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이 되고서야 진짜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졌다
직장생활 10년 퇴사 후, 결혼 육아로 다시 10년. 내 나이 마흔 되던 해. 격한 인생의 사춘기를 겪은 때이다. 그만큼 매우 중요한 시기이기도 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누구의 도움 없이 육아에만 전념했던 지난 10년. 나는 흔히들 말하는 경력단절녀가 되어 있었다.
긴 육아로 지친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고요한 쉼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내 삶에 내가 없음이 가장 싫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었지만 가끔씩 내가 누구지? 뭘 하면서 살아야 할까? 불안하고 흐려지는 우울한 기분이 몰려오는 순간들이 있었다. 나를 잊고 살면서 그렇게 나를 잃어가고 있었던 거다.
육아가 다 그렇듯 아이가 어린 젖먹이 시절엔 엄마도 밤낮없이 내내 새우잠 신세다. 수면도 체력도 부족해 사실 뭘 할 수 있는 힘도 여유도 없다. 그렇게 또 한 차례 육아전쟁을 치르고 아이는 커서 이제 잠도 잘 자는데 여전히 내 몸은 축 처져 있었고 기력 없는 매일을 매일같이 살아내고 있었다.
문제는 문제였지. 바로 나.
아침이면 늘 아이가 먼저 일어나 엄마를 깨운다. 겨우 눈을 떠 힘겹게 일어나는 것이 보통의 일상이었다. 예쁜 내 새끼 크는 모습에 행복하다가도 불쑥 짙은 우울함이 예고 없이 습격했다. 세상 피곤하고 예민했다. 사소한 일에도 스트레스받고 급기야 아이에게 큰소리치고 있는 철부지. 문제는 바로 나였다. 내 몸도 시간도 자유롭지 못한 환경이 싫었다. 그럴 때마다 불안과 불만이 범벅되어 짜증만 내고 있는 나 자신이 정 떨어지게 밉고 한심했다. 아이들은 하루하루 커 가는데 어제도 오늘도 달라진 것 하나 없는 내 일상이, 내 삶이 갑갑하고 두려웠다.
이때부터였나 보다. 생각을 다시 고쳐먹고 내 시간 내가 만들어 쓰기로 결심한 계기가. 일단 뭐든 해보자. 그렇게 변화를 시도한 습관 개조 프로젝트. 거창하게 선언했지만 실은 아주 작은 일상의 변화라도 느끼고 싶었다. 초라한 나 자신을 그만 짓밟고 싶었다. 사막같이 메마른 마음에 물이라도 살포시 뿌려주고 싶었다. 그래야만 내가 조금이라도 숨을 쉴 틈이 생길 것 같아서.
아이 둘 키우면서 특히 아침이란 시간은 정말 미라클 하다. 이른 새벽 조용히 공부하고 있는데 수시로 안방 문이 덜컥 열린다.
"엄마 공부해? 하지 마아
이리 와, 나랑 같이 코 자자 엄마 아아"
아직 어린 둘째 녀석이 잠도 덜 깬 눈으로 칭얼칭얼 비벼댄다. 또 어떤 날은 책상 옆에 딱 붙어 서서
"엄마 똥 마려워! 쉬도 같이 할래.
엄마 엄마? 응가 다 했어요.
기저귀 갈아 쥬시여~~"
새벽 5시다.
왜. 꼭 그렇게 새벽같이 일어나는지 참...
아주 그냥 크게 될 집일세. 허헛.
기적의 아침이든 기절의 아침이든 분명한 것은 엄마로 깨어나는 아침과 나라는 개인 한 사람으로 시작하는 아침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지금 더 바쁜 하루를 살고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몸이 팔팔하게 살아있다. 그렇다. 축 처진 건 내 몸이 아니라 나약해진 내 마음이었다는 걸 이제는 잘 안다.
아직은 육아 전쟁 중인 엄마 사람이라서 고요한 새벽에 책상에 앉았다가도 아이 방을 왔다 갔다 해야 하지만 이미 잠에서 깨어있는 나는 아이의 잠투정쯤은 웃으면서 기꺼이 받아줄 수 있는 단단한 마음과 넉넉한 여유가 있다.
습관의 힘은 대단하다.
규칙적인 새벽기상 습관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매일이 좋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묻는다. 일어날 때 안 힘드냐고. 물론 힘들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무거운 몸을 일으키는 일은 결코 쉽지가 않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조금 더 늦잠을 자도 어차피 일어날 땐 똑같이 힘이 든다. 쫓기듯 여유가 없는 아침이 오히려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한다는 것을 이미 몸으로 겪으면서 깨달았으니.
습관을 바꾸면 내가 쓰는 시간이 달라진다. 내가 갖는 마음이 달라지고 내가 사는 세상이 달라진다. 나를 깨우고 배우고 채우고 다듬는 매일의 습관. 그 작은 성취감으로 주체적인 나의 하루를 살아가는 중이다.
아이 때문에 아무것도 못해. 가 아니라
아이 덕분에 더 강한 체력과 인내를 얻었네.
아이 덕분에 생각의 깊이가 삶의 지혜가 늘었네.
그런 내 아이와 나도 함께 커야지.
좀 더 나은 내가 되어야지.
하는 간절한 생각으로 바람직하게 철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결혼 덕분이다.
아이 덕분이다.
때문에는 멈추는 핑곗거리만 찾게 되지만 덕분에는 힘을 내서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강력한 무기가 되어준다. '생각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하지 않았던가. 첫 시작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아침잠 많던 내가 2년 가까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간 우직하게 일어나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있다.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습관을 만들고 꾸준히 유지하는 일. 꼭 필요한 시간과 가끔 필요한 시간을 조절하면서 몸과 마음의 피로를 덜어내고 나만의 생활패턴을 만들어 가는 과정. 내가 좋아하고 행복해지는 길을 찾는 방법. 비록 느리고 아주 작은 변화일지라도 곁눈질하지 않고 반듯하고 단단하게 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려 한다.
섬세한 습관
매일 이른 새벽 내가 일어나는 이유. 내가 누구인지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