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든다. 하지만 여전히 혼란스럽다.
면접 데이터를 쌓기 위해 봤던 면접에 덜컥 합격을 해버렸고, 그 후부터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으로 지배당해버렸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오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점심시간이 됐다. 팀원들과 마주 앉아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할 수 없을 것 같아 핑계를 댔다. 하지만 오랜만에 여직원끼리만 함께할 수 있는 식사자리라는 말에 갈대 같은 나의 마음이 흔들린다. 결국 함께 밥을 먹으러 간다.
이런 것만 봐도 평소 부정했지만 나는 정말 타인이나 주변 환경에 잘 휘둘리는 스타일인가 보다. 그래서 내가 지금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 보다. 처음에는 분명 면접 경험만 하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는데, 면접을 보고 여러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점심식사 후 자리로 돌아왔다. 사수가 화장실에 갔다. 돌아올 때 즈음 화장실 앞을 서성거린다. 마침 나오는 사수를 붙잡고 시간을 내어달라고 한다. 내가 머뭇머뭇거리자 우리가 근무하는 17층을 떠나 18층으로 향한다.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묻고 싶은 것은 딱 두 가지였다.
1. 왜 처음에 정규직 전환이라는 이야기를 했는지.
2. 지금 내가 이직을 고민하는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본인도 처음에는 가능할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면접 당일 면접 직전 인사팀이 전달한 면접 시 주의사항에서 전환이 불가한 프로세스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눈물이 말 것 같았다. 입사 전 정규직 자리와 이곳의 계약직 자리를 놓고 엄청난 고민과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면 고민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지금 이런 고민 또한 하고 있지 않겠지..
울음이 터져 떨리는 목소리를 눌러보며 두 번째 질문을 이어간다. 직원으로 선임으로 궁금했던 질문과 답은 여기까지이고, 언니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나의 상황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차라리 붙잡았으면 이렇게 까지 혼란스럽지 않았을 것 같다. 붙잡지 않았다. 정규직이고 괜찮다고 판단하면 가는 게 맞는 거라고 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타격이 크겠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그게 맞다고 한다. 이로서 정말 1년, 잠시 빈자리를 대체하다 나가는 신분인 게 확실시되었다.
사수, 아니 이제 사수가 아닌 그냥 선임이라는 말이 더 맞겠다. 나는 이곳에 잠시 누군가를 대신하다 떠나려는 운명이 맞으니까. 선임과의 대화는 한대 얻어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하지만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날 퇴근 후 선임의 베이비샤워 파티가 간단히 있었다. 사진을 찍다가 신입사원과 둘이 사진을 찍으라며 사람들이 부추긴다. 사수니까 둘이 사진을 찍으라고 말한다.
나의 사수가 아니었다.
신입, 정규직원의 사수였다.
나는 그저 빈자리를 잠시 대체하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