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향인 클럽
20대의 나는 부탁을 쉽게 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30대로 접어들면서 웬만해선 부탁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가 40을 넘고부터는 다시 적당히 부탁을 하며 살고 있다
어제는 큰 시누 남편(이하 큰 아주버님)에게 부탁을 했다. 붉은말 퍼포먼스에 쓰일 내 낙관 이미지를 어떻게 자를지 고민하던 중에 그의 차고에 있던 레이저절단기가 눈에 들어왔고, 나는 언제 말을 꺼내볼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큰 아주버님은 회화 전공이지만 설치 작업도 해서 장비가 많음).
시댁 사람들 대부분은 목청이 크고 머릿속 생각을 실시간 스트리밍하는 화법을 주로 사용하는 반면 (사람들은 착함. 기가 빨릴 뿐) 큰 아주버님과 나는 할 말만 하는 스타일에 혼자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야 살 수 있는 부류이기에 우르르 모이는 연말이면 방구석 어딘가에 피신해 있다가 집안이 조용해졌다 싶으면 슬슬 기어 나오는데
그렇다고 우리가 사람을 싫어하냐?
아니야 좋아해 우리야말로 사람 좋아한다구. 단지 너무 시끄럽고 와글와글하는 게 고통스러운 거지. 한두 시간 정도는 나도 같이 와글와글 행복할 수 있는데 어떻게 카드게임을 여섯 시간을 하냐 이 말이야 저렇게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윽고 한바탕 폭풍이 잦아들고
큰 시누가 차 키를 움켜쥐며 묻는다. 지영아 작은시누집에 저녁 먹으러 갈래? 나는 고개를 힘차게 내저으며 아니 나는 여기 있을래. 라면 먹을래. 다들 빠이빠이 (제가 큰 시누한테 반말하고 그런 사람은 아니고 영어로 된 대화입니다). 남편도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퇴장.
그러고 매가리 없는 손놀림으로 라면물을 올리고 있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더 매가리 없는 목소리
"나도 라면..."
소음 폭격에 심신이 너덜너덜해진 큰 아주버님이 하루 종일 어딘가 숨어있다가 패잔병 같은 걸음걸이로 라면 먹겠다고 기어 나오는 모습이 웃기고 짠한 와중에 할 말은 해야겠기에 ‘미안한데 나는 신라면이다 아주버님은 일본라면 좋아하니까 따로 끓여드시라’하고는 뜨거운 면발을 살포시 잡아 호로록!
하아... 살 것 같다.
각자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라면을 먹으며 간밤에 꾼 꿈, 읽은 책, 최근 작업 성향을 오가는 대화가 쉴 새 없이 이어지자 외향인들이 앗아간 우리의 에너지는 서서히 차오르기 시작한다.
꿈에 엘리베이터에서 지상 1층을 누르면 항상 지하 10층까지 내려가서 문이 사라지는 나의 반복되는 악몽(혹은 길몽)에 대해 확장판으로 소개해주자 아주버님은 최근에 듣고 있는 잇(it, 스티븐 킹 소설) 오디오북에 대해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으나 정신을 차려보니 대화 장소는 차고로 바뀌었고 내 낙관 이미지가 레이저컷팅기에 잘려지고 있었다.
"두께가 있어서 스텐실 하기 어려울 텐데 고정액은 뭘로 쓸 거야?"
"고정액 안 쓰는데요."
"티셔츠 만들 때 고정액 없이 한 거야?"
"그냥 천천히 붓으로 톡톡톡 하니까 되던데요."
"붓으로? 재주도 좋네. 나는 이거(고정액) 잘 안 쓰니까 필요하면 갖고 가. 그리고 그냥 담엔 스프레이로 뿌려."
차고 문을 활짝 열어놓고
칙칙칙 스프레이를 뿌리며
어른이 되어서도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있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