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에게 들려주는 청년의 역사1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격동의 시대는 어떻게 이해될까요? 기근, 전염병, 혁명, 전쟁, 나라의 멸망 등은 격동의 시대에 목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건들입니다. 이 중 기근이나 전염병처럼 예측할 수 없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것도 있지만, 전쟁이나 나라의 멸망처럼 사건이 벌어지기 전 그런 ‘징조’가 서서히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경석의 시대는 후자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10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기까지 그러한 징조는 계속해서 나타났으며, 1840년에 발발한 아편전쟁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조선이 제국주의 침략에 대응할 수 있었던 기간은 무려 ‘70년’이나 됩니다.
이런 점에서 민족 스스로 반성할 부분이 있습니다. 제국주의 국가의 침략 행위는 반드시 비난받아야 하고, 그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하지만 조선의 지배층은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국제 정세를 외면하고 자신들의 신분적 안위와 권력 유지에만 몰두했기 때문에 외세의 침략에 대비할 시간을 허비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그들이 나라 멸망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나라를 빼앗길 당시도 아프지만, 그것을 되찾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그 과정도 고통스럽다는 것을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우리는 잘 알고 있으므로 시대의 ‘징조’를 외면하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당시 시대 변화에 대한 조선의 대처가 얼마나 심각하게 안일했던 것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급격한 발전을 이루고 있던 19세기 서양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시기 서양을 지칭할 때 ‘제국주의 국가’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제국은 ‘식민지 지배 국가’를 의미하며 19세기는 서양이 유럽 이외 지역을 식민지화하는 시대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국주의 국가는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고, 그들은 어느 정도의 기술적 발전을 이루었기에 다른 지역이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걸까요?
공고한 신분제도가 유지됐던 조선은 19세기 말이 되어서야 신분제도가 폐지되지만, 영국을 기준으로 보자면 서양은 이미 17세기에 전제정치를 무너뜨린 ‘시민혁명’이, 18세기에는 생산기술의 급격한 변화를 이룬 ‘산업혁명’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19세기가 되면 서양 각국은 ‘국민국가’를 이루어 본격적인 식민지 쟁탈전을 벌입니다.
‘국민국가’는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개념으로 국가의 주인이 국민인 나라를 말합니다. 국민국가와 대비되는 개념은 왕이 곧 나라의 주인인 ‘왕조’입니다. ‘시민혁명’은 국가의 주인이 ‘왕’에서 ‘시민’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왕조국가와 국민국가 중 어느 국가의 국력이 더 강할까요?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국민이 국민으로서의 책임감을 갖고 개개인이 역량을 발휘하는 국민국가가 더 부강하지 않을까요?
왕조국가에서 백성들은 지배층을 위해 이용당하는 수동적인 존재였습니다. 따라서 국가 간 경쟁은 특정 가문의 발전을 위한 것이었고, 가문끼리 서로 경쟁을 벌이더라도 피지배층에 관해서는 이들은 그저 신분제도를 유지하는 한 팀이었을 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의 피지배층이 국가에 소속감을 갖고 국가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헌신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한반도라는 동일지역에서 단일민족으로 왕조가 오래 유지되었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유럽은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로 통합에 어려움을 겪었던 지역들도 존재했습니다.
국각가 부강해지기 위해서는 지역을 통합하여 소속감을 갖는 것이 중요했지만 국민국가 이전의 유럽 각국의 왕조 가문은 다른 나라의 귀족 가문과 혼인 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영토 상속 문제가 발생하면 지역 통합에 더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서양은 크리스트교의 영향으로 조선처럼 왕이 여러 명의 첩을 둘 수 없었기 때문에 남성의 대가 끊기면 복잡한 영토 상속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왕위계승 문제와 관련된 전쟁이 여러 차례 일어납니다.
영국과 프랑스가 백 년 넘게 싸우는 중에 잔 다르크가 등장하여 프랑스의 승리로 막을 내린 15세기의 백년전쟁도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프랑스 왕이 후계자 없이 사망하여 4촌 형제가 새롭게 왕이 되자 영국 왕은 자신의 모친이 죽은 프랑스 왕의 누이이므로 4촌 형제보다 우선하여 프랑스 왕위계승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 것입니다.1)
더 많은 영토를 상속받기 위해 유럽 가문들은 경쟁하였고, 이 때문에 네덜란드·이탈리아가 오스트리아 가문의 지배를 받거나 프랑스 가문이 에스파냐를 지배하는 등 통치자와 피지배층 사이에 언어·민족 등의 불일치가 발생하는 경우가 존재했고 국경도 언제든 변경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를 살았던 피지배층이 지금처럼 국가에 소속감을 갖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민혁명이 일어나고 ‘국민’이 국가의 주체가 되는 ‘국민국가’가 형성되자 국가 간의 경계가 분명해집니다. 국가는 국민들의 국가 소속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을 보급하게 되고, 국민 개개인이 참여하는 ‘국가’ 간의 경쟁은 ‘가문’ 간의 경쟁보다 그 규모와 강도 측면에서 더 치열한 양상을 보이게 됩니다.
그런데 국민국가에서 개인의 역량은 어떻게 발휘될까요?
국가는 법을 기반으로 통치하는데, 전근대 시기의 법은 ‘군주’의 입맛에 맞게 제정되어 실행되었습니다. 이렇게 군주가 권력을 장악하여 마음대로 통치하는 체제를 ‘전제군주제’라고 합니다.
근대 국민국가에서는 전제군주 대신 법을 제정할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해집니다. 그것이 바로 ‘의회’입니다. 의회는 군주라는 한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들에 의해서 통치되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의회’의 권력이 군주의 권력을 넘어서게 될 때 이를 ‘입헌군주제’라고 하며, ‘의회’에 의해 군주제 자체가 폐지될 때 이를 ‘공화정’이라고 부릅니다.
의회는 국민들의 요구에 합당한 법과 제도를 수립하기 때문에 전근대 시기 지배층의 이익을 주로 대변했던 왕조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전문성을 갖게 됩니다.
의회를 갖춘 국가는 이제 국민 개개인의 역량에 주목하게 되고, 이들의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국가 차원에서 ‘공교육’을 발전시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18세기 시민혁명 과정에서부터 공교육 제도가 구상되고 19세기에 이르면 유럽 각 나라에서 공교육이 성과를 보이기 시작합니다.2) 한 예로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징집된 군인의 문맹률은 2%에 불과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독일이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3)
시민혁명을 계기로 개인의 역량이 발휘되고, 국민국가 형성을 계기로 개개인의 역량을 집약적으로 사용하게 된 서양 세력은 더 많은 영토를 상속받아 국경을 새롭게 만드는 과거의 경쟁 수준을 넘어 국민의 참여로 이뤄진 압도적인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다른 민족을 제압하려는 무서운 수준의 경쟁을 벌입니다. 이것이 19세기 서양 제국주의 국가의 특징입니다.
19세기 서양의 제국주의 경쟁 양상은 더 많은 식민지를 확보하려는 방향으로 나타나는데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업혁명에 근거한 서양의 경제적 발전 과정을 고려해야 합니다.
산업혁명은 산업에서 ‘시대의 큰 변혁을 가져온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증기기관, 기계화로 대표되는 영국의 산업혁명을 의미하며 이를 1차 산업혁명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노동력을 능가하는 기계 사용의 일상화는 제품의 생산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였으며, 제품의 생산량은 이미 서양이 소비할 수 있는 수준을 뛰어넘게 됩니다. 따라서 서양 제국주의 국가가 더 많은 부를 축적하는 방법은 ‘무역’을 하는 것인데, 탐욕적인 제국주의 국가가 공정한 무역을 할 리는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제국주의 국가는 자국 상품의 안정적인 판매처 확보를 위해 해외 식민지를 개척하게 되고, 더 나아가 생산비를 낮추기 위해 해외 식민지를 원료 공급처로도 활용합니다. 또한, 제품을 팔고 얻은 수익을 식민지에 다시 투자하여 경제적으로 더욱 종속시키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19세기 제국주의 국가는 그들의 제품 판매시장, 원료공급처, 자본투자처의 역할을 위해 무력을 활용하여 약소 민족에 대한 식민지 침략 행위를 벌인 것입니다.
서양의 국가들이 동아시아에 이르게 된 것도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고, 동아시아 각국에 서양이 요구한 첫 번째 사항도 바로 ‘통상’이었습니다.
결국 정치체제에서 국민국가를 수립하고, 경제적으로는 산업화를 이룬 서양 국가들은 더 많은 부를 축적하고 주변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약소민족을 침략 대상으로 삼는 ‘제국주의 국가’가 된 것입니다.
1) 「백년전쟁」,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양오석, 「백년전쟁」, 『재미있는 전쟁 이야기』, 가나출판사, 2014, 네이버 지식백과
2) 「공교육」,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3) 에릭홉스봄, 『자본의 시대』, 한길사, 1998, 135~1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