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식이 뭐 중요하니

15. 고려사에 만난 두 스님

by 여행꽃


불교 유적지인 부다가야는 '부처의 화원(花園)'이라는 뜻이다. 기원전 5세기에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이곳에는 불교를 믿는 나라의 절들이 모여 있어 그 나라만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중국은 크고 웅장한 느낌이었고 일본은 화려했다. 한국의 절, 고려사는 시골의 작은 절 같았다.



내가 부다가야에 온 이유는 순전히 고려사에서 묵기 위해서였다. 고려사는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이용할 수 있었고 인도에서 한국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 인도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는 쉼터 같은 곳이었다.



고려사 주지스님은 둥근 얼굴에 보조개가 귀엽게 있었다. 부끄럼 많은 소년처럼 자주 두 뺨이 붉어졌다.



지내고 싶은 만큼 지내다 가세요. 불교를 믿지 않더라도 잠시 머물다 가니 부처님께 감사 인사는 꼭 드리세요.



주지스님은 어떤 설교도 하지 않으셨고 그저 숙박객의 식사며 잠자리를 따뜻이 챙겨주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 같았다. 때가 되면 불당에서 불경을 외셨지만 권위적이고 위엄 있는 느낌이 아닌 오늘 하루를 마감하는 자장가처럼 사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었다.



염불 하면서 불당 문단속을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오곤 했다. 완전 생활 밀착형 주지스님이었다. ‘격식이 뭐 중요하니! 마음이면 되지’ 말씀하시던 주지스님은 한국에서 뵈었던 다른 스님들에게서 느껴지는 위엄, 어려움이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주지스님은 내가 머물 방을 알려준 후 고려사에 묵고 있던 다른 여행자들을 소개해 주었다. 그중에는 불교 성지 순례 중인 비구니 스님이 계셨다.



그 스님은 여태껏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의 스님이 아니었다. 진지, 차분, 절제, 평온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다. 그분은 지나치게 명랑했고, 수다스러웠으며, 세상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았다. 하고자 하는 것을 꼭 하는 것 같았고 주변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 분 같았다.



그분은 고려사 앞마당, 나무에 열린 파파야를 따 먹자고 주지스님을 내내 졸랐다. 아직 때가 아니라는 주지스님의 거절에도 비구니 스님은 고려사를 떠나는 날, 기어코 아직 다 익지 못한 열매를 주지스님이 따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분이 그렇게 밉살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스님의 존재가 공간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것 같았다. 모든 대화를 자연스레 이끌고, 경계 없이 사람들을 품어내는 모습에서 어쩌면 진짜 수행의 힘이란 이런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스님 덕분에 파파야 맛도 보았고, 낯선 여행자들이 마치 오래된 일행처럼 엮이게 되었다. 스님의 진두지휘 아래 이야기는 흘렀고, 마치 도슨트 투어처럼 우리는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 움직였다.



주지스님은 침묵으로 여행자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면, 비구니 스님은 수다와 명랑함으로 우리 마음을 스르르 꺼내 주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들은 어쩌면 각자의 자리에서 중생의 번뇌를 조금씩 구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려사에 있는 동안 음식, 언어, 사람 모두 한국의 것으로 채웠던 시간이었다. 그 며칠간의 일상이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했다. 천년만년 이곳에 머물고 싶은 고려사에서 만난 두 스님은 내내 기억 속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