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삶이었을까?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 밤길을 가는데, 가로등이 안 켜져 있는 거야. -데미안 라이스의 Lonelily를 들으며’
“이건 내 생각이지만,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는 서로 힘들다는 걸 모르기 때문인 거 같아. 꺼진 가로등처럼 말이야.”
“그래? 근데, 요점은 가로등이 아닌 거 같은데?”
따듯한 우리 집 화로 앞에, 다들 앉아서 얘기하고 있어. 소파의 폭신함이 감사한 순간이지. 분명 초롱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어. 뭔가 초연해진 거 같아. 푸른인 모른 척해달라는 눈치야. ㅎㅎ, 정말 바보라니까. 본인이 말하지 않는 한, 우린 평소처럼 너흴 사랑할 거야.
“아니. 확실히 가로등을 겨냥한 말이었어. 여기선 보통, 행인을 주체로 느끼지. 가로등은 정적이니까. 하지만 길을 가는 사람도 정적이야. 힘없이 방황하고 있거든. 행인과 가로등은 같은 존재인 거지.”
역시~.
“그렇구나! 그럼 사랑아, 사람들이 서로 싸운다는 건 무슨 말이야? 싸운다는 건 동적이지 않아?”
역시 어려운 대환 조금 힘드네. 음~.
“여전히 내 식으로 해석하는 거지만, 난 싸울만한 이유가 없는 싸움은 다 정적이라고 생각해. 그러니까 역사적이거나 약자의 생존에 필요한 필연적인 투쟁 같은 거, 혹은 서로 간의 깊은 모순을 해소하는 싸움들 말고 말이야. 그런 것 이외의 어떠한 소요라는 게 서로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난 그게 정적으로 가는 변화만 가져온다고 생각해. 모두가 길 위에 어쩔 수 없이 늘어서 있지만, 아무도 불을 밝히지 않는 길처럼 살아가는 거지.”
“노력한 건 알겠는데, 좀 빈약하지 않아?”
얜 좀 잘한다 싶어도!
“아냐, 아냐. 그 정도가 나한테 딱 맞는 거 같아. 어떤 느낌인지 알 거 같은데. 그러니까, 모두가 모두에게 뚱해져 있어서 아무도 서로 믿지 않는 건가?”
!!!
“으하하하! 비슷해! 뚱해져 있다는 표현은 참 좋네. 근데 믿지 않는 것보다는 마음을 열 생각이 없다고 해야 할까?”
“으~. 바보들이 뭔 말인들 못 하겠어~~.”
얜 또 뭐래니. 사과야, 도와줘.
“아무래도 딱 정리해서 말하기 어려운 문제지? 사람이 사람 못 믿는 건, 만년은 넘게 이어져 온 문제니까. 게다가 최근에 훨씬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한 거 같아. 애초에도 그렇지만, 지금은 더 정리해서 말하기 이상한 주제가 되었단 거지.”
“그렇게 복잡할 필요가 있을까? 아직 더 복잡한 주제들도 많은데, 그냥 ‘사람은 서로 신용하지 못한다.’ 정도로 정리하면 될 일 아니야?”
아유, 끝까지 팍팍하긴.
“그냥 난 좀 많이 슬퍼……. 그냥 우리가 좀 더 많이 웃으면서 지냈으면 좋겠어. 때로는 모두 불을 환하게 켜고, 서로를 바라보는 날이 있는 세상이었으면 하는 거야. 근데, 네 말대로 좀 과한 욕심일지도 몰라.”
하……. 정말 우린 어떡하면 좋니……. 솔직히 이대로는 죽어도 싫단 말이야. 푸른이년 맘대로 하는 거 말이야.
“난 그래도 좀 다르게 생각해!”
??
“불빛이 하나 없어도, 가로등은 길 따라 서있는 거잖아. 사람은 서로를 못 믿어도, 근본적으로 외로운 것만은 피하고 싶은 거야. 적어도 서로는 서로의 옆에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가로수 길에 서 있다는 거지.”
“어? 우와!”
“잠깐, 그건 그냥 비유…”
“정말 탁월한 비유야! 우리가 사회에 예속되고 모든 통제와 어둠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옆에 누군가 있길 바란다는 거지!”
“으하하! 그거 정말 좋은 해석이다!”
“나쁘지 않은 가설이야.”
오 예! 3 대 1~.
“그건 좀 억지야.”
“뭐, 억지일지도 모르지만, 딱히 말이 안 되는 결론은 아니야. 너도 사람이란 사회적인 동물인 거 알잖아? 인류가 사회를 자연스레 형성한 건, 자연 상태의 불안 따위가 아니라 혼자가 되는 절망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말이야. 네가 사회계약론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건, 내가…, 아효…….”
완전 사이다 카운터펀치 들어갔다~~~! >< 맛이 어떠냐, 이 삐딱한 년아~~. 역시 푸른이 잡는 건 초롱이 밖에 없다니까~~~~. 아우, 속이 후련~~~하다~~.
“너 또 이상한 생각 했지?!”
ㅎ,
“응? 글쎄? 무슨 말이지~~?”
“내가 말을 말아야지.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