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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유 Oct 14. 2022

나는 휘날리는 종이짝



3번의 북 페어를 하면서 알바를 병행했다. 알바를 하는 고작 이틀이 나에게는 나의 세상을 지킬 시간에 누군가의 세상이 더 커지도록 도와주는 시간 낭비 같았다. 잠시의 벅참을 맛보고 나니 아주 삐뚤어졌다. 그래서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돈을 벌 바에는 조금 배고프더라도 나의 세상을 위해 시간을 쓰기로 했다.


알바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으면서 마지막 북페어가 끝났다. 모든 게 끝났다는 안도와 함께 긴장이 풀렸다. 사람마다 피곤할 때 찾아오는 증상이 다르다고 하는데 내 경우에는 피곤하면 바로 귀가 아프다. 지속적으로 쿡쿡 쑤시기도 하고 순간적으로 콱 찔리는 느낌도 나고 이명도 들리면서 가지각색으로 아프지만 대부분의 경우 아주 푹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아무리 쉬어도 쉬어도 똑같았다. 심지어 고통이 더 심해짐을 느꼈고 병원에 가야 할 것만 같은 본능적인 느낌이 들었다. 몸이 아플 때마다 ‘자연 치유’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나지만 침대에서 눈을 뜨자마자 뭐에 홀린 사람처럼 병원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나의 귀를 들여다보며 갸우뚱하시더니 온갖 검사를 시키셨다. 그리고 썩 좋지 않은 표정을 지으시며 조금 더 빨리 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냥 심장이 쿵!


돌발성 난청이라는 병명이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절대 겁주는 게 아니라고 하시면서 열심히 이 병에 대해 설명을 해주셨고 나는 지레 겁을 먹고 말았다. 왜냐면 최근 알바를 하면서 제일 많이 들을 말이 “너는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듣냐?”와 “귀 좀 파라.”였기 때문에. 내가 일머리가 없는 줄 알고 알바를 하는 시간이 고통스러웠다. 그게 아니라 진짜 못 듣는 거였다니 너무나 억울하고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오른쪽 귀의 청력이 평균보다 훨씬 떨어져 있었다. 어쩐지 오른쪽 귀에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소리를 들리더라. 이명인 듯 아닌 듯. 이게 지구 돌아가는 소리인가? 싶기도 하고. 시끄럽고 거슬려서 잠들기도 힘들었다. 평소에도 예민해서 잠을 잘 자지 못하는데 돌발성 난청은 잠을 무조건 잘 자야 하고 절대, 절대로 피곤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매일매일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고 잠을 잘 못 잔다는 나의 말에 수면 유도제를 처방해주셨기에 밥 먹고 약 먹고 잠드는 신생아 생활을 유지했다. 약 3주에 걸친 3번의 북페어. 준비 기간까지 합하면 두 달 간의 기간 동안 동기부여가 빵빵해져 있는데 갑자기 시동이 꺼진 느낌이다. 책 팔다가 병을 얻은 꼴이었다. 우스웠다.


그렇지 않아도 생각이 많은 내가 이렇게 각 잡고 쉬는 기간을 가지니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책 하나로 혼자 너무 멀리 온 탓에 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도 모르겠고 나아갈 길도 모르겠고. 누가 길을 알려주었으면 했다. 또 또 나는 서러웠다. 주어진 과제를 하는 대학생들 사이에 섞여 들고 싶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나의 세상을 지켜내자고 마음먹은 지 얼마나 됐다고.. 아주 나약한 인간이다.


역시 나의 세상은 종이 쪼가리들로 이루어져 있었나. 살랑이는 바람에 흔들렸으면서 작은 돌멩이에 눌려버렸다. 너무 흥분해서 휘날리는 종이짝 같은 나를 위해 문진을 선물로 주셨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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