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20. 떠나야 할 때를 알기

by 여행꽃


처음 마더 하우스에서 자원봉사는 1~2주 정도 계획 했었다. 그러나 난 3주 동안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마더 테레사의 집에서의 자원봉사가 의미 깊어서라기보다는 그곳에 온 봉사자들과의 유대와 생활들이 너무 재미있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들과의 시간에 푹 빠져 있었기 때문에 나의 일정을 미뤄가며 그곳에 남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떠남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동안 함께 한 봉사자들 (4명의 신학도 친구들, 2명의 일본친구들, 꼰대 털보아저씨와 막내 여동생 같은 친구)과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다. 그들은 나의 여행수첩에 남은 여행을 무사히 마치기를 바라는 인사말을 써 주었다. 모두들 이른 아침 봉사하러 가니 작별인사는 오늘 여기서 하자며, 또 보자는 말과 함께 씩씩하게 헤어지기로 했다.



자원 봉사하러 가던 날과는 다르게 늦게 일어나 짐을 꾸렸다. 정이 들었던 도미토리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짐을 챙겨 게스트하우스를 나오니 레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무거운 내 배낭을 받아 들며 함께 걸었다. 배웅해주고 싶어서 봉사하러 가다가 다시 돌아왔다고 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침묵으로 무거웠다.



어색한 기류 속에 그는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지만 결국 침묵을 깨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도착했고 내 배낭을 돌려받아 둘러멨다. 남은 여행 잘하라고 작별인사를 했다. 레오는 손을 흔들며 뒤돌아서는 내 팔을 잡더니 끌어당겨 나를 안았다.



조심해,
남은 여행 잘하고...



살짝 떨리는 그의 음성이 내 마음을 먹먹케 했다. 이별의 슬픔인지 애틋함인지 아쉬움인지 그 정체는 알 수 없었지만 뭉클했다.




고마워,
너도, 무사히...



버스가 멀어져도 계속 정류장에 서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나의 길을 그는 그의 길을 가야 하니 이 정도의 이별이 적당하다고 여기기로 했다. 그와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마음은 아직 이곳 콜카타에 있었지만 푸리(Puri)로 향했다. 인도 최대의 해변 휴양지로 알려진 이곳은, 봉사의 시간을 마무리한 나에게 허락한 휴식과 재충전의 장소였다.



오랜만에 혼자만의 방을 잡았다. 타인의 숨결로 가득했던 콜카타의 도미토리와 달리 문을 닫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에 들어섰을 때, 모든 것이 고요했다. 온수 샤워를 하고, 맘 놓고 옷을 갈아 있고, 넓은 더블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치를 부리며 조용히 숨을 돌렸다.



그러다 심심해지면 시장 구경을 하며 길거리 간식도 사 먹었다. 골목 안 중고샵에서 중고 같지 않은 물건을 찾다가 책 한 권을 골랐다. 해변가에서는 작고 반짝이는 액세서리를 하나 샀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법한 물건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여행의 한 조각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여유를 즐기던 하루, 깜깜한 밤이 되자 허전함이 밀려왔다. 마더하우스에서 함께했던 이들과의 시간이 내 안에 너무 깊게 들어와 있었던 걸까. 그들과 함께 보냈던 뜨겁고, 치열하고, 따뜻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휑해졌다.



나는 외로웠고 그들이 그리웠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한발 내디뎌야 할 시간이었다. 이 외로움이 힘들더라도 오래 계속되더라도 내가 겪어야 할, 이겨내야 할 시간이었다. 내가 왜 인도에 왔는지 잊지 않아야 했다.







인도 여행은 매 순간 불안, 걱정, 도전,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러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들에게 익숙해지고 편안해졌다. 그 평안함은 나를 안주하게 만들었다. 불행히도 안주하게 되는 순간 나는 생각하는 힘을 잃게 되었다. 하루하루의 즐거움도 분명 삶에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생각할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지 않음은 어느새 자신을 놓치게 되었다. 그래서 힘들지만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헤어질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