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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llas Aug 04. 2024

어느 디스토피아 몽상가의 이야기 - 엑스카피(2)

왜 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요?

Right-click and Save As guy

Right-click and Save As guy는 XCOPY 하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이고 유명한 작품입니다. 글리치를 배경으로 분홍 선글라스를 낀 후드 차림의 한 사람이 입술을 열심히 움직이고 있죠. 펑키한 느낌으로 랩을 하는 듯한 모습이에요. 이 작품은 무려 700백만 달러(1,600 ETH/한화 약 84억 원)에 팔렸는데요. 누가 샀는지 아시나요? 바로 'COZOMO DE MIDECI'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래퍼 스눕독입니다. 스눕독은 Deekay, Dmitri Cherniak, Clair Silver 등 유명 NFT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다수 소유하고 있는데 이 작품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래서인지 둘이 정말 닮아 보이는데요, 스눕독도 이 작품을 보면서 "어, 이거 나랑 닮았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스눕독과 Right-click and Save As guy

Right-click and Save As guy라는 제목은 마우스로 우클릭을 해서 '다른 이름(guy)으로 저장'한다는 뜻입니다. 그저 마우스로 우클릭 저장하기만 해도 그만인 디지털 이미지를 왜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사느냐는 NFT에 대한 세간의 인식을 풍자한 것입니다. 사실 NFT아트는 단순히 예술 감상을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뉴욕 거리 전광판에서 전시되는 NFT들 "우리 NFT가 저기에 걸려 있다고!"

블록체인으로 소유권이 증명되므로 NFT아트의 소유자에게 다양한 권리와 혜택을 줄 수 있으며, 작품-작가-팬(소유자) 사이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만들어 주는 유대의 끈이 되기도 합니다. 같은 아티스트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커뮤니티가 만들어지고 다양한 팬 활동을 하기도 하죠. 같은 작품, 같은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 관심사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기도 합니다. 아티스트들은 Fewocious처럼 팬들과 함께 페인팅 이벤트를 열거나 파티를 열기도 하죠. 개인적인 미술 감상과 컬렉팅을 넘어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있다고 할 수 있어요. 또 작가와 팬들 사이의 친밀감이 높아지며 예술과 예술가의 세계를 보다 깊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역동적이고 재미있고 신납니다. 만약 좋아하는 NFT아티스트가 생긴다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해 보길 권합니다. 

친구, 수집가들과 페인팅 파티를 연 Victor Langlois(FEWOCiOUS) 작가

한편으로 NFT는 시간과 열정을 쏟아 만들어낸 아트에 대한 보상이 로열티를 통해 창작자들에게 돌아가게 한다는 점에서 창작자 친화적 시스템입니다. 이전에는 창작물을 한 번 판매하면 끝이었지만 NFT는 재판매가 발생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해당 거래 금액의 일정 비율(로열티)이 창작자에게 자동으로 지급되기 때문입니다. 거래도 아주 편리해져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 팬만 확보한다면 창작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경제적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XCOPY가 NFT를 적극 옹호하는 지점도 바로 이런 부분이죠. 이처럼 NFT는 새롭고 다양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독특한 예술 도구의 역할을 합니다. XCOPY의 작품 좀 더 살펴볼까요?


HOUSE OF FOMO

House of Fomo

작품 House of Fomo는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을 표현한 것으로 NFT의 가격이 급상승할 때 구매를 하지 못해 소외될 것으로 느끼는 공포입니다. 예컨대 어제 100만 원이었던 작품의 가격이 하루 만에 400만 원, 500만 원이 되면서 당시 사지 못했던 후회와 앞으로 더 오를까 봐 전전긍긍하는 심리가 섞여 일종의 불안 증세가 나타나는 건데요. 우리나라에서도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면서 '영혼까지 끌어 모아' 부동산을 매수했던 사례들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가격상승으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을 떨쳐내기 위해 무리를 해서라도 큰 금액을 베팅하기도 했는데요. 그렇게 되면 리스크는 당연히 커질 수밖에 없겠죠. NFT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게다가 NFT시장은 변동성이 매우 커서 하루아침에도 가격이 2배, 3배 상승하거나 반대로 1/2, 1/3 가격으로 내려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위험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따라서 더욱 신중하게 구매해야 하는데 급격히 상승하는 NFT의 가격을 눈으로 지켜보면 심리적 통제가 쉽지 않다는 게 문제입니다. 마음이 조급해지니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FOMO에 의해 묻지 마 매수에 나서게 되는 것이죠. House of Fomo는 이와 같은 NFT시장의 성격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쇼핑백 모양의 디자인으로 마치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아 넣듯 NFT를 가볍게 구매하는 심리를 표현했고, 도박장을 의미하는 'House'라는 제목에서는 XCOPY 식의 냉소적인 유머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PANIC STATIONS

Panic Stations

Panic Stations에서는 휴지가 모두 팔려(SOLD OUT) 살 수 없게 된 것처럼 구매하려 했던 NFT가 모두 판매되어 구매할 수 없게 된 당황스러운 상황을 표현합니다. FOMO와 유사하게 NFT시장 참여자들의 심리를 나타내고 있는데요. 사실 이 작품은 'Paper Hands(종이 손)'라는 투자 용어를 빗댄 작품이기도 합니다. Paper Hands는 NFT구매자가 작은 가격하락이나 상승에도 민감하게 반응해 NFT를 빠르게 판매하는 것을 말하는데요. 마치 주식의 우량주처럼 NFT의 가치를 믿고 장기적으로 보유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급하게 판매하는 경우죠. 작품에 나온 두루마리 휴지(Toilet Paper)의 'Paper'와 스마트폰을 움직이는 손(Hands)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유추할 수 있습니다. - 반대로 보유한 NFT를 장기적으로 소유하는 다이아몬드 손(Diamond Hands)이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  또 스마트폰 오른쪽 위에 적혀 있는 23:58이라는 시간과 한 칸 밖에 남아 있지 않은 배터리를 보면 더욱 긴장감이 생깁니다. 23시 58분은 하루가 끝나기 직전 무언가 빨리 마무리해야 될 것 같은 시간이고 배터리 역시 언제 수명을 다할지 몰라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시간은 촉박하고, 배터리는 부족하고. 빨리 팔아야 하는데 이러다 못 팔면 어쩌지? 라면서 말이죠. 여간 큰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은 제목에서도 잘 드러나는데요, 제목인 'Panic Stations'는 '빠르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아 걱정하는 상황'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이에요. NFT를 판매하기 위해 바삐 손가락을 놀리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죠. 엄지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며 까딱거릴 뿐인데 이 손의 주인공이 짓고 있을 당황한 표정과 충혈된 눈, 식은땀마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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