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예비 신부님

19. 신을 선택한 친구들

by 여행꽃


막연했던 나의 역할을 배우면서 캘커타에서의 봉사 생활에 점점 익숙해졌다. 아침이면 신학생 친구들과 함께 ‘마더 하우스’에서 오전 봉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낮잠을 잔 후 길거리 보도블록에 나란히 앉아 양배추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주말이면 바자르(시장)에 가서 쇼핑을 하고 영화관도 갔다. 돌아오는 길엔 맥주를 마시며 발리우드에 흠뻑 빠져 인도음악을 흉내 내며 웃었다.



지금 나와 이렇게 웃고 떠드는 예비신부님들은 그저 나와 같았다. 즐거운 것에 웃고 맛있는 것을 찾는 나와 같은데 곧 성직자가 된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이렇게 평범한 청춘인데 어떻게 그들은 신부님이 될 수 있을까 싶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미카엘은 자신의 짐보다도 더 큰 젬베를 가지고 다녔고 늘 음악과 함께 했다. 음악가, 작곡가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성직자의 길을 택했다. 혹은 철학자도 되었을지도.



어릴 적부터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다는 빈센트는 미성의 소유자였다. 음색이 곱고 신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노래는 잘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영혼이 깨끗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가 말하는 라틴어는 정말 근사했다.



까칠했던 요한은 살짝 투털이였다. 분명하게 선을 그었고 자신만의 시간을 잘 갖꿨다. 정이 없다고 느낄 정도로 친절하지 않은 친구였다. 다른 친구들은 소소한 것까지 나를 도와주려고 했고 매너남의 친절과 배려가 몸에 베여 있었지만 유독 요한은 까칠했고 친절하지 않았다. 물론 불친절하지도 않았다. 감정 낭비를 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다. 또는 무관심했다.



가장 좋아했던 친구 레오는 정말 순했다. 정말 착했고 누구나 생각하는 신부님의 이미지 그 자체였다. 매 순간이 선했고 다정했다. 늘 밝게 웃으며 먼저 다가가는 천사 같은 그 였다. 아니 천사가 있다면 바로 레오일 거라고 생각했다.



노래 음색이 좋았던 빈센트, 젬베를 연주하던 미카엘, 유머러스한 요한, 자상한 레오까지 왜 신부가 되고 싶었는지 궁금했다. 그들은 모두 모태신앙이었고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신부님이 되길 꿈꿨단다. 마치 신에게 선택받은 것처럼 그들은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있는 듯했다.



작별하기 하루 전, 레오에게 물었다.


“어떻게 신부가 되려고 했어?”

“엄마의 꿈이었어. 어릴 때부터 미사 보면서 커왔고 신부님의 멋진 모습을 동경했지. 자연스럽게 그 길을 가게 됐어.”

“진짜 원해?”

“처음엔 엄마가 원해서 시작했고 신학교 와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 조금 흔들렸는데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을 저버릴 수는 없을 거 같아. 조금씩 마음의 준비하고 있어. 어릴 때부터 받은 많은 사랑, 이제 돌려줘야지”

“외롭지 않겠어?”

“사람은 누구나 외로워! 그리고 난 지금껏 받은 사랑만으로도 충분해”



레오는 나의 구구절절한 모든 질문에 충실하게 답해 주었다. ‘성직자가 될 사람은 타고나는 것일까?’ 레오의 세계에는 빛으로 가득했고 선택의 망설임도 후회도 없어 보였다.



유독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온 나와 봉사는 어울리지 않았다. 사회가 내게 해준 것도 없는데 왜 사회에 환원해야 하냐고 화를 내던 나와 사랑은 거리가 멀었다. 이해타산을 따져가며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은 나눌 수 없다며 받은 만큼만 주려는 나와는 달리 사랑으로 충만한 레오를 보면서 나의 빈곤을 깨달았다.



신의 선택을 받은, 아니 신을 선택한 예비 신부님들.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나를 성장시켰다.






불투명한 나의 미래가 불안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하던 나는 이미 자신의 목적지를 정해 놓은 그들이 마냥 부러웠다. 물론 지금은 신부님이 되었을 수도, 그만두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가끔은 선택의 귀로도 없이 주어진 대로 살고 싶다는 생각도 간혹 한다. 이 길이 맞나 의심하며 자꾸 뒤 돌아보게 되는 나의 발자취가 무겁다. 아무런 의심 없이 거침없이 앞을 향해 나가고 싶다. 그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