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nsored NFT는 글의 첫 부분에서 소개한 무료 NFT(오픈에디션)와 ‘CLOCK’이라는 단일 에디션의 NFT 경매로 함께 진행되었어요. 오픈에디션에서 발생한 모든 수익금은 정보의 자유, 디지털 개인 정보 보호 관련 단체에 기부되었죠. 한편 CLOCK NFT는 어산지를 직접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활용되었는데 판매과정에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CLOCK은 경매를 통해 판매되었는데 이를 통해 마련된 자금은 어산지의 지원 단체인 Wau Holland Foundation에 전달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CLOCK의 낙찰 금액이 Wau Holland Foundation으로 바로 전달된 것이 아니라 Assange DAO라는 곳에서 CLOCK을 구매한 후 그 비용을 PAK이 Wau Holland Foundation에 전달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PAK이 일종의 자금 중개인(?) 역할을 한 것이죠.
영상을 자세히 보면 숫자가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면서 깜빡입니다. 깜빡 깜빡. 두근 두근. CLOCK의 깜빡임이 어산지의 심장 박동과 동기화되어 있음을 나타냅니다. 비록 지금은 감옥에 갇혀 있지만 언론의 자유만은 포기하지 않는 살아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오르죠. 한 공간에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함께 숨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어산지의 문제가 결코 그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렇게 시계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공감의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Censored 홈페이지의 상단에는 'CENSORED IS A COLLECTION BY PAK & ASSANGE & YOU'라는 문장이 쓰여 있습니다. CENSORED 컬렉션은 PAK자신, 어산지, 그리고 그들을 보는 우리가 함께 만들었다고 말합니다. 숫자가 더해지는 것은 답답하지만 언젠가는 0 이 될 거라는 희망 또한 갖게 됩니다. 형태를 단순화해 오히려 강한 여운을 주는 PAK다운 작품으로 공감, 메시지, 반전의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역시, PAK은 PAK이군요.
Censored의 오픈 에디션에서 민팅된 모든 NFT들은 글자 중간에 검열을 의미하는 줄이 그어져 있습니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문구(단어, 상징, 아이디어, 비전, 신념 등)를 자유롭게 적어 NFT로 만들었지만 온전한 문구가 아닌 말 그대로 ‘검열된’ 것입니다. 이는 어산지가 미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진실을 말하고자 했을 때 그를 탄압했던 미국 정부와 기득권들의 입막음을 의미하는데요.
우리가 직접적인 검열의 대상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검열이 존재하면 어떨지 상상해볼까요?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에 정성스럽게 글이나 사진을 올렸는데 하루 아침에 계정이 정지되거나 포스팅이 삭제된다면? 혹은 채팅방에 보낸 내 메시지가 갑자기 모두 사라졌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물론,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두려움부터 생길 겁니다.
개인적인 불쾌함을 떠나 사회가 건전하게 성장하는데도 검열은 큰 걸림돌이 됩니다. 검열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국가들이 어떤 나라들인지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대중을 기만하고 권력을 부당하게 차지한 세력들은 언제나 언론을 우선적으로 통제해 왔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었는데요. 군사독재정권에서 진실과 거리가 먼 일방적인 허위 정보를 만들어내고 의도적으로 특정여론을 형성했죠. 체제의 부당성에 항의하는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서도 묘사된 바가 있어요. 1984의 주인공 윈스턴은 진리를 만들고 관리하는 '진리부 기록국'이라는 곳에서 근무하며 영화, 만화, 서적, 전단 등 모든 기록물을 검열하는 역할을 합니다. 검열된 기록물들을 빅브라더의 예언과 대조한 후 모순되는 내용을 없애거나 교체하기도 하죠. 결국 세상에는 빅 브라더가 말한 '진리'만 남게 됩니다. 나는 무조건 맞고 너는 무조건 틀리다. 그러니 너의 메시지는 차단되어야 한다. 그것이 검열의 출발점입니다.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군요.
누군가 나의 메시지를 통제한다는 것은 내 삶의 전반이 통제되는 것과 같습니다.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죠. 우리는 매일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소셜미디어를 이용하고, 댓글을 남기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자유롭게 반응합니다. 이 모든 것이 통제된다면 인간답게 살 수 있을까요? 하물며 창작과 표현을 업(業)으로 삼는 예술가의 생각이 검열로 통제된다면 예술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예술가에게 검열은 예술가의 정체성을 흔들고 근본 가치를 훼손시키는 테러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21조]
PAK은 검열을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현재 NFT로 만들어진 모든 Censored의 메시지들의 거래를 의도적으로 막아 놓아 프로젝트에 참여(민팅)한 사람들은 간접적으로나마 검열을 체험합니다. 어산지가 자유로워지는 날 - 검열로부터 해방되는 날 - 이 모든 검열의 선들이 사라지고 자유로운 전송이 가능해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줄리언 어산지는 2024년 6월 26일 미국의 유죄협상제도(플리바게닝)를 통해 18개 중 하나의 혐의를 인정하고 사법 절차를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실제 수감생활이 스스로 인정한 혐의에 대한 구속기간보다 길기 때문에 더 이상 감옥에 수감될 이유가 없어졌고 고국인 호주로 돌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Censored NFT는 예고한 대로 자유롭게 거래가 가능해졌고 CLOCK의 숫자는 더 이상 올라가지 않고 1728에서 멈추었습니다. NFT시계는 멈추었지만 이제부터 진짜 시간이 흐르는 셈입니다. 어산지의 자유, 검열로부터의 자유, 우리의 자유를 위한 시간이 말이죠.
Censored를 보유한 홀더(Holder)들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요? 어산지와 함께 마치 감옥에서 풀려나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기분일까요?
Censored와 CLOCK은 검열과 해방의 체험, 어산지와의 연대, 현실적인 해결을 위한 지원까지 모두 아울러 크립토 아트로 풀어낸 매우 혁신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Censored는 탈중앙화 크립토가 중앙화된 권력의 막강한 힘과 폭력에 대항하는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크립토 분야 중에서도 현실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연결될 수 있는 구심점을 만드는 것이 예술이 가진 또 하나의 역할이기도 할 겁니다. Censored의 표면적인 이슈는 검열이지만 이는 우리 모두의 권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산지가 풀려나고 검열의 선이 지워진 2024년, 속박당했던 저마다의 이야기들이 마음껏 재잘거리는 그날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