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애정일까? 애증일까?
애정과 애증은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애증에는 미움도 섞여 있다.
부모와 자녀간의 관계는 내 모든 걸 내어주고 싶은 만큼 강하고 절대적인 사랑의 애정에서 시작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애정에서 슬며시 '증'이라는 '미움의 감정'이 고개를 내밀게된다.
이 감정은 육아의 모든 시간이 평탄할 수 없게끔 나의 감정을 소쿠리에 담아 탈탈 흔들어버린다.
애정일까? 애증일까?
사랑하는 내 자녀를 향한 나의 마음은 어느새 모르게 미움이라는 회색 감정이 슬며시 섞여 있다.
사랑에서 시작한 나의 말과 행동은 어느새 타박과 질책이라는 화살로 아이를 찌르고 아이 또한 그 작은 입에서 독침을 쏘아 올린다.
우리의 관계가 애정이 아닌 애증의 관계가 되어 간다는 것이 흐른 시간만큼 커버린 네가 나에게 멀어진다는 뜻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의 어린시절을 생각해봐도 내가 엄마아빠가 미워지기 시작한 시점이 '있는 그대로의 인정'을 받지 못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내인생을 책임질 수 있을것같은 커다란 착각 속에 자아와 자율성이 확립되고 나는 무엇이든 결정하고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부모에 의해 깨질 때의 상실감은 정말 컸던 것 같다. (커서 보니 내가 왜 혼이 났는지 너무나 이해가되지만 그 시기는 정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
나의 생각, 행동, 말 5-6살 난 아이가 자신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나는 큰 존재라고 착각하는 시기. 자아가 확립되고 자신의 자율성이란 말을 타고 사방 곳곳을 활개칠 준비가 되어 있는 시기이다. 6살 나의 딸아이를 봐도 지금 그 시기를 지나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 이미 겪어봤고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참을 수 없는 인내심을 매번 테스트 당하는 느낌이 든다.
오 마이 갓
근데 나만큼이나 내 딸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알게모르게 자녀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를 대신하여 인생의 모진 수모를 겪어주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어디 한번 감당해봐라" 하는 마음으로 질책하는 마음은 없을 것이다.
나의 애정이 애증을 향해 갈때, 숲의 거칠은 나무들이 햇살의 기운을 막아설때
육아의 기쁨은 온데간데 없고 향유하지 못하는 지저분한 감정만 허공에 먼지처럼 떠돌아 어지러운 마음이 든다.
'미움'이라는 감정도 그 갈래를 따라가다보면 결국 '사랑'이지 않을까? 설령 애증의 관계라 할지라도 그 시작은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잊지말자.
허다한 허물을 덮는 것을 결국 '사랑'이다. 부모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혜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들일 것이다. 그 마음으로 오늘도 잠드는 아이에게 하루의 미웠던 감정은 훌훌털고 사랑을 고백하자. "넌 정말 소중해, 엄마는 오늘도 너로 인해 감사하고 행복하단다! 사랑해❤️"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함께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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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아주 작은 위로라도 전달할 수 있다면
저는 글을 쓰는 매일의 시간이 선물같이 여겨질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