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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Mar 19. 2024

땅내

시작에 앞서, 지난 화의 주인공, 반등 선인장의 정면입니다. 정수리가 어딘가 모르게 눈 같이 생겨서 부담스럽다고요? 네네. 백분 공감합니다. 그래서 공개 없이 결말을 열어 놓으려 했으나, 크롭핑 전 모습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요. 제가 그런 부류거든요. 그래서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이리 친절하게 엔딩의 문을 따악- 닫아 드리는 것입니다. 한 사람 살리셨다구요? 그림자의 반등 곡선이 신원을 확인해 주네요.


자, 그럼 오늘의 이야기!





우린 죽지 않았다.
잠시 누워 있을 뿐이다.


고개를 살짝 더 치켜든 선인장이 말했다. 자기가 왜 저러고 있는지 말 좀 걸어달라 안달 난 표정이었다.


"그래서, 왜 그러고 있어?"


"땅내 맡다 피곤해서 잠시 누웠어."


"땅내?"


"땅 냄새 맡는 거 말이야. 아니, 나는 원래 여기가 집이 아닌데 간밤에 자고 일어났더니 여기로 와 있는 거야. 그래서 열심히 땅내 맡는 중."


"아... 이름 완전 귀엽네, 땅내. 근데 그거 왜 해?"


"얼른 냄새를 맡아야 적응하거든. 너는 캘리포니아 땅내 맡았어?"


"어."


"다행이네. 원래 어디서 왔는데?"


"대구."


"대구 땅내는 어때? 나는 한 번도 안 가 봤어."


"대구 땅내가 어떤지 나는 몰라. 원래 자기 체취는 잘 모르니까."




산책길에 보이는 것들은 하나같이 고유한 무늬로 하늘의 움직임을 그려낸다. 그런 걸 봐 버린 날은 나도 얼기설기 무언가를 엮을 수밖에 없다. 눈에 들어온 것들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사랑에 빠지면 뭐라도 낳게 된다. 이 상태의 나는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낀다.


삶과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 나오는 것들은 대체로 허물이 없다. 반면, 사랑에 안 빠졌는데 뭔가를 열심히, 그것도 '잘' 만들어보려고 할 때, 나는 우주 변방으로 내몰린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루미가 '사랑 안에서 길을 잃으라'고 해서 나는 긴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알게 되었다. 인간이 진정 일상적으로 누릴 가치가 있는 것들은 온통 쉽고, 흔하다는 것을.


삶과 사랑에 빠지는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주먹을 천천히 쥐었다 펼치면서, 마치 자기 손 난생 처음 보는 사람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빅뱅과 빅크런치. 애기 때 우리가 잼-잼하면 부모님이 그렇게까지 좋아하신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잼잼은 소근육 발달 놀이를 가장한 천지창조였던 것이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잼잼이 아니라 죔죔이란다. 쥐암쥐암에서 왔다나. 암만 그래도 죔죔... 나는 안 쓸래, 죔죔. 어딘가 '죄'도 연상되고, '죄어오는' 느낌. 우리의 잼잼을 죔죔으로 바꿔 놓다니.



누운 선인장 부부 (2000px X 1000) ACCI CALLIGRAPHY,  2024



리씨(시조카)가 그려 준 그림. 굉장히 허물 없는 화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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