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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낙하 Nov 01. 2022

메리 틴케이스

글스터디 항해 2회차 - 언어/말

글스터디 '항해'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2회차 글을 브런치에 올립니다.





  그는 행복한 결말을 만들어 준다는 aipotu 사의 틴케이스를 손에 넣었다. 검은 배경 위로 조잡한 형광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손바닥만 한 철제 상자. 책의 일부만 닿아도 기적적으로 흡수되어, 넣은 이의 눈앞에 행복한 결말을 비추어 준다는 마법과도 같은, '메리 틴케이스'. 전 세계에서 단 한 명에게만 체험할 기회를 준다는 모집에서 그는 당당히 체험자로 선발되었다. 지독한 행운이었다. 그는 방금 그 행운을 거머쥐어 주인공의 마지막을 목격하고 온 참이었다. 


  과거 점성술을 연구하고 관련 제품을 생산하는 aipotu 사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점성술은 정부기관은 물론 공기업과 사기업, 나아가 우리네 일상생활까지 폭넓게 쓰이는 학문이었다. 그렇기에 관련 사업 역시 자연히 주류였고, 점성술과 연관된 기업들은 청년들이 입사를 희망하는 최고의 기업이었다. 그중에서도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점성술 산업을 선도하던 aipotu 사는 명실상부 모두가 인정하는 대기업 중 하나였다.  그러나 17년 전쯤, 정부 주도 하에 이루어진 '탈-미신 정책' 이후 과학이 빠르게 흡수되며 점성술이 시대의 뒤안길로 밀려나게 되면서, 점성술 사업도 자연히 시들해졌다. 

 

  이 시기는 많은 회사들이 업종을 바꾸거나, 점성술을 바뀐 시대에 접목시킬 방법을 빠르게 찾아내가 위해 사활을 기울이는 등, 격변의 시대였다. 이 격변의 시대에 많은 회사들이 점성술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으며, 일부 기업만이 시대에 발맞추어 살아남았다. 


  격변의 시대, 다른 회사는 몰라도 aipotu 사 만큼은 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aipotu 사는 산하에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대기업이었고, 언제나 점성술 산업의 선두를 달리던 기업이었기에 바뀐 시대에도 금방 적응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aipotu 사가 '탈-미신 정책' 이후 12년간 '점성술의 부흥'만을 이야기하며 관련 제품을 출시하는 것이 연이어 계속되었고, 사람들의 기대는 차츰 식어갔다. 12년간의 끊임없는 부진만이 이어진 셈이었다. 


  aipotu 사의 부진이 이어지자 마침내 '탈-미신 정책' 시행 13년 차가 되던 해, 경영진이 교체되었고 aipotu 사에는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바뀐 경영진은 곧바로 aipotu 사가 그간 진행해오던 지지부진한 점성술의 부흥과 관련된 개발 계획들을 폐기시켰고, 지금까지 쌓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점성술의 장점을 활용하면서도, 현재 시대에 발맞추어 사용될 수 있는 실용적인 제품을 개발할 것을 선언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탈-미신 정책' 시행 17년 차가 된 지금, aipotu 사는 회복세를 유지하며 안정적인 궤도에 오를 수 있게 되었다.


  aipotu 사의 경영진 개편 이후, aipotu 사에서는 신제품이 연이어 출시되었는데 이는 대부분 그간 이어져온 점성술 연구를 활용하면서도 특정 소비자층을 노린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가장 처음 발표한 것은, 점성술이 별을 관찰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활용하여, 절기별로 다른 별자리들을 띄워주는 플라네타리움이었다. 이는 독특한 인테리어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나, 별을 좋아하는 마니아층 혹은 선물용으로도 많이 판매되었으며, aipotu 사의 회복세에 큰 도움을 주었다.


  이후로도 aipotu 사는 비슷한 제품을 연이어 출시하고, 때로는 이제는 취미생활이 된 점성술 동호회 등을 노린 취미 용품들을 출시하며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aipotu 사가 대대적으로 출시한 신제품, '메리 틴케이스'가 출시된 것이었다. '탈-미신 정책' 시행이 있기 불과 8년 전에 태어난 그로서는 점성술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모를뿐더러, aipotu 사가 과거에 어떤 제품을 출시했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부모님이나 주변 어른들에게 들은 것들이 전부였다. 


 그런 그가 aipotu 사의 신제품 체험에 응모하게 된 이유는 오로지 그가 사랑하는 작품 때문이었다. 무엇을 해도 행복해질 수 없는, 연이어진 불행 앞, 온전한 해결은커녕 진전마저 바랄 수 없을 만큼 끝없이 반복되는 세상 속의 주인공을, 그는 사랑했다. 그것은 마치 마지막까지도 그 끝을 찾지 못한 이에게 끝을 선고함과 같았다. 수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납득하지 못했다. 행복한 결말을 바란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가 바란 행복이란 아무래도 좋아서, 주인공 주위의 불행들이 조금이나마 걷히기를 바랐을 뿐이었을 터인데. 그 사람에게 정녕 행복이란 무엇인가, 스스로 선택한 죽음만이 그 사람에게는 행복이었나. 지리멸렬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가 사랑한 작품 속 주인공은, 재난 이후 황폐해진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였다. 재난으로 소중한 이들을 잃고, 새로운 동료를 만난 인물이 몇 번이고 반복되는 시간 속에 주어진 고난과 역경에 맞서 싸워가는 이야기. 고난과 역경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라고는 하지만, 이야기는 생각 이상으로 희망찬 것은 아니었다. 특정 구간의 시간이 반복되는 만큼, 고난은 끊이지 않았고, 주인공은 끊임없이 같은 고난과 마주해야 했다. 끊임없이 같은 고난과 싸우다, 끝내 현실과 타협한 주인공의 이야기. 도서관 서가 한 구석에 처박힌 인기 없는 옛 소설을 그는 누구보다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가 사랑하는 주인공이 행복하기를 바랐다. aipotu 사의 시제품 체험에 당첨되어 제품을 수령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이 기기에 자신의 소장본을 넣으면 마법과도 같이 주인공이 행복해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가 본 결말은 주인공이 스스로 주인공의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택하는 결말이었다. 


  aipotu 사의 신제품에 넣은 책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는 처음부터 끊임없이 들어온 주의사항이기도 했다. 현재의 기술로 넣은 책을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은 이루어질 수 없다고 했다. 한 번 눈앞에 비추어진 이야기 역시 다시는 볼 수 없다. 그저 지나가는 찰나의 환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들. 한때의 환상과도 같은 제품이었다.


  단 한 번의 환상을 곱씹기를 수십 분, 그는 문득 언어란, 그리고 말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해보면 그가 좋아한 소설도 그저 수많은 단어와 문장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집합체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단어와 문장의 조합에 그는 많은 날을 행복해했으며, 슬퍼했다. 때로는 주인공의 여정에 공감했고, 주인공이 겪는 고통에 슬퍼했다. 그렇다면 그가 겪고 있는 이 상실감과 괴로움 역시 하나의 활자에 불과한 것일까. 그는 문득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고작 활자 덩어리라는 생각에 서글퍼졌다.


  이 활자 덩어리에 지금껏 울고 웃었던가. 그렇다면 이 활자를 이루는 언어란 무엇인가. 고작 이 활자 덩어리가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헤어날 수 없는 우울함에 빠지게 만드는 것인가. 그는 문득 학창 시절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문학과 관련된 동호회나 모임이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하며 글을 쓰겠노라 선언했던 나날들. 그는 읽는 것만큼이나 쓰는 것을 좋아했고, 때로는 자신이 생각한 모든 것들을 써 내려가고는 했다. 그렇게 써 내려간 소설이나 시가 수없이 많았으나 그중에 타인에게 보인 것은 열몇 편에 불과했다. 


  그는 타인에게 자신의 글을 보이는 것이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그가 생각하기에 그의 글은 부끄럽고 추잡하여 남에게 선뜻 내보일만한 것이 못 되었다. 문학 동호회에 빠짐없이 드나들고, 글을 전공으로 삼았음에도 끝끝내 문학과는 먼 직업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일까. aipotu 사의 시제품을 체험한 뒤 그는 슬픔과 더불어 알 수 없는 기분에 몹시 잠겨있었다. 가슴 한편에 싹이 돋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는 문득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지금이라면 무언가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이를 펴고 펜을 굴린다. 한 줌의 망설임도 없이 활자는 유영한다.


  '메리 틴케이스'가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면, 그 스스로 행복을 써 내려가면 되는 일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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