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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제발 나를 버리지 마세요!

우리는 언제나 늘 함께 있을 거야...

by 크레이지고구마
봄이의 100일사진. 100일 사진 중 단연코 인기가 가장 많았던 사진이다.


나는 기억한다.
내 딸이 입양 마주이야기를 시작했던 그날

모든 순간들을.

나는 입양가족이다.
첫째 아이를 출산하고,

7년 후, 생후 29일의 예쁜 딸과 입양으로 가족이 되었다.


15년 전에 아주 작았던 아기 봄이를 만났던 순간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해서 사진으로 찍어놓은 듯

선명하고 정확하게 기억되어 있다.

그 기억과 더불어 아주 생생한 기억이 또 있다.

복잡하지만 선명하고 정확한 기억.
그 작고 어린아이가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말.


“엄마, 제발 나를 버리지 마세요.!”


이게 내 딸의 입양 마주이야기하기의 시작이라고

나는 기억하고 기록해 두었다.

봄이가 자신의 입양을 마주하며 가장 먼저 표현했던 것은,
우리가 바라고, 사람들이 바라보던, 내가 기대했던, 입양은 기쁨이고 행복이고 사랑이 아닌,

불안함이었다.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2012년 1월 4일 금요일 저녁을 맞이하기 전 오후,

그렇게 춥지는 않았던 겨울,

우리 집에는 노을빛이 거실 한가득 들어와 따스했고,

내 기억 속의 장면에 우리 집은 노란색이었다.

어린이집을 다녀온 봄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떼를 쓰기 시작했다.
떼를 쓴 이유를 정확히 기억할 수 없는 것은,

아마도 특별한 이유가 아닌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나도 평소와 같이,

두세 번 반복해서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고,

그래도 떼가 그치지 않자 단호하게 말하고, 화를 냈다.

봄이는 서 있는 나의 종아리를 잡고 울며 말했다.

“엄마, 잘못했어요.

화내지 마세요.

야단치지 마세요.

이제 안 울게요.

가지 마세요.

제발 나를 버리지 마세요.”

29개월의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말 치고는

지나치게 자극적이었고,

어디서도 들었을 리 없는 말이었으며,

당연히 나는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던 말이라,

나는 너무 놀라 얼어붙어 버렸다.


순간, 모든 것이 그대로 멈췄다.

어떻게 29개월 아기가

자신을 버리지 말라고 울면서 말을 할 수가 있을까!

아무리 화가 나도, 버린다는 표현은커녕

분리와 관련된 그 어떤 표현도 하지 않았고,

훈육 후 마지막엔 사랑한다고 질리도록 말해주었는데,

왜 어린 내 딸은 자신을 제발 버리지 말아 달라고

울며 말하는 것일까!

정말 짧은 몇 초간은,

우리 집의 공기도

나의 마음과 같이 얼어붙어 있는 것 같았다.
노을빛으로 가득 찬 노란색이,

뿌옇고 짙은 노란색으로 변해버렸다.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었는데,

그 생각을 정리하고 붙잡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우선 내 어린 딸을 달래고

안정을 시켜줘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엉엉 울고 싶었고, 내 마음은 이미 울고 있는데,

봄이 앞에선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꾹 참았다.


그리고 내 다리를 처절하게 꼭 붙들고

울고 있는 봄이를 꼭 안고서 말했다.

“봄아, 엄마는 어디에도 가지 않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너를 절대 버리지 않아.

가족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있는 거야.

우린 가족이잖아. 걱정하지 마.”

봄이를 안고 이야기한 후,

나도 봄이 몰래 울었다.

아주 조용히 조금.

봄이를 진정시키고,

저녁을 먹이고,

우리는 여느 평범했던 날처럼 저녁시간을 보냈고,

봄이는 평소와 같이 일찍 잠이 들었다.

아이들이 잠이 들고 난 후,

난 아이들이 자고 있는 방과 가장 먼 방으로 가서 울었다.

처음에는 입을 틀어막고 울다가,

그동안 참았던 감정들이 나를 덮어버린 듯했고,

나는 엉엉 소리 내어 한참을 울었다.

아이들이 잠이 들면 그 어떤 소리에도

잘 깨지 않는 것이 고마운 밤이었다.

정말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더 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을 때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가까워져 있었.


내 마음은 조금 공간이 생겨났고, 나는 다시 차분해졌다.

봄이 앞에서 울지 않아서 다행이다!

라며 그때 울지 않은 것에 대해 나를 칭찬했다.

평소 봄이에게 입양에 대해

긍정적인 정서를 전달하고 싶었는데,

입양 마주이야기를 할 때 봄이 앞에서 울어버리면

입양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라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 순간 눈물을 꾹 참고,

차분하게 최대한 따스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며 말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봄이 앞에서 울지 않은 것이 과연 잘한 것이었을까?

차리리 같이 울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종종 들곤 했지만

그때의 나는 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입양이야기를 하며 봄이 앞에선 절대 울지 않겠다고

혼자서 굳게 다짐했고, 지켜냈다.

이상하게도, 그날 지윤이에 대한 기억이

지우개로 지운 듯 전혀 없다.

남편은 당직이라 집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왜 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정말 다행이었다고 중얼거렸던

새벽 3시의 내가 그 작은 방 그 자리에 있다.


봄이는 그날 이후

혼이 날 때면 제발 나를 버리지 말라고,

엄마 떠나지 마세요

라며 울곤 하였으나,

더 이상 그날의 그 시간만큼

처절하게 울거나 매달리지는 않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한결같이 말했다.


"봄아~.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너를 떠나지 않아. 내가 널 버리는 일도 없어.

가족은 버리고 버려지는 게 아니란다.

우리는 늘 언제나 함께 있을 거야."


그래서일까...

봄이의 "엄마, 제발 나를 버리지 마세요!"라는 절규는

서너 번 정도 반복된 후 멈추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들을 수 없었다.


내 딸 봄이는

자신의 입양 이슈를 마주하며

불안함으로 제일 먼저 표현하였다.


이 불안함을 없애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 난 최선을 다 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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