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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Oct 03. 2024

취향의 인도

on vandalism



 

"Who's to say what success is?"

(누가 감히 성공을 정의해?)


라고 릭 루빈(Rick Rubin)이 말했다.


좋아하는 할배다. 나에게 미국 생활의 큰 고충은 사람들이 시끄럽다는 것인데 - 별 내용 없는 말을 큰 소리로 장황하게, 특히 서부 지역에서 - 릭 루빈은 그렇지 않다. 그의 말은 조용하고 힘이 있다. 벌떡 일어나 뭔가를 만들고 싶게 한다.


릭 루빈의 팟캐스트를 듣다가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돌아보면 그때부터 나는 취향 형성에 공을 들였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정체를 대면하고, 그것이 내가 될 때까지 가까이했다. 나는 '좋은 취향'이라는 표현이 사실 조금 웃기다고 생각한다. 내 취향을 알거나 모를 뿐이다.


알기 위해선 탐험을 해야 하기에 돈 생기면 동성로 타워레코드로 달려갔다. 음악으로 채워지지 않는 꿈틀거림은 서예로 풀었다. 영어를 팠다. 믹스테이프를 만들어서 친구들과 나누었다.


믹스테이프를 나누는 행위는 서로를 뮤즈로 바라본다는 의미였고, 우린 서로에게 뜨겁고 유익했다. 취향 있는 청소년에게 질풍노도는 오지 않았다. 빈 강당에서 땀에 흠뻑 젖도록 춤추고 놀았다. 살아있음을 누렸다. 이 모든 행위는 내가 되었다.


유머를 설명하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지만 오늘만은 예외로 한다. 달리기 하다가 믹스테이프 주고 싶게 생긴 작품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럼 지금부터 설명을 시작해 보겠다.


1. 우리 동네는 스트릿아트의 성지


2. 스트릿아트는 공공장소가 캔버스인 관계로 어느 정도의 밴달리즘 -  '훼손행위'라고 하자 - 을 전제함


3. 아래 등장할 두 개의 사진 중 첫 번째는 LA시 공식 표지판


4. 두 번째 표지판은 작가의 작품


5. 나는 이 작품을 보자마자 달리기를 멈추고 데굴데굴 굴렀음


이 사람은 자신이 재밌다고 생각한 바를 생각으로 흘려버리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였다. 이런 천하의 쓸모없고 웃긴 짓에 돈과 정성을 쏟는 사람이 세상엔 턱없이 부족하므로 나는 오늘 이 사람의 재능을 온 천하에 자랑해야만 한다.


이 작가는 내 눈에 성공한 사람이다. 성공하고 싶으면 자기 인생에 성공이 뭔지 정의하면 된다. 그런 다음, 그 정의와 일상의 간극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간극은 몸을 움직여야 없어진다.


나는 이 작가 덕분에 몇 달을 우려먹을 영감을 얻었다. 소셜미디어에 공유했더니 브라질에, 크로아티아에, 뉴욕에 있는 친구들이 단체로 데굴데굴. 언제 철거될지 조마조마 하지만 그것마저 스트릿아트의 묘미.


이 정도로 빌드업을 쳤는데 안 웃기면 어쩌나 걱정 따위 하지 않는다. 아마 안 웃기지 싶다. 그게 포인트가 아니다. 내게 자녀가 있다면 국영수보다 취향 교육에 중점을 두지 않았을까.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입구가 너무 크니까 그냥 ‘취향의 인도를 따라가 봐라~’하지 않았을까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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