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인도 고아, 히피를 찾아서
고아는 인도 내에서 가장 오래된 유럽 식민지 중 하나였고, 포르투갈 식민지 (1510~1961) 영향으로 천주교 성당, 유럽풍 건물, 포르투갈어 표기 등 그 문화가 아직도 남아있다. 1960~70년대 서구 히피들의 아시아 유입 경로 중 하나가 고아였고, 그 영향은 현재까지도 자유로운 분위기와 예술, 음악, 요가 문화를 접할 수 있다.
물질보다 예술과 감성,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보헤미안을 동경했던 그 시절의 나는 자유의 상징과도 같은 히피라는 단어에 꽂혔다. 그래서 나의 마지막 인도 여행지로 히피 문화의 성지, 인도 고아의 안주나 해변을 골랐다.
인도의 다른 지역에 비하면 월등히 유럽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긴 머리와 수염 그리고 사이키델릭 한 패턴의 옷과 화려한 장신구를 한 히피들이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래서 히피들이 직접 만든 의류, 액세서리, 공예품 등을 판매하는 안주나 플리마켓에 갔다. 매듭으로 만든 독특한 팔찌를 하나 샀다. 판매하고 있는 히피에게 말을 걸고 싶었지만, 내가 생각보다 훨씬 내향적인 사람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과 나눈 유일한 대화는 고작 가격 흥정뿐이었다.
내가 원했던 히피 문화는 단순한 겉모습이 아니었다. 자연과 함께하고, 자기를 돌아보며, 타인과 조화를 이루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체험해보고 싶었지만 내가 한 것이라곤 그저 그들의 복장을 흉내 낸 것뿐이었다. 겉만 따라한 나는, 그 안으로 들어갈 용기가 없었다.
다음날, 해변을 걷고 있는 내게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그는 맨발이었고, 햇살에 그을린 피부와 엉킨 머리카락, 묘한 향기를 풍기며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그의 옷차림새로 히피임을 짐작했다. 우리는 잠시 평범한 스몰토크를 나눴다. 그는 저녁에 열리는 모임에 나를 초대했다. 자신의 친구들을 소개해 주겠다며, 함께 놀자고 했다. 바로 그 순간, 내가 그렇게 바랬던 히피와의 대화와 만남이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낯선 인도의 밤이 두려웠고, 처음 만난 그를 온전히 믿을 수 없었다. 그의 떡진 머리카락, 누런 이, 불쾌한 냄새가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자유로워 보였지만, 낯설고 거칠게 느껴졌다. 그동안 나 자신을 과대평가했는지도 모르겠다. 즉흥적이고 자유롭고 거침없는 줄 알았던 나는, 사실 걱정과 겁이 많았고 주저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났다. 해변에는 여전히 파도가 밀려왔고, 하늘은 어둡고도 환했다. 그의 냄새와 말투, 낯선 초대가 마음 한구석을 자꾸 두드렸다.
만약 그 초대에 응했다면 어땠을까. 그의 친구들과 나눈 대화 속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어떤 세계가 나를 흔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관이 조금은 바뀌었을지도, 아니면 더 단단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거절한 게 잘한 선택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순간을 통해 내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동시에 얼마나 간절한지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운명적인 만남을 그리고 자신의 인생관을 뒤흔들 그 어떤 경험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막연히 기대한다. 우리는 어쩌면 기회일지도 모를 그 어떤 순간이 왔을 때 기회인지도 모른 채 잡기도 하고 놓치기도 한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선택하지 못한 나머지를 계속 아쉬워하거나 후회한다. 그래서 나 역시, 다음을 꿈꾼다. 언젠가는, 조금 더 단단해진 내가 조금 더 용감하게 그들 곁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