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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서 Mar 24. 2024

운수 좋은 날

3만 6천원

자전거를 주신 분이 누군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생각이 났는데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있었던

삼천리자전거 사장님이었다.

우리 아이들 자전거도 거기서 샀었는데 왜 단번에 기억하지 못했을까.. 싶지만 주위를 둘러보면서

지낼 만큼 여유가 없었던 시기여서 더 알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날밤, 용기가 없어서 늦은 저녁 문 닫힌 자전거가게 셔터문 사이로 편지를 두고 왔다.

자전거를 타고 가서 금방 다녀올 수 있었다.

비록 지금 돈은 없어 갚을 길은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꼭 보답하고 인사하러 오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아무런 도움조차 없을 제 인생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장님께서 보여주신 따뜻함에 큰 용기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과일상자를 들고 직접 찾아가서 인사를 드렸다.
비록 빚을 갚아가고 있지만 사장님 덕분에 이제는 전기자전거 대여도 해서 일도 잘하고 있음을
알려드리고 그간에 있었던 일들을 주고받으면서 이야기를 했다.
사장님께서는 '누군가 도와주는 것은 결국 자신을 돕는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인사하러 와줘서
고맙다. 편지를 읽고 이 사람은 뭐라도 할 사람이구나' 생각하셨다며 어깨를 다독여 주셨다.

세상은 결코 어둡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밝은 빛을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고 견딜 수 있는 용기 그리고

헤쳐 나갈 행동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좋은 만남을 갖고 배달을 다시 시작하러 움직였다.

내 생일이기도 해서 자전거 사장님께 인사하러 가면서 스스로에게 축하해주고 싶었다.

비록 혼자서 맞이하는 생일이지만 그래도 누군가 함께 나누는 사치정도는 자신에게 선물해 주고 싶었고

배달을 일찍 마치고 오늘은 쉼 없이 달려온 자신에게 칭찬해 주고 싶었다.

그동안 겨울,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이 오기까지 1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배달라이더로

열심히 살아왔다. 여러 가지 사정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오늘의 마지막 배달요청을 수행하러 음식을 배달가방에 넣고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아파트 입구 앞에 도착해서 비닐봉지를 잡고 올리는데 비닐고리 쪽이 찢어지면서 비닐봉지 안에서

국물이 조금 새어 나왔다.

조심하면서 한다고 했는데 예측불허의 상황까지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무려 3만 6천 원 음식이었기에

그날 하루 동안 한 배달수익보다 많았다.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하고 수습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잠깐 물티슈로 닦고 할까 생각했지만

입장을 바꾸어 그런 음식을 받고 싶지는 않을게 분명한데 양심을 버리긴 어려웠다.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도착지 벨을 누르자 노년부부가 함께 나오셨다.

자초지종과 함께 환불을 해드리고 음식 기다리셨을 텐데 정말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께서는 '이거 환불하면 기사님이 돈을 내는 겁니까?' 물어보셨다.

'당연히 제가 물어드려야죠.' 담담히 답을 하고 계좌이체로 해드릴게요. 말씀을 재차 드렸는데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에게 음식을 보여주면서 '괜찮지 않아' 말씀하시더니 손녀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이거 어때? 그릇에 옮겨서 먹을 수 있지 않겠어?' 그러자 손녀는 '응 괜찮을 것 같아요' 답을 하고

할머니께서는 '기사분이 힘들게 일하면서 이 정도는 괜찮다고 그냥 가셔도 됩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엉퀴어 연신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내려왔다.

돈보다 사람의 품격은 저런 것이구나. 싶기도 하고 살아오면서 나 역시 깐깐하지 않게 배려하면서

살아왔다고 생각을 했지만 이런 따뜻한 배려를 받는 것이 오랜만이니. 참 세상은 아직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많구나.. 싶어. 더욱 친절하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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