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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 Oct 13. 2022

여행자의 삶



갓생의 요건 첫 번째.

여행을 떠날 것. (단, 혼자 떠날 것)


4월 혼자 제주로도 떠났다. 대략 5일 동안 머물 작정이었다. 사실 처음의 계획은 친구와 함께 1박 2일을 여행하기였다. 하지만 자칭 백수인 나는 넘쳐나는 것이 시간이었다. 그래서 친구와의 여행 전 며칠을 혼자 제주도에서 보내기로 했다. 말이 혼자 여행이지, 숙소는 제주대학교를 다니는 동생의 자취방이었다. 숙소에서라도 돈을 아껴야 한다는 짠돌이 마인드와 혼자 여행인데 굳이 동생이랑 같이 지내야겠냐는 독립투사의 마음이 충돌했지만 결국 ‘배고픈 예술가’에서 ‘배고픈’이 이겨버렸다. 이 결정에는 엄마의 걱정 또한 큰 힘으로 작용했다. 누나를 스파이 마냥 보내서 갓 스무 살인 동생의 새내기 라이프를 알아내고 싶은 마음과 혼자 여행하는 여자를 걱정하는 마음.




제주도에서의 모든 날들은 아주 완전한 뚜벅이였다. 버스가 늦게 오면 늦게 오는 대로, 다리가 아프면 쉬어 가며 여유를 마음껏 즐겼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보다 혼자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고 또 그것들을 즐길 수 있다는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평소에도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지만 그만큼 고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혼자 하는 여행을 내심 걱정했다. 하지만 내 걱정과 다르게 나는 이 세상에서 인생을 제일 즐기는 예술가가 행세를 하며 이곳저곳을 누볐다. 제주도에 있는 일주일 간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을 느꼈다. 이래서 여행을 하나보다. 나보다 어린 누군가의 전시를 보면서 질투를 느낌과 동시에 위로를 받았다. 알지 못하는 누군가들의 열정 넘치는 버스킹을 보면서 박수를 보내기도 했고 식사와 함께 하는 뮤지컬을 보며 음식과 함께 눈물도 삼켰다.



태어난 이후로 ‘행복하다’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한 일주일이 되었다. 행복한데 자꾸 눈물이 났다. 흐르는 눈물에 대한 핑계가 아니라 정말 너무 행복했다. 행복하다는 나의 말을 전해 들은 엄마는 나보다 더 벅차 하시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했다. 여행이라는 명목 하에돈을 펑펑 쓰고 무언가 창작해 뱉어내기보단 보이는 것들을 삼키는 일이 하루의 다인데 말이다. 이게 정말 내가 바라던 행복한 삶이라면 여행자의 삶을 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도 스치듯 고민했다. 그리고 눈물이 나는 이유에 대해서도 나를 납득시키고 싶었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똑똑 떨어지는 이 녹슨 장치를 고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골똘히 내가 우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다 평범한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답을 찾지 못했다. 그냥 눈물이 나면 울기로 했다. 내가 깨닫지 못한 어떤 이유가 있겠거니 하고. 나의 수도꼭지는 녹슬고 망가진 게 아니라 특정한 인풋에 물이 흐르도록 만들어진 신상 수도꼭지라면서 나를 다독였다. 내가 그 시스템 자체라 자각하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타협하며 눈물이 날 때 나를 다그치지 않기로 했다. 살랑이는 나무들과 반짝거리는 윤슬, 듣기 좋게 웅성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다. 제주도의 모든 순간들이 꼭 영감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말 행복하고 여유롭고 자유로웠던 여행의 밤은 낮에 외면당했던 외로움들이 들이닥쳤지만 그 또한 나의 숙명이라 생각하며 잠이 오지 않는 시간들을 꾹꾹 눌러 담았다. 그리운 누군가와 반가운 누군가, 걱정되는 누군가로 가득한 제주도의 밤들이었다. 혼자는 이렇게나 가득하게 평온하구나. 혼자 여행을 다녀온 뒤로 내가 부럽다고 하며 휴학하고 갓생을 산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혼자 하는 여행의 장단점을 물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 예상했다시피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거야. 그리고 단점은 맛집의 메뉴를 다양하게 먹을 수 없다는 거.”

“만약에 기회가 된다면 또 혼자 가고 싶어?”

“응.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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