不在pāramitā
남편은 적당히 식은 것들을 좋아한다. 강아지보다는 고양이, 식물로 치자면 과습을 싫어하는 사막형.
어제는 남편이 친구들이랑 놀다가 늦게 들어왔다. 마흔을 넘어서면서 서서히 옅어지는 그의 머리숱처럼 친구들과의 왕래도 어딘가 줄어드는 느낌이 있어서인지 실컷 놀다 들어온 남편이 보기 좋았다. 어딘가 허기져 보이는 그의 얼굴에 대고 물었다.
"밥은?"
"먹었는데 배고파. 근데 내가 차려먹을게."
"냉장고에 삼겹살 있거든? 그거 구워 먹어. 아, 당신 쌈장 좋아하니까 그것만 만들어 줄게."
"아니야, 그냥 김치랑 먹으면 돼."
"쌈장 있어야지, 가만있어 봐."
된장에 고춧가루와 참기름을 넣고 슥슥 버무리면서 이미 머릿속으로 마늘이랑 풋고추도 송송 썰고 고기 굽는 김에 버섯도 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급히 생각을 멈추어 세웠다.
'김치만 있으면 된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니야. 한국 사람처럼 사양하는 거 아니라구. 말하는 그대로 매번 진심인 사람인 거 또 잊었어?'
멈춰 선 생각은 내 다음 행동들을 차단했다. 줄줄이 따라와야 할 메뉴들이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갔고, 나는 동지 잃은 쌈장을 조용히 남편에게 건넸다.
"많이 먹어."
사정도 모른 채 남편은 환하게 웃었다. 쌈장에서 그쳐줘서 고마운 모양이었다. 풍성한 인심보다 간소한 식단을 미덕으로 알고 자란 사람. 전자보다 후자를 사랑으로 느끼는 그를 있는 이해 하는데 오래 걸렸고, 그가 바라는 알맞게 식은 사랑을 줄 수 있기까지는 더 오래 걸렸다.
쌈장을 받아 든 그의 표정에 나도 안도하며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뿌듯하게 누웠다. 10초쯤 지났을까. 남편이 맛있게 먹는지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런 게 궁금한 내가 스스로는 마음에 들지만 남편은 가끔 버거워한다.
굳이 또 나가본다. 조용히 쌈 싸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세상에, 쌈 속에 김치를 잔뜩 넣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살며시 입을 틀어막으며,
"쌈 속에 김치 넣지 말고 따로 먹으면 더 맛있어. 그렇게 한꺼번에 후루루 다 싸버리면 쌈장이고 고기고 다 김치에 제압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제압 여부를 살피는 남편)
"흠... 제압 안되는데? 나는 이게 맛있어."
(납득할 수 없지만 내려놓으며)
"... 제압 안 돼서 다행이네. 많이 먹어. “
남편은 또 환하게 웃었고, 나는 안방으로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
부부끼리 편하게 솔직하게 살지 왜 그러냐, 왜 말을 있는 그대로 안 하냐 물으신다면, 나는 그러려고 결혼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살다 보니 결혼이라는 인습에 참여하여 남편이라는 사람도 생겼지만, 난 그저 그를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옆에 와 있는 인류 중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매일 이 사람이 내게 온 이유를 궁금해하며 이렇게도 대해보고 저렇게도 대해 본다. 그런 과정 속에서 나에 대한 또 다른 앎을 얻는다. 그는 나를 통해 그에 대한 앎을 얻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너나 나나 매일 새 사람이고, 당연한 게 줄고, 감사가 커진다. 생이지지형 인간은 이런 만행萬行을 스킵하고도 앎을 얻겠지만, 나는 그저 이런 거추장스러움을 겪어 나가는 하루하루가 좋다.
*부재바라밀不在pāramitā: 특정 행위나 존재를 드러내지 아니함으로 바라밀을 실천하는 것. 육바라밀은 아니지만 칠바라밀로 혼자 정해놓고 조용히 사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