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와의 유럽살이에서 얻은 것
아기가 태어난 지 열여덟 달쯤 되었을까
남편이 회사에서 오스트리아로 연수 발령을 받았다.
가장 먼저 든 감정은 막막함이었다.
남편을 따라 같이 갈까 생각도 해봤지만,
조심성 많은 나같은 엄마에게는
선뜻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같이 갈 생각이 없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갈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메르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코로나를 겪은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 것도 아닐지 모르지만,
그 때의 나는 일상이 무너지는
광경을 처음 마주하며 겁이 났다.
그래서 쫓기듯 급하게 비행기 티켓을 끊었다.
오스트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산책도 관광도 아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병원부터 알아두었고
유기농 전문 가게도 찾아두었다.
여행이 아닌 생활의 시작이었다.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아기와 둘만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취사가 가능한 호텔이었지만
냉장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작았고
덕분에 매일 장을 보는 부지런한 주부로 살았다.
남편을 보내고 집안일을 적당히 해놓은 뒤,
시간을 보내기 위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매일 밖으로 나갔다.
키즈카페, 마트, 이케아를 오가다
문화센터와 수영장 등록하기에 이르렀고
금요일이 되면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주변 나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그렇게 주어진 몇 달의 시간동안
우리는 여러 나라를 오가며 낯선 일상을 쌓아갔다.
그 시간 속에서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장면들이 있다.
유모차를 옆에 둔 채 담배를 피우는 부모들,
한국보다는 덜 안전해 보이는 놀이터들,
그리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듯 보이지만
겪어보니 존중의 방식이었던 다정한 무관심.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 속에서 아기를 키우며 느낀 것이 있다.
그들은 아기에게 모든 것을 맞춰 살지 않다는 다는 것이다.
아이 곁에 있으면서도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철저히 아이에게 맞춰 살아가고 있던
나의 눈에 비친 유럽 엄마들의 모습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엄마라면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용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아이와 함께 살아가면서도
나의 삶을 계속 생각해도 된다는 것.
그 두 가지는 서로를 무너뜨리지 않는다는 것.
유럽에서 지내는 동안
쉴새없이 많은 전시와 공연을 보았다.
임신기간부터 하지 못했던 문화생활에 대한 보상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이를 낳은 이후 처음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다.
곧 다가올,
아이 없이 보내게 될 시간에 대해서.
그리고 음대생이었던 시절 한때 품었던 꿈에 대해서.
지금의 나는
어쩌면 그 시간들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