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버릇 여든까지 가보자
인생은 선택적 장비빨
일단 챙기고 갈 것
내 시간을 챙기기 시작하면서 여행 갈 때 짐가방 챙기는 우선순위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노트북, 책 한 권, 노트와 펜.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내가 계획하고 내가 하면 되는 것. 아이 때문에? 상황 때문에? 컨디션이 나빠서? 그럴 여유가 없어서?
정말 그럴까?
나 자신에게 매번 물어보지만 솔직하게 답하자면 NO! 문제는 늘 나였다. 결국엔 내가 원하는 대로 코웃음칠만큼의 노력이라도 매일 해내려는 의지였다. 챙김이 달라진 일상은 내 아이와 함께 크면서 어제보다 현명한 내가 되려는 마음가짐이다.
돌이켜 보면 그야말로 아침 전쟁이던 때가 있었다. 물론 모든 것이 다 내가 선택한 결과였지만.
눈 뜨자마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샤워를 끝내고 냅다 주방으로 향한다. 시간의 촉박함에 등 떠밀려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거울 앞에서 내 모습 찬찬히 살필 겨를 따위는 없었다. 아이들 씻기고 먹이고 입혀서 늦지 않게 학교에 보내야 하는 막중한 미션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데 어림없는 소리다. 또 고분고분 순탄할 리 없지 않은가. 한 녀석은 이상한 포인트에서 떼쓰고 울고 한 녀석은 자꾸만 딴짓하고 있고 시간은 나 몰라라 흘러만 가고 도대체 진전이 없다. 적당한 기다림과 적당한 심호흡이 필요할 뿐. 아침부터 하루치 에너지를 이미 절반은 끌어다 쓴 느낌이다. 인내의 끝에서 아슬하게 진정을 되찾고 차분하게 사태를 수습하다 보면 어느덧 1호 등교. 2호 등원 완료다. 어쨌거나 만세.
뚜벅뚜벅 다시 집을 향해 발걸음을 돌린다. 축 늘어진 몸으로 손을 힘껏 뻗어 본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를 때면 꼭 한 두 번은 오류 울림이 난다. '더는 급할 것이 없으니 손 끝까지 기운 빼고 헛 눌러도 괜찮잖아 뭐 어때서'하고 홀가분한 상태를 확인이라도 해주는 듯 손가락이 자꾸만 삐걱댄다. 이윽고 들어선 집안. 허무함과 버거움 사이를 헤매는 탁한 공기가 나를 반긴다. 전쟁 같은 육아도 계속되는 살림도 출구 없는 쳇바퀴에 갇힌 것만 같았다. 해내고 해내도 끝없이 반복되는 묵직한 매일의 데자뷰.
전날 밤 건조기에서 꺼내 던져둔 빨래가 소파 위에 한가득이다. 설거지통엔 반쯤 물에 잠긴 그릇들이 급한 대로 쌓여있다. 어수선한 마음을 꾹 누르고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면서 밟히는 바닥 먼지부터 청소기로 훔쳐낸다. 다음 코스는 설거지다. 몇 안 되는 그릇끼리 서로 부딪히며 꽤나 달그락 거린다. 뭐가 이렇게도 호들갑이람. 지금 거슬리는 것이 미끈대는 그릇인지 그릇을 만지고 있는 나인지는 그리 중요하지가 않다. 정적을 깨는 그 쨍한 소리는 설거지가 끝난 뒤에도 이명처럼 남아 한참 동안 내 귓가를 맴돌았을 뿐이다.
유난스러운 등교전쟁 후 어렵게 되찾은 고요함이란 그때의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지금부터 아무도 챙기지 않아도 되는 제한된 짧은 해방감이었나. 아니면 현실의 분주함으로 가려진 나의 나태함에 대한 민낯이었을까. 핑계라는 허울을 벗겨내고 나라는 한 존재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순간 매우 찝찝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윙윙대며 돌아가는 세탁기 소리 벗 삼아 주방과 거실을 몇 번 오가다 보면 집안 정리는 얼추 끝이 난다. 마침내 정착한 소파 자리에 나는 온전히 눕지도 서지도 못한 채 애매하게 기대어 앉는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이 엉성한 자세가 적당하고 익숙하다. 언제부터였을까. 어쩌면 내 몸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넌 아직이야. 다들 그렇게 살아. 너만 힘들어? 연약한 투정 따윈 이제 그만하지 그래. 생각만 한다고 뭐가 달라져? 예민하게 굴지 마. 불평불만 하지 마.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어서 움직여봐.'
애써 눈을 감고 잠시 여유를 누린다. 아직 물기가 채 마르지도 않은 머리카락의 꿉꿉함이 느껴지지만 뜨끈 달달한 커피 한 모금을 마저 홀짝이며 그냥 조용히 모르는 척하기로 한다.
그때는 그랬다. 내 마음과 다르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아침이 못마땅했다. 짜증스러웠고 반복되는 매일이 재미없고 우울했다. '결혼하고 내 시간을 다 빼앗겼어. 애 키우면서 집에만 갇혀서 도대체 뭘 할 수가 없잖아. 한때 나도 직장 다니고 돈 벌면서 나 하고 싶은 거 눈치 안 보고 하고 살았는데. 집안일 좀 하다 보면 애들 올 시간이 돼. 씻기고 밥 먹고 치우고 빨래 돌리고 애들 챙기다가 재울 때쯤 또 내가 먼저 지쳐 잠들겠지. 지금 내 인생 왜 이렇게 우울한 거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고 알량한 자존심에 아닌 척했지만 반복되는 못난 생각과 무기력 앞에 나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내 인생이잖아. 한 번뿐인 인생이잖아. 재미있고 의미 있게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는 거잖아. 내 뜻대로 못할 게 뭐가 있어.'
다 바꿔버리고 싶었다. 지겨운 일상도 나약해진 나란 사람도.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나를 다시 찾기 위해 나의 하루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전날 밤 집안일을 최대한 마무리하고 시간 허비 없이 일찍 잠자리에 드는 습관부터 들였다. 매일 조금씩 일어나는 시간을 앞당겨 그 시간만큼의 여유를 누리는 방법을 택했다. 그 과정이 선순환되어 자리를 잡고 이제는 고요한 아침 시간이 하루 중에서 가장 여유롭고 온전한 나만의 시간이 되었다. 새벽 기상이 꼭 정답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해답이 되어준 고마운 습관이다.
방법을 제대로 찾지 못했을 뿐 내 의지대로 안 되는 건 없다고 본다. 살면서 뜻대로 안 되는 일에 지치고 짜증스럽고 우울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당부하건대 부디 그 기분에 상황들에 휩쓸리지 말기를. 욕심내기 좋은 내 주변의 장비들로 용감하게 맞서 싸우기를. 그 어떤 순간에도 결코 나를 잃지 말기를.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아들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엄마 있잖아요. 여행 가서 새 집(호텔)에서 자는 것도 좋은데 진짜 우리 집 오니까 더 좋아요. 내 방도 있고 내 장난감도 있고. 아 편하다."
"그렇지? 그걸 잘 알려고 여행 가는 거야. 엄마도 집에 오니까 참 좋네."
짐가방을 풀면서 생각해 본다. 익숙함에 익숙해지지 않는 것.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아는 것. 그간 내 삶 속에 성능 좋은 장비들이 얼마나 있었나. 제대로 볼 줄 모르고 쓸 줄을 몰라 놓친 것들. 써보려는 노력은 또 얼마나 했었고. 결국 인생은 선택적 장비빨 아닌가. 일단 잘 챙기고 볼 일이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미 알고 있는 것. 작은 것들로부터 변화를 시도할 때 생각이 바뀌고 일상이 바뀐다. 그 일상이 차곡차곡 모여 인생이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분명해졌다.
조금 늦었다 싶다가도 마흔 버릇 여든까지 가보자 싶다. 운 좋게 장수하면 백 살 넘어까지도 모를 일이고. 그러니 참 다행이다. 마음만 먹으면 지금부터라도 그 버릇 단단히 들여놓을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