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둘은 취침 방 쪽으로 향했어. 중간에 그 선배를 다시 만났지. 분명 매복하고 있었어.
“얘기 이제 끝났어요? 어서 들어가서 자요.”
남자 방이 가까워서, 내가 먼저 작별 인사를 했지.
“잘 자. 다음 대화 기대하고 있을게.”
“잘 자.”
방은 북적하지만 고요했지. 사실, 수십 가지의 숨소리로 소란스러웠어. 찜질방이라도 온 거 같네.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술 냄새에 쉰 냄새에 토악질 냄새가 나는 찜질방이라니. 아, 원래 그런가?
어느새 땀을 흘리면서, 가방을 베고 누웠어. 그렇게, 거짓말처럼 잠이 들어버린 순간,
“야, 이제 일어나. 다 끝난 거 알아.”
너무 익숙한 목소리……. 그 방해꾼 선배? 아닌데……, 뭔가 덜 미운데……. 아니, 오히려 정겨운데…….
“빨리 안 일어나면 두고 간다. 지가 같이 가자고 해놓고…….”
뭔 소리야?
“으엉? 엉?”
뭐야?
“ㅋㅋㅋㅋㅋㅋ, 깼냐. 아, 웃기네~.”
아직 눈이 덜 떠져. 눈앞이 필터가 찢기듯, 불규칙하게 밝아지고 있어. 내 앞에 실루엣, 누구? 방해꾼 선배? 아냐, 방해꾼 선배를 알기 전에 알았던 사람……. 어? 어?!
“보라의 꿈이 그렇게나 좋던?”
푸른이!
넌 왜?라는 표정이야. 뭐, 놀랄 만은 한데, 아직은 많이 이르지.
“푸른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여긴?”
진짜 정신을 못 차리네.
“매일 걷는 곳이잖아. 한 며칠 잠들었을 뿐이야. 우린 아직 가던 길이라고.”
“응? 그럼 대학은? 보라는? 아! …….”
이제 좀 상황 파악이 되는 거 같네. 상실감? 들 만하지. 충분히 이해해.
“걱정하지 마. 모든 게 허상인 꿈이랑은 또 다른 거니까.”
“그래? 맞아, 우린 가던 길이잖아! 다음 친구를 만나러 가자!”
아직 모르는 거 같네.
“다음 친구, 누구?”
“누구긴, 보라지! 다음에 대화할 약속을 했다고!”
“거긴 이미 갔다 왔어.”
더 아리송한 왜? 표정. 응?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아! 표정일 수도 있겠어.
“말도 안 돼. 보라색 땅은 본 적도 없는데…….”
“보라색 대지는 없어. 보라가 사는 곳은 훨씬 추상적인 곳이지. 이번에도 꿈을 통해 찾아온 거고.”
“그게 뭐야? 말이 돼?”
“세상에 말이 안 되는 일은 없지.”
“그럼?!”
“맞아. 가까운 시일 안에는 못 만나. 다음 땅으로 가야 하니까.”
“으아! 그럴 수가……. ㅠㅠ”
그래도, 좀 괜찮아진 거 같네.
“어떻게, 안될까? 나 정말 아무것도 몰랐단 말이야~~~~. ㅠㅠ”
오늘은 더 걸어가진 않아. 잠에서 깬 여운이 도통 가시지 않을 거니까. 때론 열 몇 시간을 자고도, 열 몇 시간을 쉬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우린 사과처럼 붉은 불만 피워놓고, 빈둥거리고 있었어. 물론 녀석은 날 내버려 두질 않았지.
“잠깐, 꿈이 끝나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너희가 복도를 지나는 걸 봤으니까.”
“에?”
뭐, 놀랄 만도 하지.
“나도 자고 있었거든. 아무튼 밤이었으니까.”
“뭐야? 그럼, 너랑 난 같은 꿈을 꾼 거야?”
“그런 셈이지.”
“그럼, 그 방해꾼 선배가 너였던 거야?”
“아하하하! 그 표현 마음에 든다. 맞아, 내가 그 선배였어. 이번엔 그 선배 관점에서 꿈을 꿨지.”
“어지러~~~~. 이게 다 뭐야…….”
정말 눈알이 돌아가고 있는 거 같아.
“잠깐, 넌 이 꿈이 처음이 아니야?!”
“그렇지. 보라랑 만날 때마다 꾸는, 꿈 시리즈 같은 거야.”
“그럼, 결말이 정해져 있다는 거잖아!”
아!
“노코멘트 하겠어.”
“갑자기 묵비권?! 그냥 보라랑 편하게 대화할 순 없는 거야? 항상 이런 식이니?”
“나도 녀석이랑은 제대로 대화해 본 적 없어. 항상 꿈속에서 시작하지. 난 이미 그 속에 완전 동화된 상태고. 시작하자마자, 또 속아줘야 한다는 걸 알게 되는 거지…….”
네 표정이 또 복잡해. 요즘 참 많이 보는 모습이야.
“그건…, 너무 야박해! 너무 나쁘잖아. 그렇게 안 봤는데, 심술쟁이인 거야?”
“그렇게 느껴도 무리는 아니야. 사실, 나도 녀석을 그렇게 미워하고 있어.”
“그럼, 이 꿈은 누군가의 기억이라는 얘기네?”
“…….”
“묵비권도 안 쓰고, 부정하지도 않네.”
“…….”
“하, 그래~. 알았어.”
넘어간다는 건 참…, 그거 나름대로 힘든 과정이야. 진짜로 뭔가를 넘어간다는 게 가능한 일인 걸까? 서로 말만 안 할 뿐이지, 엄~~~~청나게 신경 쓰고 있는데도? 이건 분명 넘어간 게 아니야. 하지만 넘어가야만 하지.
“흠흠, 그래서 보라와의 대화는 어땠어?”
그러게, 난 보라를 어떻게 생각했지? 이게 허상이든 뭐든, 그게 더 중요한 거 같아. 누구와 어떻게 만나든, 다른 건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야. 그 사람이 내게 어땠는지가 가장 중요한, 그런 놈이 나니까…….
“요즘 신비로운 대화를 많이 했지만, 그녀는 특히나 신비로웠어. 신비라는 말은 그녀를 보고 만든 말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지.”
“생각보다 맘에 든 거 같네.”
“걔가 맘에 들었냐고? 아니, 그 반대야.”
“? 그게 무슨 소리야? 재밌게 대화하는 거 같았는데?”
“추론일 뿐이잖아. 오히려 화난 상태야. 이게 한 시절의 기억이라면, 너나 걘 그 내용을 다 알 거 아니야. 게다가 이 기억의 당사자가 행복했다고 해서, 나까지 행복을 느낄 거라 생각하는 거야?!”
맞아, 좀 당황스러운 전개야. 우리 중 누군가가 보라를 싫어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충격이지. 있을 수 없다는 게 아니라, 정말 어려운 체계의 감정인데도, 녀석에겐 쉬웠다는 거야. 아…, 이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역시, 초롱인 우리가 가장 모르는 무언가인 걸까?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는 게 가장 문제야. 난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걸까?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불안해……. 내가 미안해…….
아무 말도 안 하네.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난 무서워서 화내면 안 된다는 거니? 난 계속 중요한 건 몰라야 한다는 거니? 넌 이게 화가 안 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니? 나보고 어쩌라는 거니?
“뭐라고 말 좀 해봐.”
“…….”
그 깊게 고심하는 표정을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그냥 이건 이거라고 내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이야? 남들 신경 안 쓴다면서, 왜 쓸데없이 신경을 쓰고 앉아있는 건데!
“보라가 어땠냐고? 아~~~~주 잘나셔서 시샘이 나 죽을 지경이었어. 방해꾼 선배 같은 사람들한테 항상 그렇게 느껴왔거든. 지가 뭔데 나보다 잘난 체하는 거야?”
푸른인 날 똑바로 보려 노력하고 있어. 반응을 보이는 건 좋지만, 제발 그 이상하게 꺼림칙하면서도 예쁜 눈빛을 보이지 말라고!
“사실, 배 아픈 건 특별한 일이 아니야. 방해꾼 선배 같은 사람들은 항상 있었으니까. 항상 배 아플 정도로 잘난 사람은 주변에 있는 거니까. 남을 괜히 부러워하는 건 일상적인 일이야.”
“ㅎㅎ, 그렇지…….”
“하지만 보라는 그런 일상이 아니야. 한 번도 보지 못한 장점을 부러워하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 알려주는 사람이지. 녀석은 내가 평생 가지고 싶었던 특별함을 그냥 가지고 있는 사람이야.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걸 아무런 타협 없이 받아들이고,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아무런 신경을 안 쓸 수 있는 그런… 이상한 사람이야.”
“…….”
“난 보라를 결코 좋게 볼 수 없을 거 같아. 아마 보라는 그 여자가 아니니까.”
푸른인 당황한 거 같아. 눈이 흔들리고 있어. 울고 싶은 걸까?
“맞…아….”
“설명할 필요 없어. 이건 보라 본인의 기억이야. 자기가 느낀 최악의 패배감을 우리를 통해서 재구성해보는 거지. 아주 악질이야. 이 꿈은, 자기가 좋아한 사람과 닮고 싶어서 만든, 하나의 연극에 불과한 거지. 그렇게, 자기가 극복하지 못한 걸 남에게 부여하고, 자신은 자기 맘대로 승리자로 만든 사람을 연기하면서, 자기만족에 취하고 싶은 녀석이야.”
“…….”
이렇게까지 말해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내 잔혹한 감상이, 널 이만큼이나 곤란하게 만들 수 있구나. 가끔 그럴 때가 있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옳다고 생각한 말을 했는데, 어느새 화를 내버려서 누군갈 곤란하게 만들어버리는 거 말이야.
그쯤 되면, 그렇게나 확고한 확신을 후회하게 되지. 정말 보라가 내가 말한 만큼 나쁜 녀석인 걸까? ……. 지금은 크게 중요하지 않아. 나 때문에 내 소중한 친구가 곤란해졌어…….
이런 경우엔, 희한하게도 서로가 서로에게 구원을 바라고 있는 거야. 푸른인 내가 먼저 전언 철회해 주길 바랄 거야. 난 네가, 내 말에 평소처럼 맞서주길 바라고 있단다.
“물론 네 말이 틀린 건 아니지만, 보라를 너무 원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허, 내가 왜?”
말은 좀 날카로워도, 난 속으로 환호하고 있어. 내가 먼저 쏘아붙여놓고 뭐 하는 짓인지…….
“ㅎㅎ 좀 웃긴 말이지만, 난 우리 상황이 반대로 될 거라 생각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거 있지 않아? 세상에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생각 말이야.”
정말,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냐고~?!”
화나게 하네!!!!
“아하하, 참아~. 항상 넌 새 친구를 만날 때마다 텐션이 올라 있었잖아? 그래서 난 자연스럽게 못마땅해하고, 땍땍거리고, 시비를 걸었던 거 같아. 우린 항상 그런 구도일 줄 알았어.”
“허! 알긴 아네.”
“맞아. A에 대해서 B가 긍정적이면 C는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마법 같은 힘이 있는 것만 같아. 누군가,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 하는 순간 말이야.”
“넌 어쩜 그리 꽉 막혔니? 그냥 알파벳들이 다 행복하게 살면 되는 문제 아니야?”
“아니, 세상은 그럴 수 없어. 절대로.”
“ㅎ!”
상대의 단언에 이상하게 설득될 거 같을 때, 보통 어떻게 해? 난 뚱해지는 거 같아. 정말 꽉 막힌 놈이야. 어떻게 저렇게 살 수가 있지!
“초롱아,”
“아, 왜!”
제발 나한테 말 좀 걸지 마.
“봐, 우리 반대로 된 거 맞잖아. ㅋㅋㅋㅋ”
내 마음이라도 들리나?
“허! 웃기네.”
“녀석은 이제 막 어른으로 태어난 아이 같은 거야.”
“그건 또 뭔 소리래?”
“세상을 안 순간부터, 너무 많은 것에 부담을 느껴버린 거지. 자신의 소중하고 좁은 세계가 잔인하게 변해버릴까 무서웠던 거야. 그저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싶었던 거지.”
“오늘 정말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는구나?”
“지금은 몰라도 돼. 다만, 아까 말한 거처럼 녀석을 미워하진 않았으면 해. 보라는 좋은 녀석이야.”
“싫어.”
“부탁이야.”
정말로 마음이 들리나?
“…….”
“Ok, 고마워.”
미치겠네~!
이렇게 돼버렸지만, 보라를 미워하지 말라고? 어림도 없는 소리야. 보라라는 애는 그냥 어리광 부리고 싶은 거잖아? 그냥 원하는 걸 가지지 못해서, 가졌다고 생각하기 위해 모방이나 하는 거야. 그런 건 비겁한 일 아니야? 왜 자신을 가지지 못하는 거야?
하지만, 내가 좀 지나쳤던 걸까? 푸른이의 얼굴을 살폈어. 맞아, 푸른인 평소대로야. 좀 덜 땍땍거리는 거 빼곤. 온 세상에 나만 이상해진 거 같은 기분이야.
녀석은 그저 좋아하는 걸 좋아하고 싶었다고? 말이야 듣기 좋지, 그건 이래도 될 만큼 쉬운 일이 아니야. 녀석은 그냥 욕심 많은 멍청이야.
하지만, 난 왜 녀석이 사과랑 비슷하다고 생각해 버리는 걸까? 좋아하고 싶은 걸 좋아한다는 건 그렇게나 슬퍼져야 하는 일인 걸까? 사과는 욕심쟁이도 멍청이도 아닌데?
아! 몰라, 오늘은 그냥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