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를 팔았더라도

17. 콜카타에서 희망 찾기

by 여행꽃


마더 테레사(1910~1997)는 평생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한 가톨릭 수녀로,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해 전 세계 빈민 구호 활동을 펼치며 197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2016년 성인으로 시성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고통을 신성시하며 충분한 의료 지원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비판과, 기부금의 사용 투명성 부족, 권력자들과의 관계 등으로 "자비를 판다"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그녀는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지만, 그 삶과 철학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엇갈리고 있다.



‘마더 테레사’ 수녀님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마더 하우스’에서 자원봉사를 해보고 싶었다. 세간의 논란 속에서, 마더 테레사는 신격화된 인물이기도 했고, 동시에 비판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봉사하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과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왜 그곳에 가는지 궁금했고 알고 싶었다.



콜카타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자 거리인 서더 스트리트에 있는 게스트 하우스로 갔다. 그곳은 80%가 마더 하우스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장, 단기로 체류 중인 여행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초등학교 교실 크기의 방 두 개가 통로로 연결되어 있고 2층 침대가 5열 7행으로 가득 놓여 있었다. 남녀 구분 없이 오픈된 군대 막사 같은 느낌의 게스트 하우스였다. 바깥 공용 샤워실과 화장실에서 옷도 갈아입어야 하는 열악한 숙소였다.



장기 체류자들은 최소한의 생활비로 저렴한 숙소에서 오래 버텨야 하기 때문에 이곳의 숙박환경에 투정 부리지 않는 듯했다. 사실 인도의 저렴한 물가 탓에 나름 독방의 큰 침대가 있는 게스트 하우스를 계속 이용했는데 이런 군대 같은 곳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배정받은 침대에 앉아 주변을 살펴보니 한국 사람이 제법 보였다. 그중 순해 보이는 인상의 레오에게 먼저 인사를 하며 ‘마더 하우스’에 대해 물었다. 그는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 주며 함께 자원봉사 가자고 말해 주었다. 레오의 하얀 피부와 느린 미소, 부드러운 저음이 사람을 편하게 했다. 레오와 4명의 친구들은 가톨릭대 신학생이었고 나와 같은 학번 었다.



신학생들은 같은 학번이 함께 군대를 다녀온다고 한다. 군대 성당에 배정되어 관리되다가 함께 제대를 하고 복학하기 전 봉사하러 왔다고 한다. 예비 신부님들이라 그런지 친절과 봉사 정신이 몸에 배어 있었고 남의 말도 잘 들어주었다. 나를 도와주던 그들과 당연하게 친해졌고 캘커타의 생활을 늘 함께하게 되었다.



어느새 나의 인도 여행은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북인도의 유명 여행지를 돌아다니며 보고 느꼈던 것들과는 다른 것이 이곳 콜카타에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내가 찾던 메시지가 이곳에 있길 바랐다.





혹자는 마더 테레사가 자비를 ‘팔았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 말이 완전히 틀렸다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선택한 방식,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 그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결함조차 오늘날 마더하우스를 존재하게 한 힘이 되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비판이 무엇이든, 그 안에 ‘살아있는 도움’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더 바라야 할까. 마더하우스는 지금도 전 세계에서 자원봉사자들을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 자원봉사자들은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손길이 된다. 치료가 부족하더라도, 시설이 낡았더라도, 그 손이 건네는 따뜻함은 누군가의 삶을 지탱한다.


마더 테레사의 길이 완벽해서가 아니라, 그 길 위를 걷는 수많은 이들 덕분에 이 집은 살아 있다. 자비를 팔았다고 해도, 그 자비는 오늘 누군가에게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현실의 조각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