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마더하우스 중 가장 유명한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는 이미 많은 봉사자들이 있었다. 무엇이 그 많은 봉사자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고 있는지 궁금했다.
봉사자들은 마치 자신의 가치를 증명이라도 하듯 할 일들을 물색했고, 도움을 주기 위해 쟁탈전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환자보다도 봉사자들이 더 많은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첫날 내가 한 일이라고는 나눠진 구역에서 청소하고 다 함께 이불 빨래를 한 후 옥상에서 간식을 먹으며 다른 봉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나는 이곳에서 무엇을 느껴야 하는 걸까?
몇 달씩 머물며 이곳에서 봉사하는 것이 "휴가"라고 말하는 사람들, 힐링하고 간다는 사람들, 심지어 삶의 목적이 이곳에 있다고 말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어떤 이들은 봉사를 통해 오히려 자신이 위로받고 구원됐다고 했다. 그런 발런티어들의 마음을 나는 알 수 없었다. 진정, 알고 싶었다.
나 역시 봉사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내면으로 타인을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안에서는 그런 마음이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실이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했다. 나의 쓸모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불필요한 인력이 많은 이곳에는 내가 필요 없는 것 같아서 다음날 장애아 보육시설에 갔다. 처음 장애아동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무조건 잘해 주려고 애썼다. 그런 나에게 수녀님이 당부하셨다.
아이들이 가엽고 불쌍해서 무엇이든 다 해주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스스로 먹고 의사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대신 먹여주고 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못하는 것을 내가 대신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도움을 받을 대상자의 입장보다는 도움을 주는 내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동안 ‘나는 봉사하는 사람이다’라는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던 건 아닐까. 정작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다가가기보다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어 애써 내 쓸모를 밝혀내려는 봉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진심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안하기 위한 연극처럼.
연극 같던 나의 봉사는 3주 동안 이어졌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내 쓸모를 잃어가는 듯했다. 내가 있든 없든 이곳은 아무 일 없이 이어져 갈 것이다. 늘 다른 새로운 봉사자들로 채워질 이곳에는 나의 자리가 없었다.
여전히 나의 쓸모를 찾아 헤매는 나는, 어쩌면 타인에게서 나의 가치를 구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 안에서 진정한 필요와 쓸모를 발견할 수 있다면, 애써 내 존재의 이유를 증명하려 들지 않아도 될 텐데. 그러지 못한다는 건, 아직도 스스로 충만하지 못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