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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lehLee Mar 13. 2023

노동 일기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산층이 될 확률은 40%가량이라고 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부자가 될 확률은 그 보다 훨씬 적은 6% 정도라고 한다. 부자가 되지 못한 94%, 중산층조차 되지 못한 60%의 사람들은 왜 그렇게 되었을까?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난했다.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는 늘 고된 장사를 해야만 했다. 가진 자본이 없고 장사할 장소가 없어 행상을 해야만 했다. 서울 산꼭대기 세를 살았던 어머니는 이른 아침부터 팥죽을 끓였다. 다 끓여진 팥죽을 옹기 항아리에 담고, 천으로 겹겹이 쌌다. 죽이 식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점심시간이 되기 훨씬 전에 시장에 도착해야 했다. 시장 상인들에게 죽 한 그릇씩을 팔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항아리 하나로는 충분한 소득이 되지 못했기에 커다란 주전자 하나 가득 담아, 한 손으로는 항아리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항아리를 들고 시장으로 향했다. 주전자는 시장 입구의 가게에 맡겨두고 항아리에 담긴 죽을 먼저 팔았다. 식당에 가 밥을 먹을 시간이 없는 또는 돈이 부족한 시장 상인들이 어머니의 죽을 샀다. 항아리를 이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죽을 팔았다. 

다니던 국민학교 방학이 되면 내가 할 일은 주전자를 들고 어머니를 따라가는 것이었다. 주전자만 놓아도 어머니는 항아리를 이고 시장에 가는 길이 한결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때때로 나는 그 주전자를 들고 어머니를 따라 시장을 돌아다녔다. 항아리의 죽이 다 팔리면 즉시 주전자의 것을 팔기 위함이었다. 더 불기 전에, 식기 전에 팔아야 하는 팥죽이었다. 그래서 방학은 내게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 죽 주전자를 들고 어머니를 따라나서야 한다는 것은 매우 고역이었다. 친구를 마주치는 것도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주전자가 싫었지만, 그 방학이 싫었지만 어머니가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주전자 들기 싫다는 말은 못 했다. 그렇게 매일 주전자를 들고 어머니를 따라다녔다. 

해지는 저녁이 되면 동네 입구에 가 어머니를 기다렸다. 죽이 다 팔렸다고 항아리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항아리 자체도 무겁지만 내일 장사할 거리와 먹을 것을 사들고 와야 하기에 항아리는 다시 무거워져 있기 때문이다. 손에 들린 주전자라도 받아 들어야 했기에 나는 해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동네 입구 전봇대에 서서 어머니를 기다렸다. 이 시간은 내게 너무 아팠다. 언제 올지 모르는 어머니를 기다리며 저 먼 곳을 바라봐야 하는 나는 몹시 지루하고 추웠다. 어머니의 시간은 일정하지 않았다. 죽이 빨리 팔리는 날도 있고 늦게까지 다 팔지 못해 부러 터진 죽이 항아리 밑바닥에 눌어붙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가장 빨리 오는 시간에 맞춰 나가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어머니는 무거운 항아리를 이고 높은 비탈길을 올라 집에 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다림은 늘어지는 그림자만큼이나 길었다. 


하루는 시장에 작은 공간이 나왔다. 오랜 기간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즉 주인 없는 곳이었다. 어머니는 그곳에서 장사를 하고자 했다. 죽만 끊일 장소만 있어도 무거운 항아리와 주전자를 들고 매일 비탈길을 오르내릴 일이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와 내게는 거대한 희망이었다. 나도 그 장소에 가 보았다. 가게와 가게 사이에 난 삐뚤어진 공간이었다. 제대로 된 가게가 아니었다. 지붕도 없었다. 비나 눈이 오면 그대로 맞아야 할 공간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죽을 끊을 수 있는 공간만 있으면 되었다. 비나 눈은 천막으로 막으면 될 것 같았다. 어머니와 나는 죽을 끓일 수 있는 화로를 갖다 놓았다. 한 번에 다 옮길 수 없어 몇 번에 걸쳐 들어 날랐다. 나르는 일은 아침부터 시작하여 오후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그 공간은 우리에게 허락된 곳이 아니었다. 늦은 오후 주인이라는 사람이 달려왔다. 그곳은 주인이 있는 곳이었다. 우리가 물건들을 옮기는 것을 본 주변의 어느 상인이 주인에게 연락을 했던 모양이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큰 소리로 어머니에게 야단을 쳤다. 어머니는 그리고 어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곳이 주인 없는 공간이라는 것은 우리의 잘못이었다. 그곳은 장사를 시작하지 않은 공간이었을 뿐 주인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물건들을 다시 집으로 옮겨야 했다. 

그 거대한 희망은 깨졌다. 우리에게도 장사를 할 수 있는 공간, 그저 죽을 끓일 수 있는 화로 하나를 놓을 수 있는 작은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깨졌다. 어머니는 다시 죽 항아리를 이어야 했고, 나는 주전자를 들고 그 뒤를 따라야 했다. 어머니는 살아서 평생 그 작은 공간을 갖지 못했다. 항아리에 짓눌린 허리가 망가져 매일 고통에 시달렸고, 그렇게 돌아가셨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란 나는 가난했다. 그리고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도 가난하다. 가난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왜 가난하게 살아야 할까? 원인은 하나다. 부자 되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부자가 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누가 가난을 좋아하겠는가? 누가 부자 되기를 거부하겠는가 싶겠지만 나를 포함한 가난한 많은 사람들의 문제는 부자가 되려는 의지가 없다. 여기서 의지라고 하는 것은 강한 의지이다. 막연한 희망이 아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희망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 부자가 되겠다는 아주 강한 의지만이 사람을 부자로 만들어준다.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없다. 그래서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죽는다. 그렇다면 왜 의지가 없을까? 평생 부자로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가 가난했고, 그렇게 태어났고 또 자랐기에 가난이 자연스러운 상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자연스러우니 그냥저냥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평생 가난해도 그것이 못 견디게 불편하지 않으니 강한 의지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난한 부모 아래 태어난 사람 중 부자 될 확률이 6% 밖에 안 되는 것이다. 

내 어머니는 가엽지만 그렇게 가나나 속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도 가난 속에서 살았고 아직도 가난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에게는 의지가 있고 시간이 있다. 나는 부자가 될 것이다. 부자가 목적이 아니다. 부자가 될 수 있음이 목적이다. 그래서 부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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