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성

허상에 갇히다

by 숨은결


이성과 감성이라고 하면 보통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내가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건 오스틴의 작품이 아니라, 이성과 감정의 조화라든지,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라든지 하는 말들에 대해서 한 번 짚고 넘어가고자 하는 개인적인 시도임을 밝힌다.


요 며칠 인생이 무엇인가를 주제로 하는 드라마를 감상하다 보니, 내 의도와 다르게 시간이 지날수록 감성적이 된 나를 볼 수 있었다. 인생이 얼마나 허무할 수 있는지.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잘해야 후회가 덜할 수 있는지. 나이를 먹으면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지.


드라마 주인공과 함께 고민하는 사이, 어느새 감성에 젖어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맞추며 사는 일이 실재할 가능성을 재고하게 되었다.


평소의 나는 이성을 추구하며, 감정적이 되거나 너무 감성에 취해서 이야기하거나 글을 쓰거나 판단하거나 하는 일을 자제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말에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 이성을 추구하는 일이 실제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거나 표면화하기보다 그저 내 생각에 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오히려 추구하지 않은 감성, 감정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가 틈만 나면 침투해서 이성을 멀리 쫓아버린다. 그 결과, 하루 종일 마음이 싱숭생숭하거나, 쓸데없는 걱정에 빠지거나, 친구나 주변 사람들의 말을 한번 더 곱씹어 보면서 의도를 추측하거나 한다. 결국 나는 정작 필요하고 해야 할 일에 마음을 쏟지 못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내고 마는 것이다.


또 다른 드라마에서는 아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이 주인공이었다. 그 재능이 일찍 싹을 틔워서 세간에 알려지면서 점차 큰돈을 벌게 되었고 무엇보다 실력을 마음껏 뽐내는 스토리가 이어졌다.


그러면 누구나 행복할 것이라 여기지만, 정작 주인공은 꽤 무덤덤했고 사람들과 소통할 때 어려움이 있었고, 무엇보다 마음의 외로움이나 허전함을 채우지 못해서 술이나 담배에 의존하거나 약을 먹거나 했다.


특출 난 재능을 가졌음에도 그 재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 늘 조화로운 이성과 감성의 상태라기보다, 오히려 쏠린 무게가 지탱해 주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늘 휘둘리며, 휘청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모습이 아닌가.


지나고 나면, 내가 왜 이렇게 마음 한 구석에서 피어오른 의심, 걱정, 허무함 등등의 감정에 무게 중심을 두고 시간을 낭비했는가 자책하게 된다. 흔히, 내가 걱정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날 확률은 아주 낮다는 말처럼, 지금까지 살아보면 그 말이 틀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성과 감성의 균형을 조화롭게 하여, 늘 평온한 인간의 전형처럼 사는 일은 이렇게도 어려운 일인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라는 말은 매혹적이나 허상에 가깝다. 파랑새처럼 쫓아가고 싶지만 잡히지 않는 것. 이는 매혹적이지만, 인간은 그렇게 우아하거나 아름답지는 않다.


그보다는 좀 더 감정에 질척대고, 이성은 엿 먹으라는 듯 행동하고, 의심과 불안, 허무에 쉽게 무너진다. 그런 존재임을 인정하면, 지금보다 덜 자신을 질책하고 비난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해도, 인간 존재의 존엄함이나 고귀함은 줄어들거나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자신이 원래 불완전하며 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것에 마음을 쏟아보려고 한다.


이상적인 이성과 감성의 균형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불완전한 상태로 살아가는 나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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