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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는 필요하다

포기는 꼭 필요한 거야. 아니, 필연적인 거야. 우리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선, 반드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니까. 그래서 기회비용과 돈의 체계는 가장 진리에 가까운 프레임으로써, 세상을 주무를 수 있는 거지.


어떤 것을 포기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은 너무나 허황한 거지만, 정말 많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구렁텅이야. 금전적인 사기나 과도한 도박, 악의적인 술수를 가진 종교집단이나 다단계 회사를 생각해 보기 바라. 모두 이상한 교환 비율이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론 아무 대가 없이 누군가의 돈과 시간을 포기시키는 행위야. 포기 없는 이득을 원하는 건 그런 거지.


비단 극단적인 예시에만 그런 것도 아니야. 포기와 성과의 비율을 비트는 것은, 인간의 나태한 심리를 이용하여 발전하는 산업이야. 가상의 세계에 새로운 룰을 만들어서, 현실에서 누릴 수 없는 정복감이나 안정을 싼값에 얻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드는 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모든 사업의 전략이지. 좋은 제품을 구매해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갈 거라 믿게 만드는 판매 전략도 마찬가지고.


기술은 편의를 위해 발전하는 거야. 그 자체로 포기와 이득의 비율을 비틀기 위해 존재하고, 우리가 가장 바라는 게 허황한 어리광이란 걸 잘 보여주지. 돈이란 건 잔혹한 세상을 잘 보여주지만, 가장 이기적인 비율을 확보하는 수단이기도 한 거야. 우리가 얼마나 포기하고 있는지 금전적으로 환산할 수 있단 건, 지불이라는 행위로 누군가의 포기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거니까.


우리는 ‘포기’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 지불하는 대가로도 그렇지만, 이득이 되는 것을 마다하는 것에도 마찬가지지. 결혼, 연애, 출산 등을 포기하는 ‘N포 세대’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 말이지만, 현실을 잘 말해주는 단어야. 전통적으로 중요한 선택지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이득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는 거니까. 또는 전통적인 선택지의 비용이 너무 커졌다고 볼 수도 있겠어.


포기는 필연적이지만 권장되거나 포용되지 않아. 포기란 최후의 수단이자 패배자에게 붙는 수식어로 사용되지. 대신 우린 ‘선택과 집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만, 내 생각에 포기를 잘 포장하는 수단인 거 같아. 개인이나 사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분야에 집중하는 건 위대한 성공 신화지만, 그림자 없는 존재는 없잖아. ‘포기하지 마’라는 위선보단 ‘무엇을 포기할지 선택해’라는 냉혈한 말이 더 정확한 거 같아.


누구에게 이득과 포기를 몰아주는가도 중요한 논점이야. 우린 특유의 경제 시스템으로 그것을 정하고 있지. 높은 생산성을 기대하는 곳에 투자금을 뿌리는 거 말이야. 지극히 합리적이야. 자본이 자본을 낳는 비율을 경쟁하면, 자동으로 필연적인 이득과 포기를 분배할 수 있어. 때때로 조금의 조정만 가해나가면, 사회적으로 도저히 붕괴할 수 없을 정도로 견고한 시스템이지.


그럼, 누가 이 견고한 시스템의 대가를 치르는지도 알아봐야겠지. 여기선 한 유튜브 영상의 예시를 활용해 보려고 해. ‘지식은 날리지’라는 채널의 <암 발생률 1위 직업, 원자력 발전소 근무자보다 더 위험한 직업은?>이라는 영상이야.


영상은 비행기 승무원이 원자력 발전소 근무자보다 연간 2~4배의 방사능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해. 비행기는 주로 오존층을 이동하기에, 이곳까지 도달하는 우주선(방사성 물질)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어. 평균적으로 승무원이 사무직 근로자보다 20배, 원자력 발전소 근로자의 2배 이상의 방사선에 노출된다고 해. 이는 연간 피폭 허용치의 2배 정도라네.


영상은 특히 한국의 D 항공사가 북극항로를 활용하는 케이스에 주목해. 이 항로를 지날 경우, 3~4배까지의 방사능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이야. 북극항로는 특히나 우주선을 방어하는 지구 자기장이 약해지는 곳이거든. 승무원이나 기장의 입장을 생각하면, 그런 항로를 선택할 이유가 없어. 금액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피해를 볼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기 때문이지.


하지만 항공사의 입장에서 북극항로는 메리트가 높은 이야기야. 이 항로를 선택하면, 운항 시간을 30분 이상 절약할 수 있다고 해. 이는 항공유 7,700L 정도를 절약할 수 있는 수치고, 금액으로 환산하면 400만원 정도야. (2019년도 기준) 2013년 국정감사에 따르면, 북극항로를 통해 매년 40억 정도를 절약할 수 있었으며, 이로 인한 순이익의 많은 부분이 주주들에게 돌아갔다고 해. 내 식으로 표현하면, 승무원의 비자발적인 포기로 생긴 이득을, 다른 이들이 챙기고 있는 상황인 거야. 영상 제작자의 의견도 비슷할 거고.


영상의 마무리 부분을 살펴볼게. 한 기사에 따르면,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 제10조에 따라 ‘항공운송사업자는 승무원들에게 피폭량 정보를 개인별로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아서 이를 아는 승무원은 거의 없다고 해. D 항공사는 “승무원들의 방사능 피폭량이 연간 법정 기준치를 넘지 않도록 비행 스케줄이 짜여있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이야.


다시 주제로 돌아와 보자. 정말 좋은 예시야. 영상이 활용한 자료를 어느 정도만 신뢰해도, 포기와 이득의 비율과 분배가 뒤틀려 있는, 현실을 잘 확인할 수 있지. 영상 제작자가 “과연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까요?”라고 언급한 건 정말 좋은 선택이야. 우리 사회현실의 모순점을 잘 드러내는 의문이니까.


일단 해결책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북극항로를 계속 선택한다면, 많은 개선이 필요할 거 같아. 항로에서 발생하는 방사선량은 고정값이니, 근로자의 피폭량을 줄이는 건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어. 비행기 전체에 방사선을 덜 통과시키거나 모든 탑승자에게 보호복을 착용하게 하는 건 현실성이 떨어질 거야. 전자는 기술 실현을 위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필요할 거고, 후자는 여러 방면에서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겠지.


가능한 한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승무원들의 방사능 피폭량이 연간 법정 기준치를 넘지 않도록 비행 스케줄이 짜여있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을 깨부숴야 해. 영상은 기준치의 2~4배의 피폭량을 주장하지만, 과연 그게 과학적인 수치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내 말은 영상의 수치에 의구심을 가진다는 게 아니라, D 항공사의 주장에도 근거가 있을 거라는 거야. 그들이 사용하는 기준치는 어떻게 측정하고 있고, 스케줄은 어떻게 짜고 있는 건지 알 수 있다면, 더 정확한 기준이 어떤 것인지 따져볼 수 있을 거야. 물론 이것도 실현하기 어려운 방법이지만, 여기서부터 시작할 수 없다면 어떤 방법으로도 시작할 수 없을 거야.


이 과정을 거쳐 정확한 수치를 합의했고, 현행 스케줄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물론 영상의 주장과 사용하는 통계에도 많은 의심을 품을 수 있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려는 주제와 동떨어진 문제라, 넘어가 보려고.


현행 비행 스케줄을 유지하려면, 2배 이상의 승무원 채용이 필요할 거야. 피폭량의 연간 법정 기준치를 지켜야 하니까. 인건비는 그에 비례해서 상승할 거고, 그 비용의 대부분은 D 항공사가 부담해야 할 거야. 북극항로를 선택하는 이상, 그것은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선택이어야 해. 그런 프레임으로 추진된 항로니까. D 항공사가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인건비를 삭감에 성공하거나, 이 새로운 이슈를 직원과 공존하는 건강한 모토로 소화해 내는 캠페인을 대내외적으로 성공시킨다면, 북극항로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는 항로로 선택될 수 있을 거야.


만약 그런 것에 실패해서 북극항로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떨까? 영상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0~15만 대의 비행기가 운항하니까, 항로 조정엔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필요할 거야. 평균적인 운항 시간이 상승하니 연비는 상승하고 이용객의 불만이 발생하겠지. 연비를 줄이는 기술이야 항상 연구되겠지만, 물리적으로 언제나 북극항로에 비해 비쌀 거야.


북극항로를 포기하면서 발생하는 새로운 비용은 D 항공사와 거래하는 모든 사람이 짊어질 거야. 시간이 더 걸리는 표를 전보다 비싸게 구매해야 하지. D 항공사의 주가는 빠르게 떨어질 거야. 1분 1초가 소중한 이용객은, 차라리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티켓을 사고 싶어 하겠지. 결국 북극항로 시장은 다시 필요해질 거고, 이는 D 항공사가 유리했던 시장에 발을 뺐다가 다시 담가야 하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할 거야. 전보다 훨씬 불리한 입장의 경쟁일 거고, 북극항로를 이용하는 티켓은 특등석처럼 거래되어야 할 거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어떻게 생각하든 거의 동일한 포기(비용)가 반드시 필요할 거라는 사실이야. 영상의 통계가 진실에 가깝다면, 우린 지금 승무원의 생명으로 북극항로의 이점을 누리고 있는 거지. 이를 조정하기 위해선 인위적인 개선이 필요하고, 그건 어떤 경우든 동일하거나 더 큰 비용을 치르는 선택일 거야. 필연적으로 새로운 방안을 시험해 보는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


그리고 북극항로의 선택 여부에 상관없이,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에 부딪힌다는 걸 알 필요도 있어. 물론 관련해서 아무 지식이 없는 나의 예측이지만, 결국 추가적인 비용을 누가 어떻게 감당하느냐의 문제야. 자본사회에서 새로운 비용이 발생한다는 건, 그와 관련된 모든 이들의 입지가 그만큼 변화하는 걸 의미하지. 포기와 이득의 이상한 교환비를 조정하는 건, 사회의 어느 영역에나 그런 변화를 가져온다는 거야.


포기의 양을 조절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야. 필연적이지만 부담하기 껄끄러운 짐이지. 외면하고 싶은 문제이자, 떠넘기고 싶은 책임이고, 확인하기 싫은 비용이야. 이쯤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에 일어나는 포기의 교환비를 살펴보면, 더 절망에 빠지게 되지.


다들 알겠지만, 인간사회는 자연에게 극단적인 교환을 강요해 왔어. D 항공사 승무원과 관련한 교환비도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는데, 이만큼 무지막지하게 묵인된 착취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딱 잘라 말하면, 우린 해결할 수 없어. 포기는 영원히 필연적이고, 우린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포기를 어느 비율로 분배할지 정도야. 기쁜 소식은 그에 대해선 우린 이미 많은 성공을 거둬왔다는 거지. 예전엔 자연을 착취하는 것처럼 승무원을 착취했거든. 수많은 약자 계층의 사람들이 교환비가 이상하다고 투쟁해 왔거든. 이 문제도 영원히 해결될 일은 없지만, 언제나 사회는 올바르다고 생각한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고 봐.


결국엔 터져버린 자연의 투쟁도, 우린 이미 오래전에 감지하고 있었어. 포기의 비율을 조정하는 기술을 몇십 년간 개발, 시행하고 있지. 우리의 방식으로 포기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거야! 그것은 새로운 사회를 가져올 거고, 우릴 한 단계 더 성장시킬 거라고!


하지만 몇 가지 더 짚어볼 문제가 남아있어.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시간이 있을까? 당장 포기의 비율을 획기적으로 조정할 수 없는 걸까? 해결 비율에 도달하면, 우린 그 특이점에서 안락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승무원을 자연처럼 착취했던 시기가 얼마나 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자연을 이만큼 착취하는 시기는 당장에 단절할 필요가 있는 거 같아. 아직도 부지불식간에 이뤄지는 착취가 어마어마하잖아. 자연이 참을 수 있는 임계점에 도달하는 속도란, 적어도 우리가 이뤄내는 기술 발전의 속도만큼 빠른 거 같아.


그럼, 문제는 ‘목적지까지 얼마나 남았느냐?’야. 난 우리가 그걸 객관적으로 계산해 낼 순 없을 거라고 생각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무의미하더라고. 지구온난화가 거짓말이라는 자료와 기온 상승이 심각하다는 자료는 동일한 효과를 내고 있거든. ‘아, 그렇구나.’


즉, 우리는 단체로 이상한 도박을 하고 있다는 거야. 앞면이 나올 거라는 것에 확신하고 모든 걸 걸었다는 게 아니라, 어떤 것도 잃지 않을 거라고 착각하면서 도박에 임하고 있어. 만약 지구의 데드라인이 더 가깝다면, 우린 다시없을 희극처럼 멸망할 거야. 어마무시한 배팅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거 같아.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는 정도로, 노력이라고 지껄이고 있으니까. 이건 여러모로 올바른 포기가 아니라고 생각해.


운 좋게도 우리의 기술이 환경 문제를 해결해 버리면 어떨까? 정말 많은 게 가능해질 거야. 어마어마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 거고, (포기의 비율을 포함해서) 사회의 수많은 골칫거리를 찬찬히 해결할 수 있겠지. 하지만 가장 먼저 자본과 권력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거야.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란, 에너지의 혁신이니까. 우린 한 번 더 거대한 힘의 대가를 치러야 하지.


물론 동전이 앞면이라서 얻는 이득은 엄청나지만, 인류의 존망을 걸만한 건 아닌 거 같아. 애초에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하는 게 더 정확하겠지.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당장의 환경오염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도란 게 존재할까? 우린 애초에 동전의 뒷면을 선택할 수 없는 건지도 몰라. 소비와 자본, 기술의 향락은 절대 뒷걸음치는 법이 없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이상하지 않아? 당장의 환경오염을 줄일 수만 있다면, 우린 훨씬 높은 확률로 환경 문제를 해결하고, 에너지 혁명을 이뤄낼 수 있어. 난 우리가 그만한 능력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존망이라는 거대한 걸 포기하지 않더라도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의 포기가 있겠다고 얘기하고 싶어.


다른 현실적인 문제를 전부 무시할 수 있다면, 우린 D 항공사의 문제를 너무나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어. 하루에 10~15만 대나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절반 수준으로 줄여버리는 거야. 세상의 모든 항공사를 반 토막 낼 수 있다면, 여전히 북극항로라는 경쟁력을 챙기면서 승무원이 방사능에 의한 질병에 걸리는 걸 막을 수 있어. (여전히 승무원을 해고하지 않고 노동시간을 절반으로 줄여야 하겠지만, 지구의 모든 항공 자원을 절반으로 줄인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일 거야)


나도 이상한 소리라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난 과도한 자본 생산과 소비가 포기의 폭력적인 불균형을 양산하고 있다는 직관을 버릴 수가 없어.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에 시장의 방식이 크게 공헌했다는 것은 부정되지 않아. 다른 방식이 인류에게 부합하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우리가 그 방식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각오가 되어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단 거야.


난 우리가 확실하게 생존하기 위해 모든 산업을 반토막 내는 방안을 제시하려고 해. 비행기 운행을 줄이고, 식량을 절반만 생산하고, 필수적이지 않은 산업을 폐기하는 거지. 절대로 가능한 계획은 아니지만, 우리의 생존확률을 유의미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이 순간까지 지구에게 해 온 일이란, 이 정도로 어마어마한 포기가 필요한 정도의 일일 거야.


실현 가능한 계획은 아니지만, 정말로 이게 불가능한 일인 걸까? 하루 10만 대의 비행은 정말로 필수적일까? 효율이 떨어지는 누군가의 비행을 제한하면, 연비를 획기적으로 절약하는 기술을 기다리는 것보다 확실하게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어. 덩달아 승무원의 연간 방사능 피폭량을 정상 수치까지 줄일 수 있지.


식량 생산도 마찬가지야. 우린 이미 모든 인류에게 필요한 양보다 2배 이상은 생산하고 있을 거야.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만 잘 통제할 수 있다면, 식량 생산을 줄이고도 전 세계의 기아를 종식할 수 있겠지. 이상적인 생각이지만, 정말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일 거야. 조금만 덜 먹고, 버려지는 음식을 없앤다면, 확실하게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을 거거든. 유제품 산업이나 어업, 낙농업 등을 절반으로 줄여도 타격은 생각보다 크지 않을 거야. 그에 비해 효과는 엄청날 거고. 아, 이 얘기를 안 했어. 어업과 유제품 산업이 낳는 에너지 소비와 오염은 아마 당신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할 거거든. 이에 대해 상당히 극단적인 다큐인 <씨스피라시>와 <카우스피라시>의 내용을 10%만 신용해도 말이야.


물론 다큐의 결말처럼 채식을 하자는 얘기는 아니야. 개인적으로 채식은 내 방안보다 더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생각해. 내 주장은 제발 음식 소중한 걸 알고 버리지 말자는 거니까. 필연적으로 식료품의 값이 상승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한 비용을 음식물 쓰레기에 청구한다면, 최악의 식량 대란 정도는 막을 수 있을 거야. ‘그린피스’라는 환경단체가 유제품 등의 생산을 2050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줄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는데, 이것도 내 주장과는 좀 달라. 30년 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충분히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고, 우린 이 어마무시한 포기를 지금부터 30년간 감수해 내야만 확실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거야. 게다가 식품 쪽의 포기는 다른 분야보다 훨씬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단 거지.


물론 이런 식의 해법은 우리의 모든 경제권을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방법일 거야. 경제는 다시없을 위기를 맞이해야 하고, 투자자들은 어마어마한 대가를 치러야 하겠지. 모두가 못 벌어 먹고살 수는 없으니까,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돈을 쏟아내게 해야 할 거야. 높은 확률로 약자부터 죽어갈 거고, 그건 이 계획이 절대 시행되거나 언급될 수 없다는 걸 의미하는 거야. 어쩌면 이것 자체가 우리가 영구적으로 포기한 것의 정체일지도 모르지.


꽤나 긴 헛소리를 늘어놨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해지지 않은 거 같아. 내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승무원 문제의 해법이란,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거야. 문제는 현실적이지 않은 해법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을 수 없는 사회 현실에 있다는 식으로 화풀이하고 있지. 누구보다 세상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녀석이 말이야.


그나마 현실적인 얘기를 하자면, 우리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선 거대한 포기가 필요하단 걸 알아줬으면 해. 나아가, 사회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든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납득했으면 하는 거야. 언제나 우리 앞에 있는 문제는 ‘어떤 방식의 포기를 선택하는지’야. 승무원을 위해 비행기를 줄이고, 지구를 위해 절반만 소비하는 포기가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언젠가 그런 포기보다 더한 포기가 밀려올지도 모른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적어도 우리와 누군가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길 바라. (물론 여전히 승무원의 고용을 2배로 하고, 노동시간을 반으로 줄이며, 시간당 임금을 2배로 늘리는 비교적 저렴한 방안이 존재해. 인건비가 4배 이상으로 뛴다는 단점이 있지만, 북극항로를 포기하거나 비행기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보단 확실하게 저렴할 거야. 뭐, 그냥 그렇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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