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라는 오지의 숲을 탐험 중입니다>

8. 자녀에서 부모로

by 이지

얼마 전, 엄마가 본인의 어린 시절 사진을 이미지로 보내주셨습니다.

빛바래고 접힌 자국이 있는 오래된 흑백사진 안에는 그 시절 엄마를 포함한 5~9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저마다 사진기를 응시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중, 고등학교 시절 사진은 본 적이 있었는데 어린 시절의 엄마의 모습을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한 감정이 물밀듯 몰려왔습니다.


60대 후반의 할머니가 되기까지 이 어린 소녀는 얼마나 많은 길을 웃고 울며 달려왔나 싶어 졌습니다.

제 눈엔 7살쯔음으로 보이는 앳된 소녀의 모습이 지금의 엄마와 별반 다르지 않게 곱고 귀엽게 보였습니다.

사랑의 모양은 다 다를 수 있으나 소녀가 크기까지 얼마나 다양한 사랑을 받고 나누며 자랐을까요?

또 그 사랑을 본인의 자녀들에게 주기까지 얼마나 많은 값지고 아름다운 과정들을 거쳤을까요?


어른이 되어 엄마의 삶을 보니 힘든 순간 엄마의 힘듦을 알아주지 못한 순간이 참 많았구나 싶었습니다.

나는 엄마의 삶보다 나의 삶이 중요해서 엄마의 슬픔을 보지 못했고 엄마의 늘어가는 주름을 보지 못했네요.

부모가 나의 슬픔을 몰라주는 것 같아 외로울 때 누구보다 외로운 것은 바로 나의 엄마, 아빠였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하게 줄 수 있는 사랑을 온전하게 주고자 노력하신 부모님의 수고가 이제야 희미하게 보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렇게 누군가에게 너무나 애틋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니, 삶이라는 것이 더욱 애틋하게 여겨집니다.


부모의 품은 참으로 넓어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매일 이해해야 하는 상황에 갇혔지만 자녀에게 이해를 바랄 수 없고

인내해야 하는 순간이 수시로 찾아오지만 자녀의 인내하지 못한 순간은 너그러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감정의 모터를 이성으로 수시로 조정해야 하지만 너울 치는 자녀들의 감정은 헤아려주어야 합니다.


끝내는 하늘처럼 높고 바다같이 깊어질 수 있을까요?

이상하게도 품이 넓어지기는커녕 매일 좁은 나의 품만 직면하게 됩니다.

'부모'라는 이름의 옷을 입어 내가 휘두를 수 있는 지위를 얻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희생'이라는 이름의 값을 제대로 지불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랑'을 배우며 처음 가는 이 길을 매일 새롭게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자녀에서 부모로 또 자녀에서 부모로 처음 가보는 순간순간 혼자인 듯 서로가 함께 가고 있습니다.

몰라주는 것 같아도 알아주는 때가 옵니다. 혼자인 것 같아도 같이 있는 따듯함을 느낄 때가 옵니다.

텅 비어 보여도 사랑으로 꽉 차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가 옵니다. 나는 이 시간을 더 감사로 누리고 평안함으로 흘러 보내기를 바랍니다.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하는 마음으로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이 아주 작은 위로라도 전달할 수 있다면

저는 글을 쓰는 매일의 시간이 선물같이 여겨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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