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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서 Mar 17. 2024

더 할 것이 많은 삶

더할 것이 많은 삶

건강을 잃고 집도 잃고 직업도 잃고 수술도 실패하고 정말 내 인생에 이토록 암울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날거라 상상도 못했지만 그래도 시작한 이상 잘해야 한다.

원래 초긍정적인 성격인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조금씩 걸어갈 수 있는 거리도 늘어나고 시간도 늘어났지만 여전히 2분 이상은 지속적으로

걷기는 힘들었다. 1분정도 걷고 한참을 쉬어야했지만 그래도 4년 6개월 누워 있던 사람이게는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한 일이었다.

그렇게 한달가량 재활한 끝에 도보 배달 알바를 도전했다.

솔직히 자존심이라고 말하기는 뭐하지만 그래도 한번도 생각 못했던 일을 시작하려니깐.

쉽지는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한게 부끄럽기는 하지만 숨기진 않아야 할 것 같았다.

그때는 그렇게 시작이 어려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물론 과연 내가 해낼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는데 한달동안 연습하고 도보 배달의 경우

거리가 제한적이라서 멀지 않은 목적지라고 해서 배달요청을 기다렸는데 '띵'하는 알림소리에

흥분되어지기 시작했다.

정신적으로 자기최면을 걸면서 걸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 넣으면서 출발했다.

음식점이 다행히도 가까운 곳이라서 음식을 받아서 이제 목적지까지 가면 되는데

중간쯤에서 도저히 걸을 수 없을 만큼 왼쪽 다리의 마비로 굳어지고 있었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다리가 돌덩이처럼 무겁고 땅밑으로 파고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

정말 기어서 가야하는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배달요청을 왜 받아서 이 고생일까'

'애초에 이런 일을 하기에 준비가 안되어 있어서..'

온갖 핑계와 변명을 해 보아도 지금 취소할 수도 없고 기다리고 있을 고객은 도대체 무슨 죄인가

싶어서 정말 이를 악물고 오른쪽 무릎으로 기어서 아파트 단지에 벽돌로 깔린 길을 나아갔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다리가 끊어진다고 해도 가야겠다는 생각 하나로

눈 앞에 보이는 목적지 아파트까지 도착하고 엘레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으니 경비원 아저씨게서

놀란 눈치로 '무슨 일이 있어요?' 물으시는데 민망함이 더 먼저 찾아와 그냥 넘어져서 조금 쉬면 된다고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하고 뻔뻔스럽게 엘레베이터를 타고 고객 집 앞에서 드디어 전달하고 나서야

긴장감이 풀리면서 땀이 옷을 다 적시고 그제야 무릎에서 따뜻함을 느껴 쳐다보니.. 옷은 찢어지고

무릎은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배달완료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조금씩 다시 다리를 끌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무언가 해냈다는 뜨거움이 솟구쳐 올라 눈물과 함께 감사한 마음이 밀려왔다.

건강과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배달로 3,500원을 벌었지만 살아갈 수 있을거라고 희망을 가져보았다.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하게 보낸 세월의 껍질을 깨고 다시 세상으로 내딛는 자신을 불태우고 싶을만큼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렇게 횡단보도를 간신히 건너고 집을 향해 열 걸음을 걷고 쉬고 반복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는데

뒷쪽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날 불러 세웠다.

그러고선 대뜸 '자전거 탈 줄 알지?' 질문을 하였는데 순간적으로 '자전거를 팔려는 신종 방법인가'

의심스러운 마음이었지만 '네..할 수 있죠...근데 돈이 없는데요.'

무심코 마음속 생각이 입 밖으로 나와서 엄청 당황스러웠다.

근데 할아버지는 그닥 신경 쓰지 않으시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아. 나 저 사거리 자건거 사장인데, 요 며칠 보니깐 자네 다리가 불편해 보이길래. 이거 중고이기는 하지만

관리를 잘한거라서 탈 수 있을거야. 그리고 여기 자물쇠.'

당황하는 내 손에 자전거를 쥐어주고 웃으면서 돌아가시는 할아버지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감..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내달렸다. 사실 자전거를 탈 생각을 못했지만 한쪽 다리가 마비가 있어도

자전거를 타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달려서 구석진 곳에 가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자전거를 주신 따뜻함 할아버지의 마음과 순간 각박한 세상이라면서 편겹을 갖고 불편한 시선으로

그 분을 바라보던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 부끄러움이 커서 통곡을 하듯이 수십분을 소리를 죽이고 꺼억꺼억 울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 뭔가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고 인생이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다 잃어버렸더니 이제 남은 것은 더하는 일만 남은거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배달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면서 재활과 함께 자신감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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