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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las Aug 03. 2024

당신은 지금부터 말을 할 수 없습니다 - PAK(4)

구원투수 P.A.K.

PAK은 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PAK이 처음부터 어산지의 구명운동에 발 벗고 나선 것은 아니었어요. 줄리언 어산지의 동생인 Gabriel Shipton이 PAK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습니다. 아무래도 어산지로 상징되는 언론 탄압의 부당함과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 문제를 결부하며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을까요? 

가브리엘이 연락했을 때 PAK은 때마침 ‘자유’를 주제로 예술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해요. PAK은 평소에도 ‘검열’과 ‘게이트키핑(미디어가 이슈를 취사선택하는 과정)’이 존재함을 느끼고 있었다고 하는데요. 어산지가 정보를 공개하면서 국가로부터 기소를 당한 것처럼 PAK도 어떤 형태로든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특히 탈중앙화를 통해 기득권에 대한 저항을 도모하는 크립토 철학자 PAK에게 어산지의 사례는 남의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면 PAK은 어떤 방법으로 어산지를 도왔을까요?

어산지의 동생 Gabriel Shipton

Censored NFT는 글의 첫 부분에서 소개한 무료 NFT(오픈에디션)와 ‘CLOCK’이라는 단일 에디션의 NFT 경매로 함께 진행되었어요. 오픈에디션에서 발생한 모든 수익금은 정보의 자유, 디지털 개인 정보 보호 관련 단체에 기부되었죠. 한편 CLOCK NFT는 어산지를 직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활용되었는데 판매과정에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오픈씨 Censored 컬렉션

CLOCK은 경매를 통해 판매되었는데 이를 통해 마련된 자금은 어산지의 지원 단체인 Wau Holland Foundation에 전달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CLOCK의 낙찰 금액이 Wau Holland Foundation으로 바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Assange DAO라는 곳에서 CLOCK을 구매한 후 그 비용을 PAK이 Wau Holland Foundation에 전달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PAK이 일종의 자금 중개인(?) 역할을 한 것이죠. 

어산지 지원 자금 모금 경로

이유는 홍보 때문이었습니다. 원래 Assange DAO는 어산지를 석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DAO(탈중앙화 자율조직)입니다. 어산지의 석방을 위해 모금한 돈을 직접 전달하는 것이 간편하지만, 모금 흥행에 PAK의 명성이 필요했기에 PAK의 작품으로 진행한 후 전달하는 형식을 취한 것입니다. 게다가 Assange DAO의 모금 플랫폼은 암호화폐 모금 전문사이트인 주스박스(Juicebox)라는 곳이었어요. 이미 암호화폐에 익숙한 사람들이 모금에 참여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PAK의 명성을 모를 리 없었고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었습니다.

Assange DAO의 Juicebox 모금 기록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CLOCK NFT는 13,252 ETH, 한화 약 500억 원이라는 큰 금액에 성공적으로 낙찰됩니다. Assange DAO의 흥행 전략과 PAK의 명성이 협업을 통해 빛을 발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NFT의 취지에 공감했음을 확인한 순간이었죠. PAK의 NFT를 원하는 몇몇 돈 많은 기관이나 컬렉터들의 경쟁적인 입찰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십시일반 기부한 모금액으로 구매를 했다는 점에서 흥행성과 명분 모두가 어느 정도 충족된 경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계가 0이 되는 날 

그런데 왜 CLOCK이라는 이름을 지었을까요? CLOCK NFT에는 화면에 흰 영문 글자가 쓰여 있는게 전부인데요. 이는 어산지가 영국의 Belmarsh 감옥에 구속된 2019년 4월부터 현재까지 보낸 총일수를 의미합니다. 하루가 지나가면 CLOCK의 숫자도 하나씩 늘어나도록 코딩되었어요. 우리는 직접 느끼지 못하지만 매일매일 구속 상태가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내죠. 하지만 PAK이 ‘음소거 타이머’라고 부르는 이 NFT는 어산지가 감옥에서 나오는 날 ‘0’으로 바뀝니다. 언론탄압 즉, 검열로 점철된 어두운 과거가 말끔히 해소되는 것입니다. 


매일 숫자가 1씩 더해지는 CLOCK

영상을 자세히 보면 숫자가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면서 깜빡입니다. 깜빡 깜빡. 두근 두근. CLOCK의 깜빡임이 어산지의 심장 박동과 동기화되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비록 지금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언론의 자유만은 포기하지 않는 살아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죠. 한 공간에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함께 숨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산지의 문제가 결코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렇게 시계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공감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Censored 홈페이지의 상단에는 'CENSORED IS A COLLECTION BY PAK & ASSANGE & YOU'라는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CENSORED 컬렉션은 PAK자신, 어산지, 그리고 그들을 보는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숫자가 더해지는 것은 답답하지만 언젠가는 0 이 될 거라는 희망 또한 갖게 됩니다. 형태를 단순화해 오히려 강한 여운을 주는 PAK다운 작품으로 공감, 메시지, 반전의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역시, PAK은 PAK이군요.

PAK이  민팅한 Censored NFT


Censored

Censored의 오픈 에디션에서 민팅된 모든 NFT들은 글자 중간에 검열을 의미하는 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문구(단어, 상징, 아이디어, 비전, 신념 등)를 자유롭게 적어 NFT로 만들었지만 온전한 문구가 아닌 말 그대로 ‘검열된’ 것입니다. 이는 어산지가 미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진실을 말하고자 했을 때 그를 탄압했던 미국 정부와 기득권들의 입막음을 의미하는데요. 

우리가 직접적인 검열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검열이 존재하면 어떨지 상상해볼까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정성스럽게 글이나 사진을 올렸는데 하루 아침에 계정이 정지되거나 포스팅이 삭제된다면? 혹은 채팅방에 보낸 내 메시지가 갑자기 모두 사라졌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물론,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두려움부터 생길 겁니다. 

소설 1984

개인적인 불쾌함을 떠나 사회가 건전하게 성장하는데도 검열은 큰 걸림돌이 됩니다. 검열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국가들이 어떤 나라들인지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대중을 기만하고 권력을 부당하게 차지한 세력들은 언제나 언론을 우선적으로 통제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는데요. 군사독재정권에서 진실과 거리가 먼 일방적인 허위 정보를 만들어내고 의도적으로 특정여론을 형성했죠. 체제의 부당성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도 묘사된 바가 있어요.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은 진리를 만들고 관리하는 '진리부 기록국'이라는 곳에서 근무하며 영화, 만화, 서적, 전단 등 모든 기록물을 검열하는 역할을 합니다. 검열된 기록물들을 빅브라더의 예언과 대조한 후 모순되는 내용을 없애거나 교체하기도 하죠. 결국 세상에는 빅 브라더가 말한 '진리'만 남게 됩니다. 나는 무조건 맞고 너는 무조건 틀리다. 그러니 너의 메시지는 차단되어야 한다. 그것이 검열의 출발점입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군요. 

누군가 나의 메시지를 통제한다는 것은 내 삶의 전반이 통제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매일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고, 댓글을 남기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자유롭게 반응합니다. 이 모든 것이 통제된다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 하물며 창작과 표현을 업(業)으로 삼는 예술가의 생각이 검열로 통제된다면 예술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예술가에게 검열은 예술가의 정체성을 흔들고 근본 가치를 훼손시키는 테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PAK은 Censored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It’s about you”

어산지를 구하기 위해서, 혹은 예술가로서 검열에 반대해서만이 아니라, 어떤 개인이든 자유롭게 말할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당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싶었을 것입니다. 검열은 곧 자유의 문제이고 자유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진 기본적인 권리이기 때문이죠.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한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국민의 주요 권리 중 하나로 헌법에 명시해 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 헌법에서는 21조 1항과 2항에 언론의 자유, 검열에 대한 금지를 명시해 놓았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PAK의 Censored 소개 트위터

PAK은 검열을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현재 NFT로 만들어진 모든 Censored의 메시지들의 거래를 의도적으로 막아 놓아 프로젝트에 참여(민팅)한 사람들은 간접적으로나마 검열을 체험합니다. 어산지가 자유로워지는 날 - 검열로부터 해방되는 날 - 이 모든 검열의 선들이 사라지고 자유로운 전송이 가능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시계가 멈추고 시간이 흐른다

줄리언 어산지는 2024년 6월 26일 미국의 유죄협상제도(플리바게닝)를 통해 18개 중 하나의 혐의를 인정하고 사법 절차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수감생활이 스스로 인정한 혐의에 대한 구속기간보다 길기 때문에 더 이상 감옥에 수감될 이유가 없어졌고 고국인 호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Censored NFT예고한 대로 자유롭게 거래가 가능해졌고 CLOCK의 숫자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1728에서 멈추었습니다. NFT시계는 멈추었지만 이제부터 진짜 시간이 흐르는 셈입니다. 어산지의 자유, 검열로부터의 자유, 우리의 자유를 위한 시간이 말이죠. 

거래가 가능해진 Censored NFT
1728에서 멈춘 CLOCK

Censored를 보유한 홀더(Holder)들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요? 어산지와 함께 마치 감옥에서 풀려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기분일까요? 

Censored와 CLOCK은 검열과 해방의 체험, 어산지와의 연대, 현실적인 해결을 위한 지원까지 모두 아울러 크립토 아트로 풀어낸 매우 혁신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Censored는 탈중앙화 크립토가 중앙화된 권력의 막강한 힘과 폭력에 대항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크립토 분야 중에서도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연결될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드는 것이 예술이 가진 또 하나의 역할이기도 할 겁니다. Censored의 표면적인 이슈는 검열이지만 이는 우리 모두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산지가 풀려나고 검열의 선이 지워진 2024년, 속박당했던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마음껏 재잘거리는 그날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습니다.



• Pak 트위터  https://twitter.com/muratpak

• Censored 오픈씨 컬렉션  https://opensea.io/collection/censored-pak-assange

• Censored 홈페이지  https://censored.art/clock

• 위키리크스  www.wikileak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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