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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Apr 10. 2024

4분

Total Solar Eclipse

<Photography: Julio Cortez>


찰나의 자연 현상을 보기 위해 4박 5일 간 이동을 감행하면서 자연스레 생겨버린 기대감이 있었는데요, 막상 보고 나니 더 기대해도 될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태 지구에서 본 것 중에 가장 예뻤거든요. '황홀하다, 묘하다, 신성하다' 뭐 이런 말들을 다 합친 말이 제겐 '예쁘다'라서 달리 뭐라 할 말이 없습니다. 그저 4월 8일 전과 후의 저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제게 ‘보는' 행위는 생각보다 강렬한 존재의 변화를 야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재산 축적보다 경험 축적에 관심이 많은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는 중이고, 운 좋게 남편도 그런 사람을 만났어요. 지혜로운 사람들은 몸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겠지만 저는 곤이지지困而知之라서 직접 보고 부딪혀야 알 수 있거든요. 4박 5일 동안 얼마나 곤이지지했는지 몰라요. 하아.


제가 직접 본 것에 가장 가까운 사진을 고르고 골라 대문사진으로 썼어요. 제 사진이 아닌 사진을 브런치에 올리는 건 처음인데요, 제가 본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Julio Cortez라는 작가의 능력을 빌어 표현해 봅니다. 다만 저렇게까지 주변부의 태양면 폭발(solar flare)이 두텁지는 않았고, 하늘색은 짙은 회색에 가까웠어요.


12:18분경에 부분 일식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눈 보호를 위해 일식용 쉐이드를 장착합니다.



하늘을 보니 태양의 오른쪽 옆구리에 동그란 홈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 순간이 사실 제겐 완전 포개진 순간만큼 짜릿했어요.


짜릿하면 점프하면서 소리 지르는 편 (양해 바랍니다). 영상은 놀라실까 봐 스샷으로 올립니다.


저 순간을 아무리 일반 카메라로 찍어도 사진작가가 아닌 우리는 요렇게 밖에 담아낼 수 없었어요:


카메라에 일식용 쉐이드 끼우고 찍은 사진


최초의 겹침으로부터 사진처럼 반 정도 겹침이 일어나는 데에 30분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그리고 40분 정도 후에 완전히 포개졌어요. 제가 평소엔 조용한 편인데 예쁜 걸 보면 기쁨이 폐 기운으로 표출되는 성질이 있어 시끄러운 영상임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https://youtube.com/shorts/llJRPm8aGO0?si=-WYdFjQdCiEbfyzV


완전히 포개지자 경건해진 순간입니다. 태양 코로나 주변에 양 옆으로 위치한 화성(우측)과 목성(좌측)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와 달이 서로 만나 헤어지는 시간도 오래 걸렸어요. 만남에서 헤어짐까지 2시간 40분이 걸렸거든요. 부록으로 어제 비행기에서 끄적인 해와 달의 이야기를 올려봅니다.




태양을 막아선 달이 자아내는 도도한 어둠은 구름의 그것과는 달랐다. 대기를 채운 태양 입자가 일제히 달가루로 덮인 듯한, 생전 첨 보는 '밝은' 어둠. 이게 지금 밝은 건지 어두운 건지 모르겠다던 남편은 'eerie(괴이한, 요상한)'한 기분이 든다고 했다. 내가 살면서 eerie 한 느낌을 처음 받았던 곳은 모스타르(Mostar)였는데, 성당의 종소리와 모스크에서 울려 퍼지는 아잔이 요상하게 조화로웠던 것이다. 마치 그런 어둠이었다.


이름이 일식이라 해가 주인공이겠거니... 하고 보고 있는데, 오히려 달이 떳떳하게 태양 앞을 지나가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해도 그런 달의 모습에 반한 모양이었다. 간만에 찾아온 기회를 놓칠세라 살모시 뒤에서 기다리던 해는 달이 바로 앞으로 다가오자 빈틈없이 동그랗게 꼭 안았다. 원만함의 이데아가 눈앞에 펼쳐지자, 4분이 4초처럼 지나갔다. 머지않아 헤어질 시간이 다가와 해님이 달님에게 금반지를 끼우며 말했다.


"우리 또 언제 만나?"


"지금 만나고 있잖아."


"아니, 이제 곧 헤어지잖아."


"너는 맨날 그러더라. 현재를 충분히 느끼지 못하고 결핍으로 채우려는 습성이 있어."


"지금 계획 짜야 또 만나지!"


"2044년, 몬타나. 만나기 싫어도 만날 테니까 걱정 마."


"응."


해가 달을 더 사랑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사실 달이 해를 더 사랑하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해와 달은 지구를 사랑했다. 지구에 붙어사는 생명이 그들을 바라봤을 때, 동일한 크기로 보이도록 자리 잡은 건 크나큰 사랑이었다. 그들이 지구와 우주를 향해 중정中正하게 자리 잡음으로 풍요와 생명이 도래했다. 중정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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