 들으러 다녔다. 취미로 삼을 만한 것들을 즐겁게 배우다 보면 적성도 찾고, 혹 취미가 돈 버는 일로 이어지진 않을까 기대했으나 모두 재미에 그쳤다. 그마저도 끈기가 없어서인지 배울 때만 열심히 하다가 교육이 끝나면 시들해져 잘 찾지 않게 됐다. 이제껏 배운 것 중에 진득하게 지속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해 봤지만 아직은 찾지 못했다.


◇ 숲에서 살고 싶은 우리의 노후 준비


우리는 슬슬 노후에 대한 준비를 조금씩 해 놓기로 했다. 우선 서로가 원하는 미래를 그려보았다. 나는 나무를 좋아해 어릴 때부터 숲에 살고 싶었다. 언제가 될 진 모르지만 숲속의 집에서 살며 내가 농사지은 재료로 요리하고, 다양한 허브와 약초들로 차도 만들고, 좋은 사람들과 그 차를 나눌 수 있는 소담한 찻집과 치유 스테이를 운영하고 싶다. 어리는 딱히 하고 싶은 건 없지만 노후에 돈을 벌려고 애쓰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행히 나처럼 나무와 숲을 좋아해 나의 꿈에 함께하기로 했다. 혼자서 꾸는 꿈은 단지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우리는 먼저 접근하기 쉬운 것부터 준비하기로 했다. 평소 요리에는 관심 없지만 차와 커피에 관심 많은 나는 우선 바리스타 자격증을, 빵을 좋아하는 어리는 제빵기능사 자격증 취득을 목표로 배우러 다녔다. 열심히 배운 덕에 우리 둘 다 자격증을 취득했다. 우리 둘이 합치면 카페 운영은 완벽하다며 든든해했지만, 그때 공부해놓은 기술과 자격증은 아직 쓰임만을 기다리며 서랍 속에 고이 모셔져 있다.


다음은 산림치유지도사에 도전하기로 했다. 산림치유지도사 자격증은 산림청장이 발급하는 국가자격증으로 1급과 2급으로 구분된다. 2급의 경우 △산림, 의료, 보건, 간호 관련학과 학사학위 소지자 및 전문학사+2년 이상 종사자 △산림치유 관련 업무 4년 이상 종사자 △산림교육 전문가(숲해설가, 유아숲지도사, 숲길등산지도사) 자격증 취득 후 해당 분야에서 3년 이상 종사자 △국가기술자격법에 따른 관련 기사 자격증 소지자 등의 자격 기준을 갖춰야 한다.


우리는 산림기사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으로 산림치유지도사의 자격 기준을 갖추기로 했다. 어리는 이전에 취득한 기사 자격증으로 산림기사 응시요건을 갖추었고, 나는 농업인 실무경력으로 산림기사 시험에 응시하기로 했다. 농업인으로 종사하면 산림 분야 경력으로도 인정해 주는데, 이건 관련 업무를 하는 지인이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정보다. 아무튼 우리는 2019년 봄부터 가을까지 주말마다 산림치유지도사 양성 과정 수업을 들은 뒤, 산림치유지도사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산림기사 시험 역시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우리 둘 다 필기와 실기를 합격해 자격증 2개를 취득했다. 산림치유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산림기사를 공부한 것이었지만 시험은 실기까지 치러야 하는 산림기사가 훨씬 더 어려웠다. 그렇게 두 해 동안 열심히 노력한 결과물은 거실 장식장에 잘 전시해두었다. 숲으로 가기 위해 아직은 준비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자격증이 빛을 발하려면 몇 년 더 기다려야 하지만, 힘들게 취득한 자격증이라 그런지 볼 때마다 뿌듯하다.


나는 5년 후 우리가 함께 그린 꿈이 현실이 되기를 소망한다. 상상만 해도 즐겁고 설렌다. 나이를 생각하면 늦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차근차근 준비하다 보면 5년이란 시간도 금세 다가오겠지. 우리의 미래 모습이 지금의 꿈과 달라지더라도 괜찮다. 인생이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면 너무 재미없잖아. 때론 옆길로, 때론 뒤로 다시 돌아가도 상관없다. 예측 불가능해서 사는 게 더 재미있어질 테니. 2027년, 그때가 되면 우리가 함께 산 지 10년이 된다. 그때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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