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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Mar 08. 2024

하늘에 떠 있는 물

그리고 선인장




물의 자리


저는 수건을 좋아해요.


사실, 좀은 아니고 많이요.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빳빳한 수건으로 물기를 닦다 보면 갑자기 화라락 행복해요. 얼굴 구석구석 톡톡톡 샘솟는 기쁨에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싶은 날도 있습니다.


이렇게 제가 좋아라 하는 물건이 수건인데요, 하루는 남편이 수건들에게 몹쓸 짓을 했어요. 덜 마른 수건들을 가지런하게 개켜 놓은 거죠. 덜 마른 수건, 그걸 어찌 손 쓸 수도 없게 정갈하게 개켜 놨어요. 더 쳐다보다간 내 삶이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져들 것만 같아 밖으로 나갔죠.


밖에서 칙칙폭폭 불난 마음을 꺼트리고 집에 왔어요. 그리곤 밤새 그 수건들을 외면하다 다음날 남편이 출근하자마자 다시 세탁기에 넣었습니다. 꿉꿉한 것들은 이내 쿰쿰해지니까요. 예전 같았으면 저는 수건을 살리고 남편을 마음을 쿰쿰하게 만들어버리는 말들을 뱉었을 거예요.


수건에 숨어있는 물도 별로지만 저는 사물의 손잡이에 묻어있는 물이 힘들어요. 특히 패들링 할 때 패들 손잡이 부분에 물기가 있으면 불쾌할 뿐 아니라, 잘못 미끌리면 노를 물에 빠트릴 수도 있습니다.


망망대해에서 노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되느냐... 일단 물고기들이 깔깔 웃어요. 만물의 영장이 노를 놓쳤다면서, 자기네들은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실수라며 깔깔대죠. 그리곤 이내 온 바다에 소문이 납니다. 그럼 곧 대왕오징어가 심해에서 슝- 올라와 제 허리를 낚아 채 가겠죠. 패들 손잡이에 묻은 물은 이르케나 무서븐 것입니다.


물은 자고로 하늘에서 떨어지거나, 어딘가에 담겨 흐르거나, 땅에서 솟을 때 예쁜 것 같아요. 특히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은 말 못 하게 예뻐요.





나의 자리


줄기가 대체 어떻게 달려 있었길래 이런 모양으로 반등을 했느냐... 신비감 조성을 위해 살짝 크롭핑한 사진입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크롭핑을 비겁한 짓이라고 했어요. 사진은 눈과 마음으로 미리 다 프레임을 자른 다음에 셔터를 누르는 거라고요.


그래놓고 자기도 크롭핑을 종종 한 것을 보면 인간은 참 재밌는 존재 같아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어 웃음도 나고요. 저는 저만큼 태세 전환이 활발한 사람도 잘 못 봤거든요. 태세 전환은 참고로 물의 움직임으로부터 배웠습니다.


"아찌! 나 이런 각도로 찍고, 요롷게 크롭핑 해줘!"


"ㅇㅋㅇㅋ"


저는 브레송을 좋아하지만, 선인장도 좋아하기에 당당하게 크롭핑을 했던 것입니다. 저는 저와 시절인연이 닿았던 모든 이들을 - 그게 책이건, 죽은 자건, 산 자건 간에 - 나의 길에 등장했다는 이유만으로 아직도 좋아합니다. 좋아한다고 그들의 말을 다 듣진 않아요, 다만 제 길을 갈 뿐이죠. 땅에 처박힌 김에 심드렁하게 솟아오르는 선인장처럼요.

반등 선인장 (2000px X 1000px) ACCI CALLIGRAPHY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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