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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Jan 12. 2023

8.수다냐 대화냐 주접이냐

사람이 그리울 때. 말하고 싶을 때.


 안전한 무리 속에서 나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된 일일까.
 너에게 나의 마음을 이야기할 수 있다. 나는 너를 믿는다. 이런 뜻일 테니.


 언제던가. 서로 알아가게 된 지 1년쯤 되었을 때 동네 언니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본인은 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잘하지 못하는 편인데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에는 놀랐다고. 나는 속 이야기를 잘 못하는 편인데 너는 속 이야기를 참 잘하는구나. 나도 속 이야기를 솔직하게 이야기해 봐야겠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고.


 근 30여 년간 나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수다였던 것 같다. 스트레스가 쌓일 틈도 없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서 내 이야기를 하고 상대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소소하고 잡다한 일들을 이야기할 때도 있었고 내 마음이 어떤지를 말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관계가 돈독해지고 나와 맞는 친구들을 모색해 가며 친구를 만들어간 것 같다. 어떤 점은 독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나의 어떤 부분이 싫다면 그가 나를 멀리 하여 친구가 될 수 없었겠지. 반대로 상대는 나에게 호감이 있을 수 있었겠지만, 그와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그를 싫어하게 된 적도 있었을 거다. 관계의 초반이든,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든.


 결혼 후에 판도가 달라졌다. 아니다. 신혼 초에는 나의 주변 인간관계들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원할 때 그들과 만날 수 있었다. 출산 후에 아이를 낳고부터 완전히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우는 아기와 하루 종일 있어야 하니 수다를 떨 수도 마음을 이야기할 상대도 없었다. 그나마 아기가 돌 무렵이 됐을 즈음 동네 엄마들을 만나서 서로 하소연을 할 수가 있어서 그 전까지는 남편을 볶아댔다. 남편 입장에서 정말 스트레스였겠지만 부인 입장에서 수다든 대화든 이야기를 할 상대가 남편밖에 없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서 부인은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부인이 힘들어하는 것은 본인 탓으로만 여겨졌을 테니. 아기 엄마 입장에서 힘든 이야기든 소소한 이야기든 그냥 들어만 주고 대꾸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밖에 없는데 아기 아빠 역할에서의 남편은 듣고 있자니 힘들다. 미안한 마음과 힘든 마음. 그래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것이다.


 그 한 가지. 대화가 잘 통한다는 생각에 결혼했었다. 나에게도 그때가 제일 위기였던 것 같다.

 이 사람과는 살아가면서 대화를 하면서 힘든 일을 헤쳐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착각이었다.

 내가 원하는 대화가 무엇인지를 몰랐던 것이다. 상대에게 대화를 통해서 무엇을 바랐던 것인지를 몰랐던 것이었다.

 일방적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쏟아내면 되는 것이었는지.

 그가 해결책을 말해줄 것이었으리라 기대했던 거지.

 농담으로 위기를 극복해 나갈 거라고 생각한 건지.

 그 어떤 대화를 원했던가?

 

 결국 지금의 나는 안다. 대화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은, 상대가 나에게 관심을 갖고 물어봐 주기를. 또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억지로 가져올 수 없는 일이고 원한다고 바로 받을 수도 없다는 것도 안다.

 더 나아가 위의 것들을 누구에게 받을지도 알게 되었다.


 전화통화를 하든, 만나서 이야기를 하든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지속적으로 가깝게 지낸 사람에게 공감을 받기도 하지만.

 거리감이 느껴져서 일이 년에 한 번씩 전화통화만 겨우 하는 지인에게도 위안을 받기도 한다. 그냥 그분의 목소리만 들어도 힘이 되는 때가 있다. 내가 순간적으로 알아채지는 못했지만 그의 관심을 받아서일 거다. 통화가 끝난 이후에 나의 마음이 따뜻해지며 여운이 길게 남는다.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에게 나의 마음도 전해졌을까?


 어떻게 지내세요?

 요즘 직장에서는 어때요?

 육아랑 일이랑 다 해내시느냐 애쓰시네요.

 참 대단하세요.

 안 힘들었어요?

 역시 잘하고 계실 줄 알았어요.


 나의 이런 질문이 자연스레 당신에 대한 관심이고. 맞장구는 당신에 대한 칭찬과 응원이다.

 이러한 마음이 당신에게 닿았기를.

 내가 당신에게 그 마음을 받은 것처럼.



 정말 마음이 쪼그라져 있을 때에는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전화통화를 하는 것도 피곤하다. 일일이 설명하는 일이 귀찮고 나의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을 때도 있다. 다들 나 잘 살고 있다고 스마트한 방법으로 다양하게 과시하는 세상에서, 울고 싶다는 내 속내를 전하고 싶지도 않고. 이 마음이 상대에게 전달되어 그까지도 가라앉게 만드는 것 같아 생각만으로도 피곤하다. 그런데 수다를 떠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하듯 입을 움직여 수다를 떨어 활력을 찾아야만 한다.


 아이의 통장을 만들기 위해서 은행에 갔었다. 간 김에 대출도 문의했다. 은행 상담원은 웃으며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나도 궁금하던 차에 알아본 것들을 묻는다. 간단한 대화였지만 마음이 따스해졌었다.

 

 나는 그들에게 친절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내가 웃으려고 노력했고. 부드럽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똑같이 돌아오지 않을 때도 있다. 그들이 무조건 친절할 필요도 없으니. 그저 말을 주고받는 동안에 마음의 위안을 얻는 경우가 가끔 있음을 말하고 싶다. 너무 외롭다고 생각이 들 때. 누구와 대화하고 싶은데 가볍게 말하고 싶을 때. 그럴 때는 어느 곳에 관심을 갖고 문의해 보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손을 내밀 듯. 그 누군가가 잡 줄거야.


 그럼에도 답답하다 느낄 때에는 글을 써보는 것도 어느 정도 마음의 해소가 된다. 글을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수다스럽게 써보는 거다. 나도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글을 쓰려고 할 때 잘 되지 않았다. 문장을 쓰려고 하는데 종결이 되지 않는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쓰다 보면 머릿속에 떠도는 생각들을 문장 속으로 끌어내려 내 마음이 차분해진다. 펜이든, 자판이든 수다를 떤다고 생각하고 글을 써보자. 그리고 소리 내어 읽어보자. 입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차분해질 거다. 그것도 어렵다면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책이나 시, 에세이든 펼쳐보고 소리 내어 읽어보자.


 주접을 떨면 좀 어떠냐. 나를 탓하지 말자. 창피해하지 말자.


내가 듣고싶은 말을 쓰고 나에게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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