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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서 Mar 31. 2024

머리를 기른 게 아니라 그냥 길어진 건데요

배달업체를 통해서 하는 배달이 아니다 보니 한 건이라도 더 하려고 아침 9시부터 자전거를 타고 

길거리로 나선다. 

간혹 아침 커피와 간단한 식사를 주문하는 고객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벽 2시까지 계속해서 자전거를

타면서 돌아다닌다. 

코로나에 대한 격리완화조치로 배달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는데 하루 17~18시간을 배달을 해도 전처럼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지는 게 체감이 되었다. 

배달비가 비싼 것도 있기는 하지만 실제 배달라이더들에게 들어오는 금액은 큰 변화는 없는데 배달앱업체가

중간에서 챙기는 금액이 정말 상당한 것 같기는 하다. 가게 사장님들도 독점적 지위에 있는 배달앱업체에게

수수료를 많이 내고 있다면서 고객들과 업체로 인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참 어려운 문제이기는 하다. 오늘은 배달에 대한 고민과 함께 혼자서 맞이하는 2번째 생일이었다. 

아침에 나오면서 좋은 일이 생겼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나왔지만 오전에 배달 1건이 전부였다. 

점심이 다가오는데 삶은 달걀 2개가 도시락인지라 근처 공원 쪽으로 이동해서 벤치에 앉아 있는데 뒤편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무슨 일인지 궁금하여 다가가보니 지자체에서 장애인일자리박람회라는 행사를

하고 있었다. 

이런 행사는 사실 제대로 된 일자리 소개라 목적이라고 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기업들의 참여도와 더불어

보통 행동발달장애인 분들을 위한 직업훈련 또는 그런 단순 일자리 소개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몇 번의 

경험을 통해서 알아서 기대하진 않았지만 행사에서 주는 경품이라도 생일이니 받아보자는 마음으로 

둘러보면서 다니고 있었다.

지자체 행사라서 큰 규모는 아니고 한쪽에서는 관계자분들이 기념촬영하느라 바쁘고 대부분 부스는 비어 

있는 채로 천막만 서 있었다. 

기대를 한건 아니지만 내심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구경하다가 실망스러워 다시 배달이나 하자하고 나가는데

장애인일자리통합센터라는 문구의 부스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래,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고 지금 어떤 기회라도 도전을 해야지. 가릴 때냐.' 싶어서 의자에 앉아서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상담사분은 지금 당장은 소개드릴 업체가 없다면서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괜스레 민망하여 볼펜기념품 3개만 달라고 하고 일어나서 배달을 하러 갔다.

오늘 집에서 나와서 7시간 동안 배달 2건이 전부라니.. 답답한 마음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하지만 가족들 생각하면 멈출 수 없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사실 아쉬운 거지 하루일정이 안 좋다고 

영원히 안 좋은 것도 아니라는 건 잘 안다. 

배달콜을 기다리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다. 아까 전에 상담했던 장애인일자리센터였는데 

대학교 행정지원 계약직 자리가 있다면서 면접이 바로 내일이라고 알려주면서 참석 가능한지 물어왔다.

가겠다고 답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변명이겠지만 침대에 누워서 5년 가까이 시간을 보내고 비록 그 후 1년 동안 재활은 했지만 

체중이 무려 90kg이 되고 퇴원하고도 어디 외출할 일이 없어서(배달일 제외) 머리를 자른 적도 없었다.

면접당일 아침까지 고민했지만 머리를 자르고 가진 않았다. 

솔직히 미용실 갈 그 돈도 아까웠다. 더군다나 아직 사람들과 부딪혀 일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미묘 복잡한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학교에 들어서는데 오랜만에 이런 장소에 와서 그런지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은행나무가 길게 늘어서 언덕길을 오르면서 이내 마음에서도 차분함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생활의 치열함에서 잠시 감상평을 가질 만큼 이쁜 가을 풍경이었다. 


면접자는 날 포함해서 단 2명이었다. 다른 사람은 젊은 청년으로 보였다. 

속으로 '아, 역시 힘들겠구나' 생각이 들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해보고 결과를

받아들이자 하고 면접을 기다렸다. 앞서 그 사람이 면접을 끝내고 마지막으로 들어갔다. 

내 긴 머리를 보고 흠칫 놀라는 표정이 보였다. 

하긴 입장을 바꾸어서라도 아무리 계약직이라고 해도 머리를 저리 기른 이제는 중년이 된 사람을

만나는 게 쉬운 경험은 아닐 것이다. 

이런저런 평이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고 마지막으로 면접관은 만약 합격이 되면 머리를 자를 생각이 있는지

물어왔다. '여기는 학교라서 아무래도 단정해야 합니다'

예전에 나라면 반항기도 있어서 그게 무슨 상관이냐고 했겠지만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어선 지금에는

그런 가치관조차 부질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자포자기란 다른 개념이기는 한데 뭐라고 할까.. 삶에 대해서 초연한 자세가 된다고 할까. 

아무튼 머리를 기른 게 아니라 병원에 있다 보니 미용실 갈 일 없어서 이런 거라고 상관없다고 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전화가 한통 왔다. 

합격했으니 다음 달 1일부터 일하러 오면 된다고.. 머리를 꼭 자르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왜 합격이 된 걸까. 상식적으로 젊고 컴퓨터활용도 더 높은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은 행정지원직이기는 하지만 근무 특성상 관리미화직 선생님들과 함께 하다 보니 

관련 물품들을 옮기는 일도 해야 하는데 상대분이 키가 작아서 그게 어려워서 내가 된 거라고 말해줬다. 

비록 웃기는 이유 같지만 우연 같아도 우연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사회에 나선 이래 20여 년 만에 계약직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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