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글씨가 사라질 때 우리가 잃는 것

매개된 경험 시대- 몸의 기억

by 숨은결


책의 3장은 체화와 물성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매개된 경험이 일상이 된 지금, 반대급부로 떠오른 것이 바로 체화이다. 곧 몸으로 익힌 것이 우리의 인간됨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다.

미국의 초등학생들 중에는 필기체를 쓰지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런 현상은 비단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요즘은 아이들이 손으로 글씨 쓰기를 어려워하거나, 글씨체가 악필이라 본인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와 관련한 연구 논문도 있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글씨를 써서 글자를 익히는 일은 인지능력과 학습능력의 기초를 잡아주는데, 이 능력의 약화가 지금 세대의 아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고 본다.

최근 내 관심 이론이 체화에 있기에, 3장에서 이 단어를 보고 반가웠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해외 학자들 가운데는 이미 독서를 체화로 보고 연구한 사례가 있다. 쉽게 예를 들면, 독서는 인지 과정이라고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대다수이나, 실제로 독서 과정을 신체에 기반한 지각과정으로 보는 것이 바로 체화이론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이야기하면, 책을 읽을 때 깊이 몰입하게 되는 때가 있다. 특히 소설을 읽는 경우 그런 상황이 꽤 있다. 마치 내가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가 현실처럼 느끼는 동시에, 내 몸이 어떤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지 자각하는 순간이다. 깊은 몰입은 당일에 소멸되지 않고 며칠 지속되기도 한다. 그럴 때는 현실과 소설의 경계가 흐리게 체감되곤 한다.

매개된 경험으로 인한 우리 인간이 물리적 존재임을 잊지 않기 위한 것으로 저자는, 물성을 말한다. 저자의 경우에는 8세부터 바순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것이 대학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만지고 느끼는 것을, 아이들의 놀이에서의 방식에 적용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내 경우에도 불과 몇 년 전까지도 편지나 카드를 꽤 자주 써서 전달했다. 성탄카드는 지금도 매해 몇 장씩은 쓰지만, 이전에는 몇 십장씩 써서 선물과 함께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코로나를 거치면서 이런 내 노력도 사그라들었다. 오랜 시간 편지와 카드를 써서 마음을 전달했었는데 순식간에 일상에서 낯선 일이 되었다. 최근에는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더 익숙하고 편하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필기시험을 볼 때 꽤 힘들었다. 주어진 시간 내에 교수님이 알아볼 만한 글씨를 제대로 써야 했기에, 저절로 손에 힘이 들어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다 쓰고 나서도 팔이 한참 아팠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지만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어서 재미있게 읽고 있다. 읽으면서 계속해서 짧게라도 내 생각을 적어서 기록을 남기는 중이다. 손글씨를 다시 일상 속으로 불러와야겠다.

손글씨를 쓰는 경험, 아직도 생활 속에서 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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