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빼앗긴 한류 - 후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야.
<케•데•헌>에 국위선양이나 이른바 ‘국뽕’이라는 수식어를 제거하고 분석하는 것으로 우리가 느끼는 ‘한류’라는 자존심의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내려는 시도가 마무리를 향해 가고 있어. 난 정말 근본이 삐딱한 녀석이라, 우리가 무지성에 가까울 정도로 이 문화적 흐름에 현혹되고 있는 상황을 성문화하고 싶었지. 이 문단을 쓰며 생각해 보니, 이 이야기는 찐막편까지 갈 필요가 있겠어. 우리의 대중문화에 할 말이 아주아주 많아.
후편에서 예고했듯, 막편에선 <케•데•헌>을 상업적으로 분석하는 시도가 주를 이룰 거야. 이 영화의 제작사는 넷플릭스, 소니, 컬럼비아 픽쳐스로, 모두 미국계 기업이지. 이 영화사들은 대체적으로 둥글둥글한(점토 같은) 애니메이션에 특화되어 있고, <케•데•헌>도 그런 형식을 따르고 있지.
이 글의 다른 파트에서도 얘기했지만, <케•데•헌>은 철저히 서양의 주체가 해석하는 ‘K팝’을 전신으로 삼고 있어. 이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인원이 아무리 한국계 미국인이거나, 실제 K팝 아이돌이거나, 한국의 문화를 고증하는 데에 진심이어도, 미국계 기업의 자본이 투입된다는 거대한 진실을 무시할 수 없어. 이 영화는 ‘K팝’을 소비할 가능성이 있는 서양계 시청자에게 ‘K팝’이라는 도구를 적극 활용해 접근할 필요가 있고, 이 영화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제작할 필요도 있으며, 서양권에서 ‘K팝’을 소비하는, 편리하고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필요가 있는 작품이야.
거의 철저하게 서양권의 입맛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작품의 어마무시한 흥행이 단순히 ‘K’를 수식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고만장해지는 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물론 <케•데•헌>으로 생성되는 막대한 가치를 과소평가하려는 게 아니야. 이 영화는 우리에게 여러 의미로 큰 이점이 되었어. 경제적인 수익은 물론이고, 타국의 기업에게 받을 수 있는 최고 수준의 국위선양을 실시간으로 누리고 있지. ‘한국’에 대한 지구촌 이미지가 크게 상승한 걸 부정할 순 없어.
하지만 <케•데•헌>에서 우리의 주체성을 얼마나 찾을 수 있는지는 좀 다른 문제야. 이 글의 전편에서 후편을 걸쳐서, 우린 우리가 과연 <케•데•헌>에 얼마나 주체 의식을 가질 수 있는지 어느 정도 살펴보았어.
먼저 ‘K팝’의 ‘팝’적인 부분 때문에, 애초에 ‘K팝’의 가사에 영어가 매우 거대한 비율을 차지한다는 것을 성찰해 보았지. 그러한 특징 때문에, ‘블랙핑크’의 예시처럼 점점 더 많은 ‘K팝’ 아이돌이 다국적 그룹으로 결성되는 부분도 있을 거야. ‘K팝’의 또 다른 본질인 ‘한국어’가 경시되는 정도도 점점 심해져서, 예시에서 살펴봤던 ‘KDA’와 ‘헌트릭스’의 가사 차이에서 그 모습을 나타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 한글을 스쳐가는 후렴구 정도로만 활용해도 ‘K팝’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다는 뻔뻔한 자신감 말이야.
이 영화가 묘사하는 요괴나 유령이 얼마나 우리의 것과 같고 다른 지도 살펴보았지. 이 부분을 후편에서 명확하게 결론 내리지 않은 이유는, 작품 구성의 상업적 필요성 때문에 ‘인간미’있는 귀신이나 요괴상이 고증이 된, 다시 말해서 얻어걸린 장사치의 운이 존재하기 때문이야. 막편에서 다룰 이 영화의 ‘상업성’과 자연스레 연결해서 설명하면 좋을 것이라 생각했지. 이제야 그 작업을 시작할 수 있겠어.
먼저 후편의 얘기를 마무리하자고. 거시적으로 이 영화는 단순한 선악의 구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귀신이나 요괴 세력을 처리해야 할 악으로 묘사하고 있는 건 사실이야. 하지만 너무 단순한 구조는 영화의 완성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요괴 세력의 대척점에 있는 ‘헌터’세력을 선으로 묘사하는 실수만은 피해 갈 수 있었어.
이 부분은 ‘루미’라는 주인공 캐릭터의 서사, 특히 이 영화의 마지막 곡에서 완성되어 있어. 영화에서 전통적인 ‘헌터’세력을 대표하는 인물인 ‘셀린’을 살펴보면, 그녀가 악의 마왕인 ‘귀마’나 악귀 세력의 대척점의 인물로 설정되었다는 인상을 받긴 힘들어. 오히려 그녀는 주인공 ‘루미’의 정신적 성장을 가장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인물로서, 시청자에게 ‘헌터’가 추구해 온 가치에 의문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지.
‘루미’는 ‘셀린’에게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그녀의 절반은 악귀라는 사실 말이야)을 부정당하고, ‘헌터’집단의 오랜 목적을 이뤄내면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가 전부 해결될 것이라고 가스라이팅 당하고 있거든. ‘진우’와의 만남을 통해 그녀는 진정한 자신을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성장을 이루어내고, 그 절정을 이 영화의 피날레 곡이 아주 잘 표현하고 있지. 기회가 된다면, 영화의 마지막 전투에서 사용된 <What It Sounds Like>라는 곡을 들어보면 좋을 거야. 상처를 통해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가사가 일품이거든.
이처럼 대부분의 악귀와 ‘셀린’이라는 인물의 설정, 그리고 ‘루미’와 ‘진우’의 성장을 통해, 이 작품이 너무나 단순한 선악의 구도를 벗어나고 있다는 건 사실이야. 이제 내가 하고픈 말은, 이것과 후편에서 살펴봤던 ‘개인’으로 정의할 수 있는 ‘악귀’에게 보이는 ‘친밀함’과 인간성’이 ‘K’에 대한 고증이 아니라, 작품의 상업적인 필요성과 최소한의 완성도를 위해 구성된 요소라는 거야. 나도 알아. 내 실력이 많이 부족해서 먼 길을 돌아온 거.
이제 이 작품이 가지는 상업성의 특징을 정의해 볼 생각이야. 여태까지 살펴봤던 제작사의 주체성, ‘서양성’과 ‘한국적’인 부분의 융합, 그런 식으로 만들어졌던 콘텐츠의 역사에 더해, 이 작품이 전 연령이 시청 가능한 영화로 제작되었다는 거 말이지.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든다는 건, 어렵고도 시시한 일이야. 어떤 이가 보든 작품이 평이한 수준 이상의 수준이어야 하고, 민감할 수 있는 주제는 가능한 모두 피해가야 하지. 이러한 작품은 필연적으로 높은 완성도의 서사를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작품의 기승전결에 몰입하기보단, ‘흥행수익’같은 지표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 <케•데•헌>을 놀이기구로 따지면, 회전목마와 비슷한 포지션이라고 생각해. 인기도 많고 어린아이들과 타기 좋지만, 그저 평이하고 무난한 즐길거리 말이야.
실제로 <케•데•헌>은 어린 연령층의 소비자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콘텐츠야. 유튜브에 관련 영상을 찾아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린아이들이 이 영화의 노래와 춤에 열광하는 모습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여기서 이 작품이 단순한 선악 구도를 가져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어. 이 영화는 이른바 ‘가족영화’의 틀로 기획되었고, <디즈니>나 <픽사>사의 애니메이션 영화처럼 시대를 둥글둥글하고 원만하게 반영하는 ‘서양적’ 아동 애니메이션의 전통을 따르고 있지. 제목에서부터 ‘K팝’을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과는 목표로 하는 소비층이 확연히 다르다고 할 수 있겠네. ‘K팝’은 전체 이용가를 목표로 하는 장르는 아니니까 말이야. 오히려 곡마다 목표로 삼는 세대를 확실하게 분류하고 판매하는 성향이 짙지.
이쯤 되면 <케•데•헌>이라는 작품이 ‘한국’과 ‘K팝’ 말고도 수많은 정체성을 고려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에 동의할 수 있을 거야. ‘가족영화’라는 특성 덕에 아이들도 쉽게 보고 이해할 수 있는 구조로 진행되어야 하고, 아이와 함께 영화를 소비하는 어른의 입맛을 위해 그저 단순하지만은 않은 ‘개인’의 인물상을 주요 인물에게 배정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앞에서 살펴봤던 ‘더피’와 ‘서씨’, ‘루미’와 ‘진우’, 그리고 ‘루미’의 <헌트릭스> 동료인 ‘조이’와 ‘미라’를 제외하면, 모든 인물이 자신의 진영에 맞게 행동하는 단순함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찾아냈네. ‘셀린’은 ‘헌터’의 위업이 절대선이라는 가치를 영화 내내 벗어나지 못하고, ‘귀마’는 그저 단순한 악의 마왕이며, 다른 귀신이나 요괴는 쉽게 사용되고 썰려버리는 엑스트라에 불과해. 심지어 ‘진우’가 리더인 <사자보이즈>의 다른 멤버들은 ‘비주얼이 좋은 보이그룹 악령’이라는 정체성과 소소한 ‘밈(meme)적 소비’라는 노림수 말고는 뭔가를 찾아낼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즉, 이 작품에서 ‘개인’으로 정의할 수 있는 일부 등장인물에게 ‘인간성’이나 ‘친밀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한국적’인 문화나 ‘K팝’적인 정체성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이 영화를 소비할 거라 기대되는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을 위한 것이야. 만약 내가 앞에서 설명했던, 한국 전통문화의 귀신이나 요괴에 대한 철학을 기반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면,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을 거란 말이라고.
잔인한 말이지만, ‘더피’와 ‘서씨’는 굿즈로 쉽게 팔 수 있는 ‘마스코트’ 캐릭터로 선정되었기에 극 중에서 특별한 포지션일 뿐이고(특히나 이 두 캐릭터의 고증은 너무나 한국적인 전통 그림에서 나왔기 때문에 어마어마한 상승효과를 가지고 있지), ‘루미’와 ‘진우’는 ‘남녀의 사랑’이라는 서사와 ‘K드라마’가 융화했을 뿐이야. ‘조이’와 ‘미라’는 ‘K팝’적인 동료일 뿐이라 최소한의 서사를 채워 넣은 거고.
이 모든 것이 이 영화가 ‘모두가 볼만한 최소한의 수준’을 갖추기 위함이야. 가족영화라는 정체성이 ‘무한의 조회수’와 ‘굿즈 판매’로 이어져 아이들과 부모를 사로잡고, ‘K팝’이라는 정체성이 ‘하나의 소비 트렌드’를 형성하며, ‘한국’이라는 정체성으로 헌사의 모양새를 갖춘, 치밀한 돈벌이이자 문화 하이잭이라고. (구성 음악의 압도적인 체급으로 이 모든 요소를 감추는 데에 성공하기도 했지. ‘K팝’으로 수식되어 있지만 ‘K팝’이라고 부를 수 없는, 양질의 음악으로 말이야. 정말로 탁월한 전략이야.)
그들(서양권 제작사 전반)은 좋은 작품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케•데•헌>의 경우 여러 세대와 서로 다른 문화권 인구의 선호도를 융화하는 작업이지) 막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고, ‘K팝’에 대해서도 이미 충분한 실험을 완료한 거야. 그 역사와 증거가 앞에서 살펴보았던 ‘KDA’와 <케•데•헌>에서 드러나고 있는 거고.
찐막편에선 이러한 불편한 진실의 구조를 파헤치면서, 기나긴 여정의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야. 두근거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