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이 되었다.

21. 오로빌, 내가 만나지 못한 이상향.

by 여행꽃


내 항공권은 델리 인(Delhi in), 뭄바이 아웃(Mumbai out)이었다. 인도 북부에서 시작한 여행은 유명한 관광지를 걸쳐 마침내 콜카타(Kolkata)에서 자원봉사까지 마쳤다. 이제 남인도를 거쳐 뭄바이로 가는 여정을 시작할 때였다.


여행 중 우연히 만난 한 한국 여행자가 강력히 추천한 곳이 있었다.
“오로빌 명상센터에서 일주일 지냈는데 정말 좋았어요. 꼭 가보세요.”
그녀의 눈빛이 진심이었고, 내가 가려던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망설임 없이 오로빌을 향하기로 했다.


인도 오로빌(Auroville)은 "지구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상 아래, 1968년 프랑스 철학자이자 영적 지도자인 미라 알파사(‘더 마더’)에 의해 창립된 이 도시는, 인류의 단합과 조화를 실현하려는 실험적인 이상 공동체이다.


이곳은 국적, 종교, 인종, 정치, 경제적 배경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장소로 설계되었다. 주민들은 ‘시민’이나 ‘소속국가의 국민’이라는 개념보다, ‘지구 시민’으로서 정체성을 갖는다. 실제로 유엔과 인도 정부는 오로빌의 창설을 공식적으로 지지했으며, 1968년 도시 창립 행사에는 전 세계 124개국에서 온 젊은이들이 참가하여 각국의 흙을 가져와 하나로 합쳐 심벌릭 한 ‘지구의 무덤’을 만들었다.
오로빌은 단순히 철학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실제로 독특한 도시 구조와 지속가능한 삶의 모델을 실현하고 있는 곳이다. 20개의 다양한 커뮤니티로 구성된 오로빌은 농업, 재생에너지, 건축, 예술,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립을 실천하고 있다. 이곳에는 전통적인 화폐 개념이 없고, 주민들은 노동 기여와 공동체 활동을 통해 기본 생활을 영위한다.




첸나이(Chennai)를 지나 폰디체리(Pondicherry)에 도착했다. 버스 터미널에서 오로빌로 가기 위해 릭샤를 잡았지만, 릭샤 기사는 거리가 멀다며 택시를 타라고 권했다. 하지만 내게 정보를 준 그녀는 릭샤를 타고 갔다고 했는데… 어딘가 이상했다. 택시 요금은 생각보다 비쌌고, 한 현지인이 버스를 타라고 조언해 주었다.



버스기사가 오로빌이라며 내려준 곳엔 공동체 마을이 없었다. 등산로 입구가 시작되는 듯한 곳에 오로빌이라고 쓰인 작은 팻말이 보였다. 마침 그곳을 내려오고 있던, 오로빌에 머물고 있다는 여행자들을 만났다. 그들은 우선 **비지터스 센터(Visitors’ Centre)**를 찾아가 보라고 조언했고, 걸어가기에는 멀다고 알려주었다.


가늠할 수 없는 거리와 불확실성에 돌아갈까? 계속 갈까? 갈등하며 길을 걸어 가던 중 지나가던 오토바이 한 대가 멈췄다. 운전자는 비지터스 센터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비포장 도로 위, 숲 속 사이로 햇빛이 비추는 모습은 묘한 신비감을 자아냈다. 오토바이 뒤에 앉아 듣는 그의 오로빌 예찬은 인상 깊었고, 그는 나의 여행에 행운을 빈다는 인사를 남기고 사라졌다.



비지터스 센터에 도착해 명상 프로그램과 숙소를 문의했다. 하지만 명상은 이미 예약이 마감됐고, 2주 이내에는 참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고 했다. 숙소 역시 직접 찾아가야 한다고 했고, 전화를 돌려 겨우 가능한 곳의 위치를 지도에 표시해 주었다. 명상에 참여할 다른 방법이 있는지 물었지만, “없다”는 답뿐이었다.



지도를 따라 숙소를 찾아 걸었다. 도착한 곳에서 의사소통에 애를 먹었다. 결제를 다른 장소에서 하라는 말 같았지만, 이해되지 않았다. 오로빌의 시스템은 내게 너무 낯설고 복잡하게 느껴졌다. 콜카타에서 한국 자원봉사자들과만 어울렸던 탓일까. 내 영어 감각은 초심으로 돌아가 있었다. 내가 묻는 질문들은 그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고, 두 번 세 번 말해도 오해만 쌓였다. 결국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지냈다. 아침이면 일찍 일어나 조용히 마을을 산책했다. 누군가의 텃밭을 지나, 누군가의 자전거를 지나 누군가의 평온한 삶을 바라보며 걸었다. 나는 이곳에 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외딴섬처럼 떠 있었다.



누구도 나를 방해하지 않았고, 누구도 나를 불러주지 않았다. 침묵은 고요했고, 고요는 나를 고립시켰다. 이곳은 명상을 하기도 전에 나를 깊은 침묵 속으로 밀어 넣었다. 결국, 나는 떠나기로 했다. 이상하게도 가슴이 무겁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짐을 챙기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 내게 오로빌을 추천했던 그녀가 말한 곳은 폰디체리에 있는 명상센터였고, 내가 찾아간 공동체 마을 오로빌은 그녀가 말했던 그 오로빌이 아니었다.


여행은 늘 예상과 다르다. 어쩌면 오로빌은 나에게 침묵을 가르쳐주기 위해, 그렇게 다가온 것인지도 모른다. 말할 수 없었던 시간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오로빌을 찾는다면, 이번엔 그 문 안으로 들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