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장 1절~27절
1 아담, 셋, 에노스,
2 게난, 마할랄렐, 야렛,
3 에녹, 므두셀라, 라멕,
4 노아, 셈, 함과 야벳은 조상들이라
5 야벳의 자손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라스요
6 고멜의 자손은 아스그나스와 디밧과 도갈마요
7 야완의 자손은 엘리사와 다시스와 깃딤과 도다님이더라
8 함의 자손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9 구스의 자손은 스바와 하윌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삽드가요 라아마의 자손은 스바와 드단이요
10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세상에서 첫 영걸이며
11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12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으니 블레셋 종족은 가슬루힘에게서 나왔으며
13 가나안은 맏아들 시돈과 헷을 낳고
14 또 여부스 종족과 아모리 종족과 기르가스 종족과
15 히위 종족과 알가 종족과 신 종족과
16 아르왓 종족과 스말 종족과 하맛 종족을 낳았더라
17 셈의 자손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과 우스와 훌과 게델과 메섹이라
18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고
19 에벨은 두 아들을 낳아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 때에 땅이 나뉘었음이요
그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
20 욕단이 알모닷과 셀렙과 하살마웻과 예라와
21 하도람과 우살과 디글라와
22 에발과 아비마엘과 스바와
23 오빌과 하윌라와 요밥을 낳았으니 욕단의 자손은 이상과 같으니라
24 셈, 아르박삿, 셀라,
25 에벨, 벨렉, 르우,
26 스룩, 나홀, 데라,
27 아브람 곧 아브라함은 조상들이요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람, 즉 아브라함의 계보를 말하고 있다. 족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자신을 일컫으면서 누구누구의 자손이라는 형식을 많이 취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가리지 않았다.
그만큼 정통성이라든지 근원에 대한 인간적인 상호작용이 있는 것 같다.
더군다나 기독교세계관에서 정통성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아담에서부터 아브라함으로 이어지는 유대관계는 향후 메시아의 출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관계이다
역대상은 주로 성경 인물들의 족보와 관계를 말해준다.
사실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꽤 중요할지 모르지만 그 당시 세계관에서 이방인에 있던 지역에서는
이런 것이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성경에 이런 것이 기록된 것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은 대체적으로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만 해석하는 것을 좋아하고 인정하고 그 외는 외면하거나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도 그 근원은 본인 스스로만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금까지 이어져 온 삶에서 온전히 스스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의 날 이르게 하는 것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존재하는 것은 결국 선조들로 이어지게 한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는 것이다.
그 안에서 최대한 자유로운 선택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를 만들어가는 것이 삶일지 모른다.
자녀들에게 결국 물려줄 수 있는 것은 물질적인 유산보다 선조들부터 이어져 내려가는 길에서
부정한 것은 배제하고 정한 것을 가꾸어 나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특히 믿음의 계승은 매우 중요하다.
출세하거나 부유하게 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에 일부이다.
그것이 목적이나 목표가 되면 그만큼 공허함이 쌓이는 것은 없을 것이다.
결국 내면을 채워 나가는 것은 믿음의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난 태어난 이래 그 어느 때부터 가난함 속에 있지만 그만큼 빈 공간을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졌다.
전에는 다양하고 다른 욕망들로 채워 있던 것이 사라지고 좋은 것들로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거라고 생각한다.
그 믿음이 항상 넉넉한 상황을 만들어주지는 못하지만 평온한 삶을 지탱해 주는 것 같다.
가족에게 돌아가는 길이 4년이 넘었다. 그러나 수많은 좌절에서 더욱 단단해지는 것은
그만큼 가족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길이었다.
이제 곧 돌아가서 우리의 계보를 이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