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처법
연말이라 요리조리 공사다망하여 재밌는 생각이 몸에 잘 머물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지. 재밌는 게 떠오르지 않는 상태는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달리기 좀 했다고 체력 과신하고 자꾸 일을 받았고, 사람을 너무 많이 만났더니 고갈이 왔다. 이러다 영영 재미없는 사람 될까 봐 남편을 꼬셔 요세미티로 도망갔다.
입구에 들어서자 오른편으로는 우아한 요세미티 폭포와 왼편으로는 웅장한 엘캐피탄 절벽이 천진한 음양의 짝짜꿍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차창을 내리며 콧구멍을 최대치로 열고 아랫배를 천천히 부풀리며 태초의 공기를 한껏 밀어넣는다. 미국 국립공원들은 대부분 공기 맛집이지만 이곳은 단연 꼭대기.
보통 친구나 시댁식구들을 불러 함께 놀았으나 이번엔 일신상의 이유로 (정기신 고갈 이슈) 아무도 부르지 않았다. 맑고 차가운 공기와 따뜻한 녹차를 번갈아 마시며 요세미티를 마주하자니 다시 슬슬 몸에 힘이 차오른다.
일상적으로 가볍게 눈을 고쳐 뜨는 것으로도 힘은 채워지지만, 외물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충전되는 일도 가끔 필요하다. 이를테면 이런거지. 하루는 리씨(시조카)가 조그마한 손으로 뒤에서 그네를 밀어주는데, 그게 얼마나 상상 이상으로 짜릿하던지.
그렇게 한참을 요세미티가 밀어주는 그네를 타다 보니 온몸에 힘이 돌아버려서 요세미티 포인트까지 왕복 14마일을 올라갔다 내려왔다아아ㅏㅏㅏ 는 말씀.
14마일은 22.53킬로미터.
미쳤지 미쳤어.
잠시 미친 덕분에 이런 풍경도 보면서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혼자 보기 아까워 한 장 더 올려봅니다.
아까 말했던 웅장함을 맡고 있는 엘캐피탄.
이름마저 대장님. 요세미티의 캡틴.
하는 김에 우아함 담당도 올려봅니다.
이렇게 눈에 예쁜걸 잔뜩 집어넣었더니 이제 좀 살것만 같군요. 각자의 이유로 고갈된 분들께 조금이나마 예쁜 모먼트가 되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