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진짜 좋은 엄마를 만났어!
20180608. 금.
바람도 시원한 금요일 저녁,
생각할 것이 많아서
혼자서 걷고 싶었다.
걷는 걸 싫어하는 봄이가
오늘따라 계속 같이 가고 싶다고 했고
마지못해 함께 걸었다.
봄이와 함께 걷는 길이 어떤지 경험으로 알기에
처음부터 방어자세를 잔뜩 취하며 걸었다.
빠르게 이어폰을 꽂고 걷는데
봄이는 내 빠른 걸음을 따라오기 어려워했다.
어찌 보면 뛰는 것인지 걷는 것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힘들면, 버스를 타고 가자는 나의 회유에도
봄이는 이상하리만큼 계속 걷겠다고 했다.
“공기가 시원해서 걷는 게 더 좋아.”
공기가 시원하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느낌이었는데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구나 싶었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는데
힘들면서도 열심히 걸으면서까지
봄이는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는 것이다.
엄마인 내가 들어줘야겠다 싶어서 이어폰을 빼고,
봄이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봄이는 친구들 얘기를 하다가
자신의 입양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2월 중순쯤, 잠실 맥도날드에서
자신의 입양스토리와 생모에 대해
디테일한 질문을 했었는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그때 그 질문과 이야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나를 언제 만났지?
엄마는 아빠랑 입양을 왜 하게 되었어?
엄마도 입양원에 와서 다른 사람들처럼
아기를 여러 명 보고, 그중에서 나를 선택한 거야?
나를 처음 봤을 때 엄마는 어떤 느낌이었어?”
등등 이미 몇 번이나 했던 질문들과
새로운 질문들을 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 질문들은, 특히 새로운 질문들은
뭔가를 내게 말하거나 물어보기 위해 시간을 끄는
의미 없고 성의 없는 질문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느낌은 아주 정확했다!
나는 봄이 질문에 상당히 담담하고 건조하면서도
책을 읽는 듯 한 느낌으로 답을 했다.
“원래 입양원에서는 아기 선보기를 두 번 할 수 있댔는데, 우린 널 얼굴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입양을 결정했어. 왜냐하면...... 어쩌고 저쩌고 블라블라...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 된 거지~.”
“그리고 널 처음 봤을 때,
난 굉장히 설레고 두렵고 무서웠어.
아기를 갑자기 키우려니 아무 생각이 나지도 않고,
과연 내가 이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자신도 없고,
입양을 한 것이 내게도, 네게도 우리 모두에게도
잘한 것일까 하는 많은 생각이 들었거든.
내 말을 지금은 네가 이해 못 하겠지만,
나중에 크면 조금은 알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
봄이의 질문과 내 대답이 몇 번 오고 간 후에,
드디어 봄이가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말을 했다.
“엄마! 내가 마지막으로 할 말은...
낳아주신 분이 보고 싶어...
그게 좀 그런데, 계속 그런 생각이 들어...”
이 말이 무슨 뜻일까?
봄이가 더 어릴 때는 생모가 보고싶은 이유는
어떻게 생겼는지가 궁금해서 였는데
오늘 하는 말은 내 느낌상 보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해진 것 같은 느낌이다.
봄이에게 설명했다.
“너를 낳아주신 분은
우리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야.
물론 엄마아빠는(특히 아빠)
네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만났으면 하거든.
그리고 우리가 만나고 싶다고 해도,
너를 낳아주신 분이 여러 가지 사정으로
우리를 또는 너를 못 만난다고 할 수도 있어.
찐하게 연애 중이거나, 아님 결혼준비 중이거나,
결혼해서 임신 중이거나,
결혼 후 아기를 키우고 있을 수도 있고,
아님 다른 나라에서 공부하거나 살고 있을지도 모르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정으로, 너를 낳아주신 분께서 만나기를 원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야.
서로 만나서 보고 싶다고 해도, 만남이 참 쉽지 않지.”
봄이는 가만히 듣고 또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기운도 없고, 표정도 아무 변화가 없었다.
몇 초간 시간이 멈춘 듯 있다가 말했다.
“엄마!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 두 개가 있거든.
하나는 아까 말한 것처럼,
나를 낳아주신 분이 보고 싶다는 거고
(조금 보태자면, 한 달 전쯤에 봄이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생모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난 진짜 엄마아빠오빠를 잘 만났다는 거야.
특히 엄마를, 진짜 좋은 엄마를 만났어.
그건 우리 친구들도 인정하고 부러워하는 거야.”
“당연하지. 이놈의 인기는 너한테도, 오빠한테도
아주 사그라들지가 않는다니까!
그리고, 넌 정말 좋은 엄마아빠오빠를 만난 것도 맞아.
특히, 나 같은 엄마가 어딨니?
내가 봐도 난 진짜 사랑 하나는 넘치는 엄마 같아.
그러니 넌 진짜 복 받은 거야.
너네 친구들은 오빠가 사춘기 오니 맞고 욕먹는데,
지윤이는 안 그러잖아!
또 아빠는 아주 네 말이라면 무조건이고!
넌 진짜 좋겠다~. 나 같은 엄마를 만나서!”
봄이가 기가 막히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그리고 점점 크게 웃었고, 가슴이 시원한 듯 보였다.
그러고 나서는
갑자기 발목이 아프다며, 버스를 타고 가자고 한다.
역시, 걷고 싶었던 게 아니라,
내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이었다.
듣고 싶은 답은 아니었겠지만,
속은 조금 후련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린 이렇게, 입양 이야기도, 생모 이야기도
참 아무렇지 않게 그리고 담담하게 한다.
하지만, 기록할 때마다 나는 참 많이 운다.
저 작고 여린 아이의 가슴속 어딘가에 남겨진 퍼즐이
계속 여기저기 돌며 맴도는데 어떻게 할 수 없고
나도 어떻게 해 줄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냥 그렇게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하도록
담담하고 평안하게 지켜봐야 하는데
내 성격이 참으로 그러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우린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또 조금 성장하는 거라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