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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 Oct 13. 2022

나의 세상을 지켜내는 방법


내 작고 소중한 책 한 권으로 몇 번의 독립출판 북페어에 참여했다. 창작하는 일은 창작자가 하고 싶은 말들을 작업에 녹여내는 일이다. B6 사이즈의 얇은 책으로 갈 때까지 가보자는 다짐으로 닥치는 대로 북페어에 지원했고 모든 일이 수월하게 풀렸다. ‘그래, 너의 그 작은 책으로 어디까지 갈 수 있나 보자’라는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 한 지난날들을 책에 눌러 담으면서 언젠간 나의 책을 읽는 이들에게 나의 말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내 부스에 오시는 분들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낯을 가리는 것도, 용기가 없던 것도 아니다. 그저 따로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을 잃었다. 굳이 말을 먼저 건네지 않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내가 하려던 말은 이미 책과 그림들에 온전히 담겨 있었기에 내 책을 덤덤히 읽어가는 사람의 다음 제스처를 기다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휴학한 김에 잠깐 새로운 세상을 맛보고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가는 거야’


이런 마음 가짐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새로운 세상에서 나는 나의 세상을 지켜내는 방법을 깨달았다.


속닥속닥. 내 부스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뱉어내는 사소한 감탄들과 낮은 읊조림 들은 그들끼리의 작은 속삭임이었지만 나에게는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와 나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계속해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도록 나를 뒤집어 놓았다. 타인의 인정보단 스스로의 강단이 더 중요하다지만 나는 타인의 인정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많은 사람임을 확신했다. 3일 동안 모두가 나를 힘차게 흔들어 놓은 후, 그 이후의 일들을 책임지지 않아도 조금만 더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흔들리고 싶었다. 나의 책을 한참 들여다본 후 옅은 웃음으로 사라지는 이들 중의 대부분은 다시 돌아와 나의 책을 사 가셨다. 다시 오시는 분들은 나의 그림과 말들이 자꾸 생각나서 그냥 갈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내 이야기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생각해주고 고민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내 책은 3번의 북페어 끝에 샘플까지 모두 팔려 절판되었다. 많은 부수가 아님에도 내 부스에 붙어있는 ‘sold out’이라는 몇 글자는 나의 굽은 어깨를 곧게 펴지게 해 주었다. 라운드 숄더를 고치는 방법은 자신감인가?





작가라는 명찰을 목에 걸고 내 키보다 작은 테이블 뒤에 서있을 뿐이었는데 그 행위가 나의 세상을 지켜내는 일임을 느꼈다. 모든 것이 나의 것으로 이우러 진 세상 ‘120*60’이었다. 내가 그린 엽서와 스티커, 포스터, 책까지. 말 그대로 나 자체였다. 내 목표를 이룬 순간이었다. 나의 이야기로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 나의 이야기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깨닫는 일.


나의 소중한 친구들이자 동료들. 창작하며 스스로의 이야기를 하는 너희에게.

너네도 꼭 너희들만의 세상을 지켜내어 너와 나의 세상이 또 다른 우리의 세상을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


창작을 멈추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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