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COPY(엑스카피)는 영국에 기반을 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글리치 NFT아티스트입니다.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어요.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대표적인 OG(한 분야의 초기 개척자) 아티스트죠. 하지만 NFT를 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작품 수가 많은데 빛이 번쩍거리는 '글리치(Glitch) 아트'로 매우 유명합니다. (빛에 민감하신 분들은 브런치나 전자책으로 보실 때 주의를 요합니다.) NFT아트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XCOPY의 글리치 아트 세계를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출발~
글리치의 형태 작품으로 탄생한 오류들
일단 글리치라는 게 좀 낯설 수 있어요. 글리치는 '갑작스러운 고장, 돌발 사고, 결함' 등을 의미하는데요. PC, 게임기, TV 등 전자기기에서 발생하는 오류로 인한 오작동이나 화면의 깨짐 등이 대표적인 현상이에요. 이 깨짐 현상에 미적 가치를 부여해 예술로 만든 것이죠. 디지털 데이터를 고의로 손상시키거나 전자 기기를 조작해 디지털 오류를 만들어낸 작품들이 많습니다. 오류로 예술을 하다니. 뭔가 예술적이고 재미있지 않나요? 사실 글리치 아트는 꽤나 오래전부터 있었어요. 백남준의 'TV Magnet(1965)', Jamie Fenton의 'Digital TV Dinner(1978)'이 역사적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백남준의 작품은 'TV 자석'이라는 제목처럼 실제 TV에 자석을 갖다 대었을 때 스크린에 나오는 이미지가 일그러지는 모습이에요.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평범한 모습이 아니기에 오히려 신선한 발상과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겠네요.
파일을 개인 대 개인으로 조각 단위로 나눠서 공유하는 토렌트의 원리를 이용해 오류가 있는 파일을 만들고 그걸 강제로 실행시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글리치를 작품화한 'PEER TO PEER'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글리치 아트는 오류로 만들다 보니 최종 버전의 예측이 어렵고 그만큼 상상의 폭은 넓어집니다. 예술가의 의지로 시작되었지만 결과물은 글리치의 무작위에 맡겨야 하는 우연성의 예술이랄까요?
TV Magnet(백남준) Digital TV Dinner(Jamie Fenton) 3931 pieces(Balzac Button의 peer to peer 컬렉션/글 마지막 링크 참조)
글리치 NFT의 단군 할아버지
XCOPY는 NFT아트 초기부터 글리치를 활용해 작품활동을 해왔습니다. 해커타오와 마찬가지로 2018년 슈퍼레어라는 NFT마켓플레이스에서 민팅을 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죠. 그의 작품들은 처음에는 저렴하게 판매되었지만 NFT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역사적인 NFT로 인정받았고 말 그대로 '떡상'하게 됩니다. XCOPY 이후로 그의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유사한 형태의 글리치 아트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만들어졌죠. 어느 분야나 처음 시작해 새로운 경로를 개척한 사람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것 같네요.
자 이제 XCOPY의 대표적인 작품을 소개합니다. A Coin for the Ferryman. 얼핏 보면 조잡해 보이죠. 그런데 자세히 봐도 여전히 조잡합니다. 2018년 한 수집가가 139달러에 구입했었는데요. 3년 뒤인 2021년 1,330 ETH(이더리움/ 한화 약 72억 원)에 재판매되면서 큰 이슈가 됩니다. 무려 4만 2천 배에 달하는 상승률이었죠. 일반인이었다면 정말 인생 역전할 만한 금액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이 작품을 누가 왜 그렇게 비싸게 샀는지 의문이 들 수 있어요.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기존 예술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피카소의 소묘 자화상 어떤 예술가가 유명해지면 그의 초창기 작품은 작가의 예술세계를 꽃피우고 태동한 지점으로서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역사적 가치를 지니게 되죠.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의미를 두면 큰돈을 지불해서라도 소유하고 싶어 집니다. 피카소가 유명해지고 나서 그가 초창기에 스케치로 남겨두었던 그림들이 매우 높은 가치를 갖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A Coin for the Ferryman 역시 XCOPY의 초창기 글리치 스타일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인식되었고 그 역사에 의미를 둔 어느 수집가가 거금을 투자했을 것입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조잡함조차 시스템의 오류를 이용하는 글리치 아트의 성격상 글리치의 이미지를 부각하는 효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작품 제목이 왜 'A Coin for the Ferryman'일까요?
선박군주 카론이 배를 몰아 강을 건너는 장면(Alexander Litovchenko) '강에서 사람을 나룻배로 나르는 사람을 위한 동전'이라는 뜻의 이 제목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나오는 표현인데 요. 죽은 자가 저승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지하 강을 건널 때 선박의 군주인 카론에게 지불하는 대가(동전)를 말합니다. 로마 시대에 새로운 배를 물에 내려놓을 때, 선원들이 죽게 되면 저승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동전을 돛대 아래에 묻어 둔 데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이승에서 저승으로, 즉 삶에서 죽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은유한다는 점에서 디스토피아, 죽음, 무관심 등을 소재로 삼는 XCOPY의 작품철학이 녹아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코인(A Coin)은 흔히 NFT 거래에 사용하는 암호화폐를 일컫기도 한다는 점에서 크립토 아트에서 자주 사용하는 밈(MEME)의 감성을 넣은 제목일 수도 있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