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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희 Apr 24. 2023

18. 당신이 옳다.


 직장에서 부모교육을 실시하였다. 호기심에 신청하였다. 대략 8명 내외의 직원분들이 둘러앉았다. 아동기 부모교육인지라 자녀들 연령이 초등생 이하인 엄마 아빠들이었다. 아빠들 4명, 엄마들 4명 정도였다. 지금 이 기관의 남자분들은 꽤 자상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교육을 용기 내서 신청하고 듣는 것을 보면 꽤 노력한다는 의미겠지.


 교육은 2회기로 진행되었다. 교육이어서 일방적인 강의만을 생각했는데, 빙 둘러앉아서 서로의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었다. 가정생활에서 각자의 힘든 상황을 이야기해 보고 가족구성원들의 가족 세우기도 진행하였다. 가족들을 대변하는 모형을 내 앞에 세워두고 그 가족들의 구성을 통해 나의 심리를 들여다보려는 노력 같았다. 현재 나의 가족들의 관계에서 원가족(나의 부모, 형제)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의 부모님과 나의 관계가 현 가족의 구성에도 영향을 주는 듯하다.  강사가 과거에 부모님의 관계는 어땠는지, 나는 그 안에서 어떤 심리였는지 물었다. 글쎄, 과거의 나를 꺼내는 것은 가슴이 아프다. 그리고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다. 좋았던 기억도 있지만 대개 이런 상황에서 전문가는 아픈 기억을 꺼내려한다. 현재 나의 심리를 들여다 보고 그 마음을 어루만지는 과정은 심리치료의 기본인 것 같다. 어린 나를 마주해야만 더 나아질 수 있다고들 한다. 정말일까? 늘 의구심이 든다. 아픈 과정을 뒤헤집지 않고도 현재와 미래를 보면 안 될까. 내 발목을 잡지 않은 과거라면, 굳이 문제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다.


 다른 여직원들이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느 집 남편들이나 똑같은 모양새다. 알아서 일을 하는 남편은 없으며 부인의 요구를 더 듣느냐 안 듣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인 듯싶은 정도. 남편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신들의 부인이 남편을 조금 더 믿고 맡겨 주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진행하다 보니 나의 가정이 가장 심각한 모양새가 됐다. 가족심리를 전공한 강사가 난감해하며 '솔루션을 드려야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질 텐데...' 하며 한참 동안 침묵해 있었다. 그 침묵의 시간은 굉장히 나의 가정과 생활이 심각한 의미라는 듯이 느껴졌다. 두 시간가량 쉴 새 없이 참가자들의 말을 가로채 가며 열의를 보였던 강사가 말을 잇지 못하니 내가 어찌해야 할지... 강사는 상담기법으로 침묵을 이용했을 수도 있으나 내 눈에는 그저 난감해하는 모습으로만 보였다.


 사실 각자의 솔루션은 각자가 갖고 있다. 상담가는 조력할 뿐이다. 의외로 내 문제는 답정, 내가 정해놓은 답이 있을 경우가 많다.


 안 그런 척하려고 했지만, 그 상황에서 나는 강사보다 더 당황해했다. 그리고 깊게 상처받았다.

 내 상황을 문제시했다는 것.

 강사의 걱정과는 달리, 나는 내 상황이 해결불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해결사를 자처하는 강사가 해결을 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좌절감을 느꼈다. 고작 2시간씩 2번을, 개인치료로도 어려운데, 이런 상황에서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공감하기에도 짧은 시간에.


 사람들은 자기의 스토리를 읊는 것을 즐긴다. 스스로 말하면서 해결 방법을 찾기도 한다. 상담가가 해결책을 구하느라 눈을 굴리는 사이 상대는 혼란스러워한다. 그저 "네 말이 맞아. 힘들었겠네." 그 말로 상대는 위안을 받는데. 대체로 대화는 경청으로 시작해 경청으로 끝나는 게 좋다. 해결책을 이야기해 주려다가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나와 혹은 상대와)싸우기 일쑤다. 친구 관계든 상담 관계든. 모든 관계에서 나는 네 편이다. 그 외의 것은 생각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상대는 안도한다. 내 얘기를 듣고 재고 비교하고 제삼자의 의견을 대신 말해주는 상대라면 다시는 입을 떼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나는 갈구한다.


 네 말이 맞아.

 잘했어.

 네 마음이 그럴만하네.


 그 말 들으려고 대화한다. 아니, 그 말을 들으려고 언를 습득했다.


 어떤 상황에서든 그 행동에 너의 마음은 옳다.

 내가 그런 행동을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감정에 옳고 그름을, 좋고 나쁨을, 주지 말아야 한다. 그저 감정일 뿐. 그 누구도 아닌 나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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