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한참을 재잘거렸지. 주로 초록 들판과 이곳 얘기야. 초롱인 오랜만에 고향 얘기할 친구를 만나서,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둘 다 날 잊어버린 게 아닐까? 엿 같은 상황이야…….
그런 내 마음을 알았는지, 보리가
“근데, 둘이 어떻게 만나서 여행하고 있는 거야? 푸른이가 남을 데리고 다닐 성격은 아닌데?”
구해줘도 꼭 그렇게 구해주고 싶은 거냐!
“우린 내기를 하고 있어. 난 세상이 단순하다고 생각하고, 푸른인 복잡하다고 생각하거든. 그래서 누구 한 명의 의견이 증명될 때까지 같이 다니면서, 공부하고 있는 거야.”
“희한하고 재밌는 여행이네.”
“게다가 이상하지.”
오랜만에 할 말이 있네.
“아냐, 이상하지 않아! 정말 좋은 여행이야.”
어우, 그렇게 칼같이?
“사실, 결론은 난 거 같은데? 세상은 당연히 단순하지.”
그래, 넌 그럴 줄 알았다~~.
“그, 그래? 왜 그렇게 생각해?”
응? 쟤 왜 저러냐.
“응? 난 네가 기뻐할 줄 알았는데.”
그러게.
“음, 요즘은 잘 모르겠어. 이젠 어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야, 그럼 내가 이긴 거로 해! 세상은 당연히 복잡하지.”
“그건 절대 안 되거든!”
“아니, 뭐가 그러냐?”
“ㅎㅎㅎ, 둘은 진짜 친해~. ^^”
“그럼, 오늘은 이 얘기를 해 볼까? 내가 세상이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이유 말이야. 너희의 공부에도 분명 도움이 될 거야.”
“당연히 좋지!”
난 별로~. 딱히 유쾌한 미래가 기다리진 않아.
“둘 다 들어준다니, 기쁘네~. ^^”
진짜 두 놈 다 막무가내네.
“세상은 당연히 단순해. 물론, 아직 모르는 게 많지. 하지만, 이 세상을 해석할 때 가장 합당한 지식이 뭔지 정도는 분간할 수 있어.”
“가장 합당한 지식?”
“응. 적어도 그게 참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명제들이야. 정말 오랜 세월의 탐구로, 우린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신할 수 있게 됐거든.”
“어떤 것들인데?”
“첫 번째는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거야. 그러니까 어떤 존재가 있으면, 그 존재가 시간이 지나면서 쇠퇴할 것을 당연히 예상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시간의 마모를 이겨내고 말끔히 복원될 리는 없다는 거야.”
“어…, 그게 뭐야?”
“물통이 있으면, 그 물이 증발하거나 엎어진다고 생각할 순 있지만, 증발하거나 엎어진 물이 다시 물통에 돌아온다고 기대할 수 없다는 거야.”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당연한 거니까, 대단한 거지.”
“엥?”
“ㅎㅎ, 좀 더 들어봐.”
“그럼, 그전에 하나만 물어볼게. 시간이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면, 시간여행은 정말 불가능한 거야?”
뭔가, 산타에 대한 아이의 환상이 아빠의 분장 때문에 무너질 거 같아.
“오, 좋은 질문이야. 아쉽게도 그래. 적어도 이 우주의 차원에선 그렇다고 봐. 누구도 시간 여행자를 본 적이 없잖아?”
“우리가 만나면 안 되니까, 안 나타나는 건 아니고?”
“만나면 안 되는 이유를 얘기하고 있다고 생각해도, 상관은 없지.”
“…….”
가차 없는 놈.
“너무 실망하지 마~. 아직 미래로 가는 시간여행은 가능하니까.”
“그래?!”
아, 또 쓸데없는 희망 심어주기.
“시간의 방향이 고정되어 있어도, 가속시키는 건 분명 가능할 거야. 다만, 원래 살던 시대로 돌아올 순 없겠지.”
정말 가차 없는 놈.
“그게 무슨 소용이야~. 슝!하고 집으로 돌아올 수 없다면, 여행이 아니라 조난이지. ㅠㅠ”
“아무튼, 물리적인 영역에서 무언가 호전될 수 없다는 게 증명된 거야. 그 무엇도 새로 생성되지 않아, 절대로. 다 어딘가의 마모를 빌려서 만들어질 뿐이고, 만들어진 거는 또다시 마모될 뿐이야. 스스로 자신을 수복할 수 있는 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어. 여기까지 혹시 어렵니?”
“이제 뭔가 이해는 되는데, 좀 슬퍼…….”
“어쩌면 그게 삶이 외로운 이유일 수도 있지.”
얘, 갑자기 그러지 마!
“알았어. 동시에, 모든 물리적인 영역은 에너지라는 파동이자 입자라고 생각할 수 있어. 이 우주에 한정된 에너지도, 언제나 그 총량이 보존되지. 소모되는 에너지는 사실, 완전히 소모되지도 않고, 생겨난 거 같은 에너지는 사실, 진짜로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니야. 모두가 그걸 어딘가에 빌려서, 어딘가에 빌려주고 있어.”
“맞아……. 정말… 그렇네…….”
초롱이가 다운된 거 같은데, 딱히 위험하진 않아. 이대로도 좋을 거 같아.
“이런 걸 어려운 말로, ‘열역학 법칙’이라고 불러. 우리 세상이 처한, 단순한 진리를 증명해 주지. 모든 건 유한하고, 점점 무질서하게 흐트러진다는 거야. 국지적으로 흩어진 것이 다시 모여들 수는 있어. 하지만 그 질서를 만들기 위해선, 수복한 질서보다 훨씬 많은 질서를 무질서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한 거지.”
“너무 어려워……. @@”
ㅎ!
“즉, 온 세상이 엎지른 물이 되어갈 운명이라는 거야. 태어난 모든 것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죽을 운명이고, 수억 년을 달려온 지구도 끝이라는 내일을 맞이하기 마련이라는 거야.”
“엥? 뭐야, 그렇게 쉬운 말이었어?”
“쉽고 당연히 참이기 때문에, 세상을 해석하는 중요한 명제인 거야. 세상이 사실은 단순하다는 걸 증명하지.”
“에? 또 모르겠는데, 이를테면?”
“지구가 전에 없을 정도로 빠르게 아파하는 이유는 너무나 복잡해 보이지만, 그냥 우리가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라는 거야. 당연히 생기는 무지막지한 무질서를 애써 무시하는 방식으로 말이야. 우린 지구에 있는 모든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개발할 수 있다고 믿고 있지. 지구의 재생 능력을 밑도는 에너지의 낭비가 가능하다고 믿고 있어. 이곳에 생긴 조금의 질서가 지구 반대편의 막대한 무질서가 된다는 걸 숨기려고 하지.”
“…….”
“아쉽게도 우리는 더러운 걸 눈앞에서 치우는 거 말고는, 청소라는 걸 할 수 없다는 거야. 우린 눈앞이 좀 더럽다고 생각하면 청소란 걸 시작하지만, 사실 그건 눈앞만 깨끗해지기 위해서 훨씬 많은 걸 낭비하고도, 더러움을 그저 이동하는 과정이지. 더러움을 완전히 없애는 건 과학적으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인데, 우린 마치 더러움이 사라졌다는 듯이 청소의 끝을 뿌듯해하고 있어.”
“…….”
“즉, 우리가 쉬이 상상하는 최선이나 최고의 상태는 없어. 누군가 있다고 한다면, 그건 당연히 가짜야. 엔트로피를 생각하면, 차선이 최선인 걸 알 수 있어. 우리가 적어도 지구와 같이 죽지 않기 위해선, 우리의 욕망을 가차 없이 잘라내야 한다는 거야. 물론 그렇게 해도, 우리나 지구가 영원해지는 건 전혀 아니지만, 그 순간을 획기적으로 늦추는 건 가능해.”
“그렇구나……. 정말… 맞아. 하지만,”
?
“나한테 그건, 여전히 복잡하고 어려워. 전혀 단순하지 않아. 그건 너무, 칼같이 매정한 생각이야. 그런 일변도를 단순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건 인정해. 하지만 적어도 나한텐, 그렇지 않아. 그렇게 매정한 문제가 아닐 거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어?”
“좀 위험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네 말대로 엔트로피가 우리의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라면, 우린 모두 스스로 쇠퇴하는 특징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인류가 더 많은 쇠퇴를 스스로 조장하는 이유는, 파괴본능에 조금 더 솔직해진 결과인 거 아닐까? 스스로 파괴적인 존재가, 자신이 파괴되는 속도와 시점을 정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야. 많은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마약을 하고 술을 마시고 커피를 마시는 이유와 비슷할지도 몰라!”
“…….”
정말 녀석 답지 않은 주장인데, 난 이게 초롱이답다고 생각하고 있어. 도대체 왜?
“전혀 대답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맘에 드는 생각이야. 앞으로도 초롱이랑은 좋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거 같네.”
한참을 생각한 보리는, 많이 감탄한 모양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해.”
흠, 역시 네가 나보다 훨씬 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