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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Feb 27. 2024

달의 양면

Do both.






주말 내내 사막에 있다가 왔어요. 집 근처에 있는 레드락 캐년(Redrock Canyon State Park)이라는 곳인데, 빛공해가 없어서 별 보기 좋은 곳이죠. 웬 사막을 그렇게 자주 가냐고요? 글쎄요. 이유는 딱히 모르겠고 그곳에 있는 제가 그냥 마음에 들어요.


이번엔 별 말고 달을 보러 갔는데요, 스노우문이 뜬다고 해서 갔는데 글쎄 그게 정월대보름이었지 뭐예요? 물론 집에 와서야 알았지만. 사막에선 핸드폰이 안 터지거든요. 그 맛에 가는 것도 있고. 그나저나 '정월대보름' 이름 너무 예쁘지 않나요? 정. 월. 대. 보. 름.


이른 저녁 먹고 텐트에 짐 풀고 나왔더니 세상에... 덩그러니 지평선 위로 쑥 올라와 있는데 너무 크고 광명해서 순간 일출인가 싶었어요. 빛공해 하나 없는 시커먼 지평선에 떠 있는 달 보신 적 있나요? 아름다움이 극에 달하면 조금 무섭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땅에서 막 솟아오른 달은 골든옐로우에서 티타늄화이트에 이르기까지 차근차근 움직였어요. 달빛이 하늘의 반을 차지하는 바람에 은하수는 못 봤지만 이미 예전에 많이 봤으니 괜찮아요. 어차피 이번엔 달이 주인공 할 차례였거든요. 돌아가면서 한 번씩 주인공 하는 거 좋은 것 같아요.


홀수짝수


하이킹을 하다 보면 먼 시선으로 거침없이 다리를 뻗으며 걸어야 할 때와, 경사면에 드러눕다시피 조심조심해야 할 때가 있어요. 이 때는 네 발을 다 써야 해요. 어제도 그런 일이 있었죠. 제 능력을 과신한 남편이 위험한 구간으로 길을 틀어버렸을 때였어요. 벌써 한 발을 내디뎌서 되돌리는 게 더 위험한 상황이었죠.


45도 경사면에 하필 뾰족한 표면으로 이루어진 암벽 구간. 더 무서운 건 그 뾰족한 사이사이가 바람이 실어 온 모래로 덮여있었다는 것. 뒤로 누운 자세로 사지를 뻗어보는 곳마다 미끌리는 가운데,  '당신은 이미 이런 구간을 수 십 번은 넘었다'는 남편의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남편은 제 사지의 역량을 저만큼 미세하게 알지 못하거든요. 스스로를 믿는 것과 역량을 아는 건 별개니까요.


눈을 감고 호흡을 하면서 마음이 한 곳에 모였을 때에만 아주 조금씩 움직였어요. 멀리서 봤으면 애벌레처럼 보였을 거예요. 그래서 남편이 10초 만에 휘리릭 통과한 구간을 저는 거의 20분에 걸쳐 통과했죠.


오랜만에 '온몸으로 조심'하는 행위를 해 본 것 같아요. '조심'이라는 걸 머리로만 알다가 처음으로 몸으로도 해 본 느낌이랄까요? 물론 처음은 아니었겠죠. 그만큼 짜릿했어요. 모든 짜릿에는 처음이라는 말을 붙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요.




지금 내 인생이 평지에 있는지 낭떠러지에 있는지, 뻗을 때인지 조심할 때인지, 대부분은 알지만 가끔은 헷갈려요. 그럴 땐 시계를 봅니다. 홀수면 움직이고 짝수면 가만있어요. 숫자에 뭔가 의미심장한 게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하기로 저랑 약속했고, 오래 그리 해왔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토 달지 않고 그냥 시간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저녁 먹고 불 피우면서 남편이 찍었어요. 달은 반대편에 떠 있고요. 달이 비추는 것들 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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