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솥에 장작불이라니! 이건 너무 정겹잖아.
벚꽃이 흐드러진 봄날이었다.
먼 길을 달려가 진한 곰탕 한 사발로 허기진 몸과 마음을 든든히 채우고 돌아오던 날. 식당 입구에는 커다란 가마솥이 지키고 있었고 그 아래로 장작불이 하얗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눈이 시릴 만큼 매운 연기가 피어올라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한참을 서 있었다. 시간이 멈춘 듯 오랜만에 느껴보는 고요한 여유였다.
아내 자리, 엄마 자리에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왔지만 마음 안에는 늘 헛헛함이 남아있었다. 육아 핑계 체력 핑계로 느슨하게 흘려보낸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게 또 그렇게 아까울 수가 없었다.
나는 왜 이렇게 느리지.
남들 다 아는 걸 나는 왜 모르고 살았지.
남들 다 하는 걸 나는 왜 못하고 살았지.
나만 빼고 다 잘 나가.
나란 사람은 원체 습득이 느린 탓에 그럴 만도 했고 이제야 보이는 내 빈 곳을 마음먹고 채우려니 초조하고 급해질 수밖에.
두 아이를 키워낸 10년이라는 시간. 갓난쟁이 엄마 껌딱지 시기를 두 번 겪어내고 나서야 짧지만 온전한 내 시간이 생겼다. 나를 되찾고 싶은 노력도 가능해졌다. 그때부터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살았다. 새벽기상으로 하루를 시작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자기 계발, 동기부여 강의를 찾아 들으며 정신을 붙잡았다. 이런저런 생각의 조각들을 기록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노력의 흔적을 원동력 삼기도 했다. 게다가 옹알이에 가까운 실력으로 놓고 있던 영어 공부까지 하려고 덤볐으니. 의욕은 앞섰고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저 뭐든 하고 있는 나를 칭찬하며 만족하기로 했다. 남들 보기엔 세상 지루한 제자리걸음일지 모르지만 이런 매일의 반복은 나의 평일 루틴이 되었다. 돈보다 귀한 것이 시간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래. 이 정도만 해도 어딘가. 나는 더 나은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저녁이 되면 쌓인 빨래부터 설거지 그릇 정리까지 최대한 집안일을 마무리해 둔다. 낮에는 밥 먹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앉아있지만 아이가 학교 마치고 올 시간이 되면 혼자서 허둥지둥 정신이 없다. 우리 집안일이니 같이 하는 건 당연하지만 나머지 살림하느라 어찌 덩달아 퇴근 후가 더 바쁜 남편에게도 항상 고마운 마음이었다.
하루하루 무식하게 달리다가 한 번씩 나에게 질문해 본다.
나는 왜 공부하지.
무엇을 하고 싶지.
무엇을 할 수 있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거지.
사실 나도 아직 모른다. 뚜렷한 방향도 없이 열심히 헛발질만 하고 있는 건가 싶고. 똑똑하게 시작하는 방법조차 알 리 없다. 뭐가 될진 모르겠지만 내 방식대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가는 중이다.
언젠가 남편에게 잔소리 폭격을 당한 적이 있다. 커피로 물배 채우고 라면 봉지가 자주 발견되면서 끼니를 대충 때운 죄. 몸도 돌보지 않으면서 건강하게 성장할 리가 있나. 맞다. 똥줄 타게 혼나도 싸지. 나를 키운다는 건 그만큼의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 일인 것이다.
꼬맹이 둘 옆에 끼고 남편과 마주 앉아 뜨끈한 곰탕 한 사발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에게 무식한 정성을 쏟는 매일의 과정이 이 국밥 한 그릇과 다를 게 뭐가 있나. 꺼지지 않는 불씨 속에서 티 없이 은은하게 끓다가 마침내 완성되는 깊고 진한 그 맛.
느림보 같은 지금의 노력이 가치 있도록. 언젠가 많은 이들과 나누고 베풀 수 있도록. 인생을 바르고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야지. 내 삶의 과정을 하나씩 기억하는 순간들. 조금 미흡하더라도 불가능한 완벽보다는 일단 해내는 완성이 중요함을 잊지 않기로 한다. 자그마한 내 책상, 여기에서 하나씩. (밥상보다 책상이 좋아지면 철드는 거라던데)
나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