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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내기 영어 탈출기

생후 40년, 옹알이 중입니다

by 어거스트


영어는 기본이라고 누가 말했나. 세상 만만한 일 하나 없고 쉬운 노력으로 빠르게 얻어지는 것도 없다. 뻔하고 당연한 진리를 요즘 공부하면서 뼈저리게 느낀다.



기본으로 외국어 하는 사람들. 그 기본이란 것 좀 자세히 들여다보자. 낯설고 더디고 지치는 이 과정을 도대체 얼마나 인내하며 내 것으로 만든 걸까. 그 노력과 정성 진심으로 존경한다.



둘째 아이가 두 돌이 지났을 때 일이다.

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보리차를 찾길래 챙겨 온 물병을 자신 있게 내밀었다. 그런데 왜? 이내 버럭! 고함을 치는 것이 아닌가. 보디타 고디타 고디터 으아아앙!! 달리는 자동차에 추진력을 보태듯 한참을 우렁차게 소리쳤다. 나중에 알게 된 단어의 정체는 바로 놀.이.터.였다. 미안하다. 사과한다.



차창 밖으로 초등학교 놀이터가 스쳤는데 리스닝이 어두운 엄마 사람은 보리차 타령만 했으니 오죽이나 답답했을까. 와중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힘껏 소리친 아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귀를 열어 말을 하십시오 어무니


놀이터를 놀이터라 알아듣지 못하니 그날의 아들 속이 꼭 지금의 내 심정이었을까 싶다.



영어 원서부터 회화 문장까지 일단 듣고 따라 읽고 있지만 이해가 쏙쏙 될 리가 없다. 단어 뜻 실컷 찾고 돌아서면 금세 하얗게 잊히니 어려운 꼬부랑 글자를 탓하리오 내 머리를 탓하리오. 어느 쪽의 잘못이냐 따질 일도 아니니 조금 더 친해지려면 자꾸 다가가서 한마디라도 더 나누는 수밖에. 그 편이 확실히 빠를 것이다.



혼자 앉아서 옹알옹알할 때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는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죽어라 연습하는데 죽어도 안 되는 발음 앞에 결코 좌절하지 말아야 하건만 안타깝게도 서서히 혀가 저려온다. 가뜩이나 넘어져 아픈 마당에 확 밟힌 기분이랄까. 슬슬 말 문 트이는 아들보다 못한 생후 40년 엄마의 옹알이 수준은 갈 길이 멀어도 한참 멀구나. 진정 내 굳어진 혀에도 봄은 오는가.




부르셨어요


부르셨어요. 하면서 이따금씩 찾아오는 불청객이 또 있다. 왜 꼭 앉아서 공부하려고만 하면 목이 마를까 커피는 왜 때맞춰 다 마시고 없고 화장실은 가고 또 가고 싶고 그러다 보면 밥때가 되고... 그러니 말이다. 그 증상이 몹시 알고 싶다. 설마 나만 그런 것인가. 하하하!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엉덩이가 들썩들썩하기 마련이지. 저기요 제발 앉아 있어라 좀.'



마음의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진다. 내가 나에게 하는 뜨끔한 잔소리에 잠깐 정신이 움찔한다. 그러나 반성은 반성일 뿐 얄궂게도 이 잔소리는 영어공부할 때만큼은 별 힘이 없단 말이지.



저 먼 나라의 언어를 전혀 다른 나라에 사는 나 같은 사람이 익히고 편하게 쓰기란 쉽지가 않다. 핑계가 많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디지털의 눈부신 발달과 지금 우리는 차원 높은 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으니 말이다. 언제든 무엇이든 찾을 수 있고 빠르게 누릴 수 있는 세상 아닌가. 분명 많은 기회의 장이 펼쳐져 있음에도 나에게 있어 영어란 여전히 끈기와 부지런함이 동반되어야 하는 고된 노력의 영역이다.



영어권 사람이 아닌 이상 태어나면서부터 영어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유창한 영어 실력을 뽐내는 사람들을 보면 마냥 부럽고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지는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들은 어렵고 불편하고 힘든 시간들을 하나하나 부딪혀 이겨냈음을 알아야 한다. 지나온 과정의 결실임을 알아야 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 마음 자세로 꾸준히 달려 나가야만 한다.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공부하면서 답답한 마음일랑 인정하고 접어두기로 하자.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듯 옹알이로 말문 트는 것부터가 당연한 시작임을. 조금 느려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매일 뜨내기 영어 탈출을 위한 점 하나를 콕 찍어본다. 점점점 찍다 보면 언젠가 선이 되는 날이 올 테니. 기쁜 그날을 떠올리며 들썩대는 나의 엉덩이를 꼭 붙들어 앉혀라.




감히


영어를 정복해 보겠다고?

예전에 그 누군가가 나에게 감히라는 말을 던졌다. 평소 쉽게 쓸 말은 아닐 텐데 설마 대놓고 무시할 작정이었을까만은. 단어 선택이 서툴러 그랬으리라 이해해 본다. 어찌 되었든 내 입장에서는 별 납득이 안 되는 말이었으므로 긴 말 필요 없고 덤덤하게 대꾸해 주었다.



아니!! 감히가 아니라 과감히 해보는 거라고.



우리가 하는 그 어떤 일도 시작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누구나 저마다의 자리에서 치열한 삶을 살며 과감히 달리고 있을 뿐. 감히라.. 이 말은 적어도 땀내 나는 타인의 노력 앞에서 만큼은 감히 지워 버려야 할 무례한 말이 아닐는지.



살면서 평생 영어 뜨내기로 살아온 나. 더 크고 넓은 세상과 소통하는 힘을 키우고 싶다. 성취감 장난 아님을 제대로 한번 맛보고 싶다.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부모의 모습을 보여 준다면 얼마나 값진 인생공부가 될까. 그러기에 영어! 미워도 다시 한번! 이번에는 끝까지 한번 해보려 한다. 매일 고.디.터. 같은 심정으로 녀석과 싸우는 중이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고. 아마도 매우 길고 긴 싸움?이 될 것 같다. 절대 퇴장 금지.








원서 읽기를 하면서 그 내용 중에 Parmesan 이란 단어가 나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파마산 치즈가 파르메잔~ 이라니! Order 이 또한 은근히 힘들다. 들리기로는 오더와 올덜의 중간쯤 되려나. 짧고 쉽고 아주 잘 안다고 해도 다시 보자 영어단어, 정확하게 발음하자! 혀 저린 교훈을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다.



공부를 하다가 문득 옛날 영어 유머가 생각이 난다. (아마 아시는 분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영어가 서툰 사람이 식당에 갔다.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며 이렇게 물었다.


"두 유 워나 슈퍼 샐러드?"

"으응?....."

"두 유 워나 슈! 퍼! 샐러드?"

"노노!! 미디움 샐러드! 플리즈~"


Do you want to soup or salad?

수프 줄까요 샐러드 줄까요 하는데


적당히 중간 걸로 주쇼 웨이터 양반

하고 대답한 것이다.




아무렴.


당연하지.

샐러드가 너무 크면 그걸 혼자 어찌 다 먹나. 하핫!

사람이 밥을 잘 먹어야 잘 사는 법이다. 주문도 똑바로 하고 제대로 밥 먹기 위해! 슈퍼 샐러드와 파마산이 되지 않기 위해! 눈 번쩍 뜨고 귀 쫑긋 열고 혀 근육 붙이면서 열심히 옹알이에 매진해야 하겠다.



따라서 오늘 점심에는 샐러드를 먹을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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