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high is a new low
아침에 일기를 쓰다 나도 모르게 목을 앞으로 쭉 빼고 있으면 다시 제자리에 두고
한참 있다가 등이 당겨오면 일어나 매달리기를 한다
쫙 펴진 등으로 글씨 쓰는 테이블로 걸어가 붓 끝을 가지런히 고른다
글씨는 재밌어서 조심해야 한다
특히 새로 산 붓이 마음에 쏙 든다던지 하는 불상사라도 발생하면 몇 시간 앉아있기는 일도 아니며 그건 좋은 일이 아니다
손을 썼으니 이제 목을 쓸 차례
이번 통역은 한식
거울 앞에 서서 타이머를 켜 놓고 리허설도 해본다
불필요한 동작이나 이상한 버릇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괜찮다
인지만 하고 있어도 조금씩 개선된다
빨리 나아지려는 마음이 되려 망친다
목을 어느 정도 쓰노라면 갑자기
입을 다물고 싶어 지는데
그때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온몸 구석구석 해가 닿도록 최대한 가볍게 입고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우리 동네를 걷고 달린다
양기 충만한 몸으로 청소와 요리를 시작하고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풍길 즈음이면 나의 차분한 남편이 온화한 미소로 입장한다
퇴근한 남편이 반갑지만 그의 개인적 특성을 고려하여
반가움을 조금만 드러낸다.
"왔어?"
절제된 표현에 감동한 남편은 집에 오자마자 부산하게 집안일을 하는 것으로 그의 감사를 내보인다
자칫 방심하여 격하게 반기는 날은 어딘가로 도망가고 없으므로 주의가 요구된다
살면서 이런 사람 첨 봤지만 그 마음 알 것 같기도 하다
every high is a new low
(모든 고양은 새로운 추락)
남편은 고양감을 좋아하지 않기에 열정이 지배하는 삶에서 벗어나는데 내게 큰 도움을 주었다
간소하지만 맛있는 저녁을 먹고 나서 소파에 늘어져 앉아 싱크대 앞에 서 있는 남편을 바라본다
오늘도 무심한 등으로 설거지를 하고 있다
군더더기 없는 동작이 보기 좋다
향후 퍼포먼스에 참조하기로 한다
그 김에 나도 무심한 손으로 양치를 하고
다시 글씨 테이블에 앉아 한참을 놀다가
몰입이 매몰로 변질되는 순간 자리에서 일어나
사지를 쫘악 펼쳐 침대에 누우며
오늘도 크게 열정 부리지 않았음에 감사한다
나도 모르게 승모근에 잔뜩 힘을 준 채 어떤 각오를 다지거나 뭔가를 잘해보려 이를 악물지도 않았고 하루 종일 실실 웃으며 차곡차곡 할 일을 했다
실패하는 날도 많지만
잘 산 하루의 느낌이 어떤지 아는 것만으로도 됐다
각자의 잘 산 하루는 다 다른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 모든 하루들을 그저 응원하고 싶다
“열정은 본성에 어긋나는 영혼의 움직임이다.”
- 성 마시모스(st. maximos the confessor)
"무행동을 택하는 것은 어리석음이다. 오히려 아무런 욕망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는 것이 참된 지혜다."
- 바가바드기타(bhagavad Git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